유기환(본지 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교수)

대입수시전형 논술고사 시즌이 돌아왔다. 정부는 대입간소화정책의 발표와 함께 논술고사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논술고사의 축소 또는 폐지를 유도해왔다. 그러면서도 고등학교 생활·교양 교과 영역의 선택과목에 논술을 포함시키는 다소 모순적인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대입은 논술 축소 방향으로, 고교는 논술 확대 방향으로 가는 정부의 교육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정부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으리라.

창의적 논술교육의 필요성은 주입식 암기교육의 한계가 운위되는 지점에서 강조되곤 한다. 주입식 암기교육의 비판자들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 탓에 우리 학생들이 논리와 지성이 모자라며, 그러기에 노벨물리학 수상자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입식 암기교육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장점을 지닌다. 문제는 암기 자체가 아니라 암기 위주 또는 암기 일변도의 교육이다.

소크라테스과 플라톤도 대화와 토론에 의존해 진리를 탐구했다. 왜냐하면 교사가 일방적으로 행하는 강의보다는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행하는 독서와 토론이 진리 탐구에 필요한 분석능력(analysis), 종합능력(integration), 적용능력(application), 창의력(creativity)을 키우는 데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주입식 암기교육 일변도에서 벗어나서 독서와 토론에 바탕을 둔 창의적 논술교육을 보완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논술은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제고시킬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독서와 깊이 있는 성찰을 전제하기에 인성과 지성을 고양시킨다. 그 때문에 인성과 지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 공무원 진급시험, 국립외교원 입학시험 등이 모두 논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유는 초중고와 무관하게 대학에서 갑자기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창의적‧비판적 사유는 오히려 사고가 유연한 청소년 시절에 함양하기가 좋다. 그렇다면 고등학교에서 창의적 논술교육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일단 대입전형에서 논술을 좀 더 과감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사교육에의 의존인데, 사교육에의 의존을 줄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교육의 경쟁력 향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 논술교사의 실력 향상을 위해서는 재정 지원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논술교육과 관련한 고교-대학 연계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대학이 논술고사 출제에만 신경 써왔을 뿐, 고교 현장의 논술 실력 강화에 실효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반성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논술교육을 공교육에서 소화할 수 있게 하고 논술고사를 고교교육 수준에 맞추는 것이지, 논술교육과 논술고사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왜 프랑스가 바칼로레아라는 논술을 보게 하고. 미국이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는 에세이를 쓰게 하겠는가. 원론적으로 교육계 인사들 모두가 암기력으로 문제를 풀어 정답을 맞히는 기계적 천재보다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하는 전인격적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원론이 그렇다면, 원론의 실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옳다.

우리도 바칼로레아 문제처럼 두터운 인문학적 소양을 요하는 문제를 천착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루소가 말했듯 유년기는 단지 <이성이 잠든 상태>에 불과한 것인가?”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문제에 답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독서하고 토론하는 청소년들의 모습, 바로 거기에 인재대국 한국의 미래가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고교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대학이 이를 돕는다면, 노벨문학상도 노벨물리학상도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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