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이사장 사퇴해도 두산 영향력은 유지될 것” 우려

[한국대학신문 차현아 기자]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2008년 이래 조용할 틈 없었던 중앙대의 개혁 실험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네 차례에 걸친 학과 구조조정과 기업식 경영의 핵심에 있던 박용성 이사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중앙대의 학사 구조조정과 기업식 경영에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온 가운데 박 이사장의 사퇴 이후 변화가 주목된다. 

■ 바람잘날 없던 개혁사=중앙대가 대학가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2010년부터 지속됐던 학과 구조조정 때문이다. 2010년 10개 단과대 46개 학과(부) 체제로 수정된 후 2011년 가정교육과가 폐과됐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 청소년, 아동복지, 가족복지 등 네 개 전공이 폐지됐다. 학부제 내에서 전공 선택비율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2월 26일 발표한 학사 구조개편 선진화 방안은 네 번째 구조조정이다.

두산은 중앙대 인수 후 교수사회에도 성과주의를 강조하며 기업경영방식을 도입했다. 2010년 4월 중앙대는 교수 평가 결과 전체 교수를 S, A, B, C 등급으로 분류해 등급별 연봉인상률에 차등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최고 등급과 최저 등급 간 인상비율은 최대 6.6%까지 차이가 났다. 2014년에는 연구업적평가 결과 C등급을 받은 교수 4명에게 정직 등 중징계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성과급의 차이를 넘어 징계까지 가능하도록 해 대학가에 파문을 낳았다.

박 이사장은 학생들이 회계학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교과과정을 변경하기도 했다. 2008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박 이사장은 “중대 애들은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고 평가받는 게 내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개혁실험에 명암= 일각에서는 중앙대가 추구했던 대학 개혁의 방향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중앙대가 학과제 폐지와 모집단위 광역화 등을 바탕으로 연구중심대학으로 거듭나려했던 것은 옳은 방향이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내 모 대학 이공계열 교수는 “중앙대가 추구한 개혁 방향은 해외 연구중심대학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하버드대학 등 외국 대학의 학부 과정에서는 한 학과에만 소속되지 않는다. 석사과정 이상에서 전공을 선택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하도록 한다”며 “다만 중앙대가 학과제 폐지를 통해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려면 대학원 전공과의 학부교육 간 연계성을 강화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학과제 폐지는 단순히 정원감축을 위해 실시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 회장(덕성여대 교수)은 “외국 연구중심대학 학생들의 경우 전공공부는 대학원에서 하고 학부에서는 교양교육을 한다. 그러나 대학원 과정을 통해 연구하지 않고 학부만 졸업해 취업할 학생들이 다수인 우리나라 대학에서 학부과정의 절반을 교양교육으로만 채운다면 교양교육과 전공교육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윤 회장은 "교양교육의 학부과정 강화에도 인기학과 쏠림현상과 탄력적 수요 대응을 위해 전임교수 확보율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전임교수 확보율은 60% 남짓에 그치고 있는 현실에서 적합하지 않은 구조개혁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식 경영 ‘입막음’과 ‘학사운영개입’= 중앙대 대학 개혁 실험이 특히 더 비판받는 배경에는 여론 조작 논란과 법인의 전횡 논란이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중앙대 홍보팀이 총학생회 성명서를 조작해 언론에 배포하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총학생회의 공식 성명서가 아닌 문서를 총학생회의 입장인양 인용해 언론에 보도자료로 발표했다. 이를 두고 구조조정안에 대한 학생과 교수 간 갈등여론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교수대표 비대위는 이에 대해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학교를 고소했다. 이외에도 지난 3일에는 학생들이 학내에 붙인 학사 구조조정 반대 대자보 수 백 여장을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철거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중앙대 구성원들은 박 이사장과 법인이 학사 운영에 일상적으로 개입해 전횡을 부렸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중앙대 내 대학운영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서다.

중앙대 학칙 제13조2에는 각 학문단위 및 부서 간 조정에 관한 사항과 규정의 제정, 개정, 폐지 등 대학 운영의 전반에 대해 부총장과 보직교수, 총장을 비롯해 법인상임이사와 법인사무처장이 대학운영위원회에 참여해 주요사항을 심의할 수 있도록 했다. 타 대학에서도 운영되는 대학평의원회와 교무위원회 등 이외에도 법인차원에서 학내 운영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별도로 설치한 것이다.

‘막말 파문’ 이후 박 이사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것을 두고 두산의 이른바 '먹튀'를 우려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앙대의 모 교수는 "두산 인수 이후 중앙대의 부채는 700억원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에 책임없이 사퇴를 통해 '먹튀'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중앙대에 대한 두산의 지배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장직은 내려놨지만 이사직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대 법인 이사회에는 박 이사장 이외에도 박용현 두산연강재단이사장 겸 서울대학교 병원장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등 두산 관계자들도 이사로 있다.

박순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은 “박 이사장의 사퇴의사 표명은 두산이 중앙대에서 ‘손 뗀다’는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사직은 유지함으로써 두산그룹과 박 이사장이 중앙대에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후 검찰의 박범훈 전 총장 비리의혹과 두산재단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이사장의 사퇴의사 표명 이면에는 검찰수사와 연계한 정치적 계산도 깔려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대 이사장직을 그만두면서 두산의 중앙대에 대한 대외적 책임은 피하되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수대표 비대위도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대 이사장에서 물러난다는 의미가 향후 중앙대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밝혀달라”고 공개 질의했다. 또한 "올해 중앙대 예산 총액 4232억원 중 학교 법인의 기여분은 4%인 173억원에 불과하다. 대학을 재단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에 대학의 일상적 운영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밝혀달라"고 했다.

한편 중앙대 특혜 외압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가 박 전 총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중앙대의 적십자간호대 인수와 본분교 통폐합 승인 과정 중에서 박 전 총장이 교육부를 압박해 중앙대에 특혜를 준 대가로 두산그룹이 박 전 총장에게 보상을 줬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박 이사장에 대한 소환 계획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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