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SF 한지영 학생기자] 2002년 개봉한 일본 영화 <워터보이즈>. <스윙걸즈>로도 히트를 쳤던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첫 번째 청춘영화다. '남고생들의 수중발레'를 모티브로 해 일본 전역과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워터보이즈>의 매력은 남자 고등학생들이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라는 생소한 스포츠에 뛰어들어 함께 성장하고 배우며, 그 과정에서 빚어내는 끈끈한 우정의 장면들에 있다. 그들은 '남자가 무슨 싱크로나이즈드냐. 징그럽다.'는 친구들의 조롱 섞인 웃음에도 열정과 패기로 뭉쳐 여름방학엔 돌고래 조련사를 찾아가 맹훈련을 감행하며, 마침내 학교 축제 날, 전교생과 이웃 주민 및 근처 여학교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박진감 넘치는 수중발레 쇼를 선보인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런 '워터보이즈'들을 찾고자 했다.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스포츠, 그리고 그 안에서 끈끈해지는 우정. 마치 영화의 소재와도 같은, 자신의 삶의 활력은 스포츠와 이를 함께하는 동료들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없을까. 여기 <이화 라크로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같은 캠퍼스 내에서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지고 '라크로스(Lacrosse)'라는 스포츠를 함께 즐기며 유익하고 특별한 대학생활을 누리는 그녀들이 입을 모아 자랑하는 <이화 라크로스>는 서울 내에 몇 안 되는 라크로스 대학 동아리이자 이화여대의 유일한 라크로스 동아리이다.
수요일 오후 5시 반, 이화여대학관 레크레이션 홀에 들어서니 격렬한 스포츠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처자들의 라크로스 훈련이 한창이다. 카메라를 들고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니 부끄러운 듯 여기저기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체육관 한쪽에서는 야구공보다 살짝 작고 탄력 있어 보이는 공을 그물이 달린 채를 이용해 주고받으며 연습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 들어온 신입 부원들을 위한 기초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가볍게 훈련이 진행되는 듯하면서도 체계와 질서 있는 모습에 필자는 <이화 라크로스>의 훈련을 계속 지켜보다가 마무리될 즈음 부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화 라크로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국제학부 11학번 김지혜 공동주장이 2012년에 라크로스 대학리그에 출전하기 위해 동아리를 직접 창단했으니 올해로 4년 차를 맞는 신생 동아리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북미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스포츠인 라크로스. 때문에 우리나라의 라크로스는 주로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클럽스포츠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지혜 주장 역시 용인외고 재학 시절 ASPAC Lacrosse Tournaments에 참여하며 라크로스와 인연을 맺게 된 케이스다. 그녀는 대학 1학년 때에는 라크로스 동아리가 있는 연세대에서 훈련을 받았으나, 2학년이 되어 자교인 이화여대의 이름으로 대학리그에 나가고 싶어 급하게 팀을 만들어 출전하였다고 한다.
대회 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만큼 <이화 라크로스>는 단순히 모여 함께 운동을 하는 동아리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대회는 부원들이 개인적으로 출전하는 것이나, 대학리그와 겨울에 열리는 인도어(Indoor) 리그에는 창단 이후로부터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창단 첫 해와 이듬해인 2012, 2013년에는 3위를 기록했지만 바로 작년인 2014년에는 2위로 순위가 올랐다고 한다. “'1위는 연세대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면서 “우리가 곧 1위를 할 것이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연세대 라크로스 동아리에는 골리를 비롯하여 현재 국가대표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한 부원이 “연세대에는 유망한 언니가 있었으나 나갔으니 우리가 곧 이길 것이다”는 발언을 한 후에 다시 한 번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이화 라크로스>는 체육학부 동아리가 아닌 국제학부 동아리 소속이다. 부원 내 체대생과 비체대생의 비율은 반반 정도 된다. 국제학부에 스포츠 동아리를 신설했는데 체대생이 필요하다는 선배의 말에 <이화 라크로스>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다는 체육과학부 13학번 김정윤 공동주장은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받았던 첫인상을 '다들 운동 안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일축했다. 소위 말하는 '운동 좀 할 것 같은 느낌'은 없었지만 <이화 라크로스>는 계속하여 승승장구했다. 가녀린 외모와 달리 부원들의 라크로스 실력 또한 출중했다. 나이도 학과도 다양한 <이화 라크로스> 내에서 그녀들은 서로 소통하고 기쁨을 함께 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이화 라크로스>의 훈련은 수요일과 일요일에 이루어진다. 수요일에는 늦은 오후에 학교 학관 내에서, 일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한강 둔치에서 경기외고 라크로스 코치인 노영동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장비와 의복은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이다. 스틱은 공용으로 사용하지만 여타의 장비들은 동아리 부원들이 직접 구매해서 사용한다. 라크로스가 좀 더 알려져야 할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 워낙 생소한 스포츠이기에 배우기도 어렵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장비를 구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저희 김지혜 주장처럼 동아리를 창단하는 일은 사실 어려운 일이잖아요. 숙명여대의 어떤 분은 자신이 직접 동아리를 만들지는 못하고 연세대에서 연대 소속으로 뛰고 있어요. 라크로스 동아리가 전반적으로 더 커져서 조금이라도 알려진 스포츠가 되면 좋겠어요." 여러 학교에서 라크로스 동아리가 많이 생기는 것, 이것이 <이화 라크로스> 부원들의 소망이다.
<이화 라크로스>에 들어온 부원들이 많이들 이야기 하는 것은 그들이 라크로스를 통해 삶의 활력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대학에 들어와 또래와 스포츠를 함께 하면서 얻게 되는 효용이 아주 크다고 했다. 약학과에 재학 중인 김지영 씨는 스포츠 경기를 실제로 해 본 경험이 거의 없는데 자신 스스로도 라크로스를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체육과학부 13학번에 재학 중인 고민정 씨는 무릎에 부상을 입은 채로 라크로스 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다. 친구의 추천으로 생소한 스포츠를 접하여 망설임도 있었으나, 라크로스에 점차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무릎의 부상도 잊고 즐겁게 훈련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학부 12학번 신예나 씨는 <이화 라크로스>의 가장 특별한 점으로 '사람'을 꼽았다. 계속 오게 되는 이유가 부원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함께 대회에 나가고 엠티를 즐기면서 서로를 챙겨주는 사람들끼리 운동한다는 것은 기쁨이다.
신경과학자 Daniel Wolpert는 인간의 뇌가 정교한 움직임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결국 신체를 움직이고 조절하는 작업이 생명체의 생명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일에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스포츠를 통하여 건전하게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이 육체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큰 기여를 함은 여러 경험적 연구들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다. <이화 라크로스>는 대학스포츠의 생활화가 대학생들의 학업과 삶 전반의 웰빙(Well-being)에 긍정적 영향을 미침을 보여주는 좋은 모본이 된다.
이제 여학생들은 대개 신체를 움직이기 싫어하고 스포츠를 자발적으로 즐기지 않는다는 생각은 잊어주길 바란다. 캠퍼스 내에 누구나 쉽게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레 퍼진다면 우리는 축구를 하고, 캐치볼을 하며, 라크로스를 하는 여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즐거움을 얻는 방법은 실로 간단할지 모른다. 사람들과 함께하라. 그리고 같이 운동하라.
<한국대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