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분교 설립 추진 좌절되기 일쑤…재원조달 어려움 가장 커

교육 인프라 수출에서 가로막힌 아웃바운드 규제 완화 요구 꾸준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손현경·김소연 기자] 한국 정부와 국내 대학들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대학의 국제화’를 캐치프레이즈처럼 내걸었고 최근엔 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쪽에 치우친 양상이 뚜렷하다. 해외 유학생이나 명문대학을 국내에 유치하는 인바운드에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아웃바운드의 경우 교환학생이나 해외취업 정책은 많지만 경쟁력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수출해 현지 학생을 우리 시스템을 통해 교육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학계에서 대학의 국제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으로는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제인 나이트(Jane Knight) 교수의 연구가 자주 인용된다. 그는 대학의 국제화가 어느 정도 구현됐는지를 △학생의 이동 △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캠퍼스)의 이동 △교육의 허브 구축 세 단계로 나누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1단계 이후 2단계를 막 구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1+3 또는 2+2 프로그램 등 트위닝(twinning)을 통해 공동·복수학위를 수여하는 대학들은 찾아볼 수 있지만 해외분교를 설립한 대학은 전무하다.

반면 미국과 유럽, 호주 등 서구의 고등교육 선진국에서는 이미 ‘고등교육’을 중요한 수출 서비스 품목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다른 국가의 교육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싱가포르나 국내 송도 경제자유구역 등 아시아 국가와 중동·아프리카 국가에 해외분교를 세우고 해당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같은 양상은 ‘문화제국주의’의 단면으로 지적될 정도다.

물론 국내에서 교육 인프라 수출을 시도한 대학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을 전후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한국 고등교육 수요가 있는 개발도상국에 분교 설립을 추진한 사립대들이 여럿 있었다. 국내 학생들의 해외 진출과 국외 학생들을 유치하는 교두보로 삼겠다는 목표에서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외 제도와 여건의 장벽에 가로막혀 계획을 접거나 교육 프로그램 수출 방식으로 선회해야 했다.

수도권 사립대인 A대는 지난 2011년 베트남에 해외 캠퍼스 설립을 추진했다가 지금은 전면 중단한 상태다. 베트남 정부가 해외대학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학은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현지에 IT센터를 개관했다. 분교 설립까지 용이하도록 기반을 다지려 했으나, 베트남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강의 개설 하나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이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의 해외 진출이 결코 쉽지 않다. 2011년, 2012년 당시 대학들이 해외로 눈을 돌렸으나 막상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면서 “우리 교육부의 규제도 있지만 진출할 해당 국가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해당국가 정부와 대학 간 긴밀한 협조와 오랜 시간의 협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 개교한 인하대 타슈켄트(IUT)도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었다. 인하대는 해외 분교 대신 ‘위탁경영’이라는 대안을 찾았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대학 건물과 부지, 실험기기 등을 지원하고 인하대 교수가 해당 대학으로 파견을 나가 교육시스템, 교육커리큘럼 등을 수출하는 ‘교육수출’을 목표로 진출했다.

그러나 해당 국가와 우리나라의 법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 정착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처음 약속한 준비를 완료하지 않아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며 해당 국가의 상황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돈이 한두 푼 이동하는 게 아니다보니 우즈베키스탄 돈을 달러로 환전해서 송금해야 한다. 이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 일례로 현지에 파견된 교직원들의 급여가 자꾸 미뤄지는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국내 최초로 중국 우한시 중남재경정법대와 합작캠퍼스를 개교한 동서대의 본래 목표도 분교 설립이었다. 그러나 역시 1년여 간 추진 과정에서 재원 조달이 어렵다는 점과 함께 법인을 별도로 설립해야 하고 이사회 절반을 중국인으로 구성해야 하는 등 거버넌스 측면에서 양국의 제도 사이에서 혼란을 빚다가 1+3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수학위 과정으로 변경했다.

결국 해외분교 설립을 막는 결정적인 원인은 분교 설립·운영비 부담이다. 한국 정부가 세금을 들여 해외 명문대학 유치를 지원하는 것처럼 외국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 않으면 진출 자체가 어렵다는 얘기다. 외국 정부의 재정을 지원 받아 분교를 설립하더라도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대학들은 재정 조달을 제한하는 국내 법적 규제들이 해외 진출을 가로막고 있으며, 이를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거듭하고 있다. 대학설립 운영규정 제2조와 고등교육법 제21조,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13조, 국외분교설립심의기준 등에 관한 고시가 해외 분교 설립을 비롯해 외국 대학과의 공동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하다고 명시하고는 있지만 실제 추진과정에서는 특정 조항이나 다른 국가 제도와 부딪혀 좌절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사학진흥재단 글로벌개발팀 김준식 차장은 “현재 법령상 교비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법인에서 투자해야 하는데 국내 대학법인 중 그만한 돈을 쓸 수 있는 법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그만한 능력이 있는 대학법인은 가만히 있어도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수백억 원씩 투자하며 해외 분교를 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분교 설립을 추진했던 한 대학의 모 전 총장은 “교육부는 규제를 많이 완화했다고 하지만 해외 분교 설립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학들이 교비를 모아서 재단을 살찌우기 위해 편법으로 해외에 진출하려 한다고만 생각하는 점이 답답했다”면서 “해외 진출은 한국을 알리는 것은 물론 양질의 교육 인프라 제공과 우수 인재 배출을 통해 우리 기업이 해당 국가에 진출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부가 대학 정원도 조정해야 하고 교비 반출, 학위 남발 등을 우려해 관리·감독 하는 이유는 이해가 간다”면서도 “대학의 해외 진출, 학위 남발로 인한 부작용은 시장에서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본다. 해당 대학의 학위가 너무 많아지면 그 졸업장의 가치는 자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서대의 해외 분교 추진과정에 관여했던 최원일 산학협력단장 역시 “적어도 교비 중 국내 학생들의 교육의 질과 직결된 등록금 회계를 제외한 비등록금 회계를 해외분교 설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완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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