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으로 전락… "인증보단 엄격한 학사관리가 먼저"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지난 1996년 성균관대가 도입해 대부분의 대학으로 확대된 졸업인증제는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았다. 졸업인증제는 시대의 트렌드에 맞춰 변화해왔다. 이른바 G2시대가 현실화되면서 중국어 능력을 졸업요건으로 내걸겠다는 대학도 나타났다. 인성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봉사활동과 인성교육과정 이수를 필수로 내건 대학도 늘고 있다.

국내대학의 졸업인증제는 1996년 성균관대가 ‘삼품제(三品制)’를 도입하면서 전국적으로 번졌다. 첫 번째 인성품(人性品)은 최소 30시간의 사회봉사 활동과 인성 교양과목 이수가 최소 기준이다. 삼품제 중 두번째인 국제품은 교내 외국어 시험에 합격하거나 토익과 텝스 등 공인외국어성적을 일정기준 이상 취득해야 받을 수 있다. 토익을 기준으로 2004학년 이후로는 인문(A)계열 700점 이상, 자연(B)계열 630점 이상, 예체능(D)계열 550점 이상 이어야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창의품은 정보기술 관련 자격증이나 공모전 실적을 인정한다. 열심히 공부하면 졸업이 힘들 정도로 엄격한 기준은 아닌 셈이다.

이 가운데 영어 졸업인증제는 국제화 인재 양성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급속도로 확산됐다. 1998년 경기대, 2000년도 인하대, 중앙대, 한양대, 2001년도 강원대, 동국대(서울), 세종대, 숙명여대, 안양대, 한국항공대 등이 영어인증제를 도입했다. 이후 한국외대(2004년), 서강대(2006년), 부산대(2009년), 국민대(2011년), 서울시립대(2012년) 등 대부분의 주요 대학들이 제도를 시행했다. 방식은 대학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인증시험을 통과하거나 토익과 토플 등 공인외국어시험을 기준 점수 이상 취득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행 10여년이 지나면서 대학가엔 졸업인증제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학문 분야별로 차별성 없이 영어와 컴퓨터 능력을 일괄 적용하면서 오히려 전공분야의 공부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실제 '교육정치학연구'에 게재된 논문 '졸업인증제도의 행정적 발전방안(2011)'에서 연구자인 당시 신태진 연세대 교수(교양교육학부)는  △일부 전공학습을 방해하고 △사교육을 유발하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낮은 영어기준 등을 문제점으로 들었다. 신 교수는 "시행 초기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현재 보완해야 할 문제점들이 적지 않다"며 "대학들이 너도나도 주먹구구식으로 도입하다보니 본래 의도했던 취지에서 벗어났고 효과도 못내고 있다. 인증제가 사회적 신뢰는 얻기 위해서는 내실화와 실용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근본적으로 졸업인증제 시행과 상관없이 지나치게 너그러운 학사관리 관행이 변하지 않고 있어 졸업인증제가 본래 가진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최고대학이라는 서울대는 재학생 절반이 'A학점'이다. 지난해 전국 176개 4년제 대학은 재학생 기준으로 평균 B학점 이상 취득학생 비율이 69.8%(A학점 32.3%, B학점 37.5%)에 달했다. 특히 서울대는 재학생의 50.4%가 A학점 이상을 받았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국외대(43.8%) △연세대(41.9%) △경희대(41.4%) 순으로 상위권 대학들의 학점거품이 더 극심했다.

취업 우선주의에 밀려 학부 졸업논문마저 폐지 또는 간소화하는 추세다. 졸업인증제가 사실상 ‘손쉬운 졸업’을 돕는 장치로 전락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초보적인 수준의 토익점수로 졸업논문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도 토익점수도 요구하지 않고 원론 수준의 간단한 졸업시험만으로 대체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반면, 포스텍은 보여주기식 토익 성적 대신 필요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학사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을 채택한 케이스다. 포스텍 관계자는 “공인외국어성적 기준을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교육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포스텍은 국제화가 중요한 연구중심대학이라는 학교 특성상 영어능력이 매우 중요하지만 ‘시험’보다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텍은 2008학년도 신입생부터 자체적인 영어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신입생 전원이 오리엔테이션때 배치고사를 보고 그 결과에 따라 1~5등급으로 교육과정으로 배정된다. 만약 영어 실력이 부족하면 5등급 교육과정부터 마지막 1등급까지 차례대로 이수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포스텍 관계자는 “졸업을 위해선 어느 수준에서 시작하건 1등급을 마쳐야 한다. 영어권에서 몇 년 살다온 학생도 통과가 쉽지 않을 정도로 요구 수준이 높다. 소수정예 대학으로서 들어올때는 영어를 잘하건 못하건 학교가 책임지고 가르친다는 맞춤형 교육 철학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학은 학사관리도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포스텍 관계자는 “여타 대학과 달리, 포스텍은 복수전공이 매우 힘들다”면서 “학생들 사이에선 복수전공을 하면 1년 더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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