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 직업교육 현장. 사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제공

[한국대학신문 양지원 기자]해외의 선진화된 고등직업 교육의 전철을 밟아나가기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고등직업교육기관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기 위해선 전문대학들이 산적한 난제들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독일, 스위스, 핀란드 등 유럽의 고등직업 교육은 출발선상에서부터 우리와는 다르다. 세계 각국 직업교육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 초등과정을 마친 시점부터 직업학교와 실업학교, 인문계 중등학교 중 하나를 선택해 진학하게 함으로써 일·학습병행 직업교육 훈련은 기업에서, 이론은 직업학교에서 습득할 수 있는 길을 일찌기 마련했다.

직업교육은 기업이 담당하지만, 견습생들로 하여금 숙련기술자로서 사회에 적응하는 데 대해선 정부가 사회적인 책임으로 인식해 전반적인 정책은 중앙정부가, 재정지원은 지방정부가, 기업은 훈련비를 분담함으로써 구인‧구직 간 미스매칭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스위스 역시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진행하는 이원제 직업교육을 운영 중이다. 직업학교의 교육비용은 전액 국비 지원되고 산업체와 직업학교의 에이전트 역할을 하는 인터컴퍼니 과정(Intercompany course)은 관련기업에서 지원해 준다.

▲ 대만 전문대학생. 사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제공

대만은 대학과 산업체, 학생 등 교육 이해 관계자들이 수업연한의 다양화에 대한 변화의 흐름, 즉 2년제에서 4년제로 바뀔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인지하고 이를 우리나라보다 17년 정도 앞서 현실화했다. 때문에 전문학사를 획득한 후 실무경력 2년을 쌓은 증명서로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응시자격을 부여받는 것도 가능하다. 전문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해 학생들은 본인이 가진 능력이나 특성에 맞춰 필요한 교육과정과 기관을 선택해 학습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 셈이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교육부는 일정 현장실습 기준에 부합하면 일반직원 급여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해당 대학에 지원해 학생에게 실습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등 직업교육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다시 한 번 교육개혁을 강조하며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적용 교육과정 확대와 일·학습병행제 및 선취업 후진학 제도 확산,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 방안 등의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전문대학가는 수업연한 다양화 법안만 통과되도 현 직업교육 체제가 안고 있는 숙제의 50% 이상은 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모 전문대학 교수는 “NCS 기반 교육과정이나 실무 중심의 평생직업교육 선도대학 등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직업교육이 추진되기 위해 절실하게 요구되는 전제조건은 바로 수업연한 다양화”라며 “일반대와 전문대학 차원에서 결정해 알려달라고 유보하지 말고 정부가 이 법안이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대학 교수는 “고등직업교육기관에서 석사 혹은 박사학위까지 부여할 수 있는 것이 글로벌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산업기술명장대학원 설치도 물 건너가지 않았느냐”라며 “산업현장에 필요한 직무지식 및 기술 습득을 위한 제도적인 개선 없이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전문대학의 역할은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지적했다.

[인터뷰]이정표 한양여자대학 산학협력처장

-미국 커뮤니티 칼리지 무상화 정책이 갖는 의미는.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커뮤니티 칼리지의 육성에 초점을 두고 초임 시에는 커뮤니티 칼리지에 대한 많은 재정지원을 약속해 투자해 왔으며, 재임 시에는 무상화 정책 천명으로 커뮤니티 칼리지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해 왔다. 무상 정책은 국가 재정 부담으로 인해 미의회에서의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통령이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할과 기능에 관심을 갖고 국가적 투자를 약속한 것은 미국 경제 활성화 및 사회적 통합의 핵심 전략으로써 고등직업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어서 오바마의 정책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본다.

- 그같은 정책이 우리 현실에 도입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 전문대학의 무상화 정책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에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기능과 역할 등 전문대학의 정체성에 대한 정부 및 국가차원의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전문대학은 일반대학과는 달리 국민들이 언제라도 평생에 걸쳐 직업교육을 받고 직업능력을 개발, 향상시키며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고등직업교육기관이라는 점을 확실히 명시하는 것이다. 즉 전문대학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안정적인 직업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사회 안전망 역할 △급변하는 직업세계에 대응해 직업능력 개발 및 향상을 지원하는 평생직업교육 역할 △다문화사회에 대응한 사회 통합적 역할, 고등직업교육을 강화함으로써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청년실업을 해소하는 경제적 교육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현재와 같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서열화함으로써 일반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정부조차도 전문대학의 위상을 낮게 인식하는 상황에서는 전문대학은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문대학이 폴리텍과 대비되곤 하는데.

