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고등교육정책, 대학 고사시킬 뿐” 비판

"교육부가 자문위 구성하겠다지만 들러리만 서는 것 아니냐" 우려
대학생들도 동참 뜻 밝혀, 10월 중 국공립대 학생대회 추진하기로

[한국대학신문 이재익 기자] 대학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9월 18일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교수대회는 전국 각지에서 1200여명의 대학 교수들이 참여했다. 1000명이 넘는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 목소리를 낸 것은 대한민국 역사를 되짚어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동안의 진행된 쌓여온 대학사회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 일고 있다.

■ 교수들 “교육부 정책이 현 사태 근원” = 여의도에서 열렸던 전국교수대회에 자리를 함께 한 교수들은 현 대학사회에서 자율성이 사라지고 대학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현 정권과 교육부의 반교육적 정책에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문계완 경북대 교수회 의장, 비대위)는 교수대회에서 발표한 ‘대학자치와 민주주의 및 공공성 확보를 위한 9.18 전국교수선언’을 통해 현 대학사회에 팽배한 구조적 비효율성에 대해 지적했다.

비대위는 교육부가 김영삼 정부 이래 대학설립준칙주의를 통해 대학 설립을 무분별하게 허용하면서 대학을 양적 과잉상태로 만들었으며, 이것에 대한 후폭풍이 학령인구감소와 함께 들이닥쳤음에도 오히려 대학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방식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권진헌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강원대 교수평의원회 의장)은 “행재정적 지원과 연계해 대학을 겁박하는 교육부 평가제도 및 구조개혁법이 철폐돼야 한다”며 대학평가의 부실함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실사학과 교육부의 결탁 고리를 끊어야만 사립대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대회에 참석한 한 국립대 교수는 “교육부가 그동안 추진한 거의 모든 고등교육 정책에 있어 문제가 생길 때면 교육부는 제3자의 입장으로 돌변해 대책을 세우겠다는 말만 한다. 책임이 없는 대안 마련이 과연 제대로 될 것인지 의문”이라며 교육부를 비판했다.

■ 대학 자율성 회복, 해결방안 있나 = 교수들은 교수대회선언을 통해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해서 교육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지만은 않겠다고 천명했다. 비대위는 교수대회에서 ‘학문의 자유, 대학의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대학교수회연합회(교수연합)’를 출범시켜 대안제시와 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교수연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추석 연휴 이후 비대위 정리회의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대학이 자율성을 회복하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들이 지속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운영위원장 최영찬 서울대 교수)는 교수대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 9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위기의 대학자치, 문제와 개선방안’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정원 상지대 교수(경제)는 대학의 최상위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대학구성원 뿐만 아니라 학계, 시민사회 등이 모두 참여하는 민주적 지배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은 최종결정권자가 3800명이나 된다. 대학운영협의회 등을 만들어 총장 이하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용지물로 전락한 교육부 대신 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장기적인 교육정책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얻었다. 좋은나라 위원장이기도 한 최영찬 서울대 교수는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반성한다”며 “정부는 교육부를 없애고 교육위원회를 만들어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교육정책을 볼 필요가 분명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도 대학 자율성 회복을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황석재 부산대 총학생회장은 전국교수대회에서 “학생들도 많은 부채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며 “10월 중 전국 국공립대 학생대회를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 교육부, 자문위원회 구성 계획 밝혔지만 미진 = 교육부는 현 상황에 대해 타결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 대책이 미미하다는 비판에 다시 시달리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대 발전방안의 기조 아래 자문위원회를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시기 등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 추석 이후 구성원 비율 등 자세한 사항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교육부가 교수들을 들러리로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은 “10여명으로 구성되는 자문위원회에 국립대 교수가 한 자리를 맡도록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겨우 한 명이 들어가서 들러리만 서게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총장직선제 전환 시 대학지원사업비 환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남아있지만 교육부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총장직선제와 관련해 자문위원회가 꾸려지더라도 다른 것들이 구체적으로 결정돼야 사업비 환수 정지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내부에서도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김재호 부산대 교수회장은 “만약 교육부가 총장직선제 등 제대로 대학 자율성 회복에 나설 마음이 있다면 최소한 기다려달라는 이야기는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얘기가 없다. 교육부가 재정적 압박으로 대학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문제다. 교육부가 원하는 것과 대학이 원하는 것의 절충안은 대화에서 나오는데 대화가 없으니 실현될 것도 없지 않겠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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