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근 장애물없는 생활환경만들기 연구소장(건국대 건축대학 교수)

“장애는 몸에 지닌 것이 아닌 환경에서 비롯된 것”
법제화로 편의시설 설치 후 ‘이용’ 인증 반드시 필요
장애인 능력과 상관없이 대학교육 학습권 보장해야

[한국대학신문 정윤희 기자] 누구나 한 번쯤 지하철에서 실컷 졸다 희미하게 들리는 방송 멘트를 듣고 황급히 내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 꿀잠을 단숨에 앗아가는 지하철 방송멘트의 놀라운 힘을 경험한 순간이다.

‘지하철 안내방송’은 물론 ‘스크린 도어’, ‘저상버스’,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기’ 등 장애인을 위해 고안된 생활의 많은 것들이 비장애인의 생활에도 성큼 자리하고 있다.

“사용하기 편할뿐더러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생활 수준이 향상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밀림을 지나가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거기에는 계곡, 물, 돌, 강, 산, 숲 등 장애물이 있어요. 하지만 그 위로 구름다리를 놓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려움 없이 밀림을 지나갈 수 있습니다. 애초 그러한 방향으로 설계를 한다면 누구나 장애물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습니다. 설계는 그런 겁니다.”

강병근 장애물없는 생활환경만들기 연구소장의 ‘설계’ 정의는 간단하고 또 단호했다. 설계는 곧 환경이었다.

“모든 제품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유니버셜 디자인’의 한계를 ‘설계’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방법을 고안하고 연구하는 데에 초기 비용이 들지요. 하지만 한 번 개발하고 나면 모두가 장애물을 인식하지 않고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장애는 각 개인의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있는 겁니다.”

지난 4월 13일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대한법률(이하 편의증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 이에 따라 향후 증축, 신축을 되는 모든 공공건물과 공중이용시설은 BF(Barrier Free)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기존 임의 사항이었던 인증제도가 법적 지위를 가진 의무사항으로 바뀐 것이다.

“편의시설 중에는 정부 관련부처 노력으로 설치율 100%에 육박하는 것이 있는 반면 이용률은 10%에도 못미치는 것도 있습니다. 많은 편의시설물들이 이용할 수 없는, 혹은 불편한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지요. 설치자의 시각이 아닌 이용자의 시각에서 시설물들이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는지’ 인증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강 교수는 이 같은 제도가 사회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이라도 다행입니다. 인증은 5년 주기로 진행됩니다. 건물이 존치되는 한 편의시설이 이용가능한 것인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겠죠. 이는 사회인식 개선은 물론 환경에도 급격한 개선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애’에 대한 사회인식 개선에도 그의 땀이 서려있다. 지난 1997년부터 8년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KBS 제1라디오(당시) '내일은 푸른하늘'에 출연해 편의시설에 대한 정의과 ‘편의증진법’의 설치 필요성 등을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렸다. ‘편의시설은 장애인들만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란 그의 주장은 2005년 1월 제정·공포된 ‘교통약자이동편의 증진법’에도 담겼다.

“건물과 도로, 공원까지 포함한 ‘편의증진법’과 버스, 지하철, 기차 등 교통수단에 대한 ‘교통약자이동편의 증진법’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제가 속해 있는 연구소 이름과 같습니다. 장애물없는 생활환경 만들기.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주거’ 관련 법안을 포함해 ‘생활환경법’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생활은 점이 아니다. 집부터 학교까지 연결된 이른바 ‘선’도 아니다. 우리의 생활 환경은 ‘면’이다. 어느 한 곳에만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장소 불문, 대상 불문하고 모든 곳이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 돼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개인 소유 민간 주택도 편의시설이 설치돼야 합니다. 그러면 기존의 시설을 없애고 새로 편의시설을 입혀야 하는 비용의 부담,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죠. 생활은 면입니다. 손과 발이 닿는 모든 시설이 그러한 설계에 입각해 지어져야 합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대학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대학이야말로 장애인들의 생활경험의 폭을 넓히는 데 일등공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구제’ 차원의 지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이 장애인들의 육체에서 오는 불편함으로 인한 ‘기다림’을 지원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은 장애인에게 학습권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빨리 못 쓰고, 잘 알아듣지 못할지언정 거기에 지원을 해 줘야 하는 것이죠. 대학은 이들을 정원 외 모집정원으로 선발할 수 있지만 실상은 매우 소극적입니다. 편의시설 설치도 이중 비용이 든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하지만 대학은 장애인들의 가진 능력에 상관없이 교육 문호를 개방해야 합니다. 다양한 분야 교육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넓혀줘야 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기관’ 대학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지요.”

2030년이면 우리나라도 명실공히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장애는 곧 자신의 문제가 된다. 강 교수는 설계로서 ‘無장애화’의 지상 범위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장애를 개인의 몸에 지난 것으로 보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장애물 없는 세상을 만들면 장애는 개인이 지닌 ‘개성’이 되죠. 바퀴 달린 의자로 걷는 사람, 뚜벅뚜벅 두 발로 걸어다는 사람,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편의시설이 많은 곳이 선진국일까.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편의시설이란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고안된 것입니다. 장애물이 없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먼저입니다. 장애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있는 것입니다. 무장애화 환경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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