"그것이 두번째 전제조건 중 하나와 관련된다.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식함으로써 무상화와 같은 재정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사회적으로 합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폴리텍은 법인화돼 있지만 고용노동부가 대부분 재정을 지원함으로써 학습자 입장에서 매우 적은 비용으로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폴리텍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전문대학에도 공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사립의존도가 높은 전문대학과 폴리텍 간 인력양성에 있어 역할 분담이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폴리텍은 제조업, 첨단산업 등 비용이 많이 들고 국가가 꼭 지원해야 하는 산업분야의 인재 양성을 하고, 전문대의 경우에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교육과정 개설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활성화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재원의 일정부분을 보조해 줄 필요가 있다.

- 전문대 위상이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위상 문제도 전제조건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학력주의, 학벌주의사회를 타파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로 고등직업교육의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장기화된 청년실업을 해소해 나갈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 사회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확대되자, 각국 정부는 대학진학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직업교육으로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고등직업교육기관의 위상을 강화하고 투자를 확대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러한 정책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지만 이에 대한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대학 무상화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 및 시행을 위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이러한 몇가지 논거들을 정부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영미권 및 북유럽권 국가의 직업교육 현황을 보면 근본적으로 시스템이 다르다.

"영미권 국가는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고 그 결과로 진로선택시기가 늦어지며, 상대적으로 고등단계 직업교육이 덜 발달되어 있다. 때문에 고등단계 직업교육이 일반대학에 비해 사회적 위상이 낮은 후기 중등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후기 중등교육기관은 전통적으로 주로 장단기자격과정 위주의 직업교육을 제공해 왔으나 점차 준학사학위, 최근에는 학사학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업연한을 다양화해 오고 있다. 이에 비해 전통적으로 직업교육이 발전해 왔던 북유럽권 국가에서는 개인의 진로선택권보다는 국가의 개입을 통해 직업교육으로 유도해 왔다. 국가가 대학원까지 교육을 책임지는 구조에서 고등단계 직업교육 역시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약 20년 전부터는 단기수업연한이었던 고등직업교육기관을 일반대학과 동일한 수업연한으로 확대해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EU공동체 내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 우리 전문대학 발전을 위한 시급한 과제는 뭐가 있나

"몇가지 꼽아보면 첫째, 전문대학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시킴으로써 학력주의 사회의 병폐인 고학력화 현상을 직업교육을 수행하는 전문대학으로 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 위상을 제고해 나가는 전략으로써 수업연한을 다양화해 전문대학과 일반대의 차이를 수업연한이 아닌 기능 및 역할 차원의 분담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셋째, 수업연한의 다양화는 국가 간 인력이동이 활발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전문대학에 학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는 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질 관리 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기관 및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다양한 질 평가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교육의 책무성을 강화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직업교육 사례를 들어왔다가 실패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전문대학은 영미권이나 북유럽 국가와는 분명 다르다. 설사 외형이 제도적으로 비슷하다 할지라도 실제로 각국이 처한 사회문화적 배경, 국가 규모, 재정, 노동시장의 특성과 구조 등이 다르다는 점에서 해외 직업교육을 그대로 벤치마킹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외국 제도를 그대로 모방하면서 현장에 적용했던 사례들이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현장에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한 이유가 거기있다. 전문대학을 고등교육의 하나로 인식하는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와 유사하고 일본의 단기대학과도 유사하다. 다만 단기대학은 교육적 기능 측면에서는 다소 다르다. 외국 고등직업교육정책의 공통적 개혁 사례를 도출해 우리에게 맞는 시사점을 파악하고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정부나 대학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전문대학 직업교육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국가적 투자를 확대해 나가고 국민들의 직업교육에 대한 관심을 제고시키기 위해 전문대학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 또한 다문화사회에의 대응,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의 목적을 위해서는 현행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다양화함으로써 장단기 자격과정은 물론 전문학사, 학사학위, 석사학위 수준까지 개설 운영할 수 있도록 수업연한 규제를 없애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관 및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평가를 통해 질 보장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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