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부산 동래 등 여혐 범죄 연속 발생…캠퍼스도 여혐에 무뎌져

성평등 기초 인식도 부족…대학이 여혐 견제 및 인식 제고 역할 해내야

지난 17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에 이어 25일 부산의 여성 각목 폭행 사건, 26일 서울 사립대 여성 성추행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여혐)’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대학은 1980년대부터 양성평등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여성주의(페미니즘) 학문의 요람 역할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위축됐다. 여자대학들이 여성주의 철학보다 리더십 교육으로 인재 양성 목표를 전환한 점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공학대학에서 학생자치기구인 총여학생회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 2016년 한국 사회는 ‘여성혐오’가 존재하는지, 여성이 구조적으로 차별 받는지 기초적인 질문까지 답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직원과 대학생들의 입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튀어나오고, ‘역차별’이라는 목소리가 용인되는 분위기는 그만큼 대학의 성평등 담론 생성 기능이 무력해졌다는 점을 방증한다. 대학은 사회로 나가기 전 성 평등 인식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교육기관인 만큼 교육·토론 공간으로서 젠더 이슈를 안이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다시 담론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시점이다. 이에 본지는 3회에 걸쳐 대학 사회의 젠더 이슈와 교육 현황을 짚고 개선 방향을 찾기로 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여성혐오에 갇힌 사회…성 평등 교육 ‘마지막 보루’
②대학 여성학 교육의 어제와 오늘
③대학 내 젠더 이슈 선도 방안 모색 좌담회

▲ 지난 17일 강남역 일대에서 남성의 여성혐오 범죄로 사망한 여성을 추모하는 강남역 10번출구의 모습. 추모 현장에 찾은 이들이 여혐을 멈추라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또 읽고 있다.(사진=양태훈 제공)

[한국대학신문 이연희·구무서 기자]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지위로 인정하지 않고 열등한 존재로 여기거나 멸시하는 것을 말하는 ‘여성혐오(Misogyny)’를 둘러싼 논란은 ‘지성의 전당’ 대학에서도 촉발됐다.

익명이 보장된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게시글과 댓글을 통한 전쟁을 볼 수 있다. 여학생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혐에 기반한 살인(Femicide)이라고 규정하고 적극 발언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고 간다고 반발하는 경향이 강했다.

■여혐범죄에 갑론을박 '성 평등 개념 부재'=사건 발생 이후 경기대, 경희대, 고려대 등 일부 대학 게시판에는 강남역 사건에 대한 추모 및 여성혐오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그러나 경기대 여성주의 모임의 추모 대자보는 하루 만에 누군가 경찰에 신고해 조사 받았다. 경희대 총여학생회가 26일 열기로 했던 성우 겸 방송인 서유리 씨 초청 ‘여혐 반대’ 토크콘서트는 캠퍼스 내 홍보물 훼손에 이어 SNS를 통한 악성 댓글이 쏟아진 결과 취소됐다.

동덕여대 학생 신 모(문예창작)씨는 “경찰에서 이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가 돼 재발방지책을 제시할 수 없다”며 여성혐오 사건으로 규정한 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여학생 A씨는 “사회·경제적으로 불만이 있는 구성원들이 화풀이할 대상을 찾다 보니 여성혐오가 생긴 것”이라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단국대 남학생 B씨는 “여성혐오와 함께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광기가 더해진 사건인데 성 문제에 국한해 언급되는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다. 중앙대 남학생 C씨는 “여성이 피해에 노출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다 하더라도,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가는 현상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과 혐오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번 사건을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을 두고 '관련 데이터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대한민국 젠더폭력의 현주소 긴급 집담회’에서 “이번 사건으로 여성들은 개인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해도 여성혐오 피해를 벗어날 수 없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뼈아프게 자각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회가 대답해야 한다”고 각계각층의 각성을 요구했다.

이에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역시 “혐오 표현은 성별과 장애, 인종, 성적지향 등 소수자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조롱 또는 위협, 폭력을 정당화 하며 선동하는 것을 말한다”며 “혐오표현은 혐오범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만큼 ‘잠재적 폭탄’”이라고 경계했다.

▲ 강남역 10번출구를 찾은 한 청년이 촛불을 켜고 사망한 피해 여성을 추모하고 있다.(사진=양태훈 제공)

■캠퍼스 ‘여성혐오’ 견제장치는 작동하지만…=상대적으로 성평등 수준이 높은 조직인 대학도 여성혐오 청정구역은 아니다. 교직원과 학생간 위계에 따른 성폭력, 매년 신입생 OT나 MT 때 불거지는 성폭력, 학생 간 데이트폭력은 물론 강의실의 여성혐오 발언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려대 여성주의 교지 ‘석순’ 편집위원회가 지난 3월 조사해 발표한 ‘강의실 속 흔한 여성혐오 발언’ 사례에는 ‘남자들은 몰라도 여자애들은 임신을 해야 하니 담배 피우면 안 돼’,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하품을 하다니 무례하네’, ‘(여성교수에 대해)그 여자는 성격이 왜 그러지? 남편 직업이 그 분야라 닮는 건가?’ 등의 발언이 포함돼 있다.

또 최근 한양대에서는 4학년 필수 온라인 강의 자료에 남성이 보석반지를 보여주자 여성이 다리를 벌리는 등 여혐 이미지들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한양대는 ‘교육상 부적절했다’고 인정하고 해당 자료를 삭제했다. 또 리더십센터는 교육콘텐츠 점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전 강좌를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위 예는 그나마 여성혐오에 대한 견제와 감시체계가 작동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생리공결제, 여학생 휴게실 등 신체적 차이와 성폭력에서 여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은 도입 취지나 맥락과는 상관 없이 남성 역차별 사례로 언급되기 일쑤다.

서울대 여성연구소의 신상숙 부소장은 “대학의 성평등 제도와 기구들은 오히려 의식적 성차별을 가리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성 인지 제고 노력에 소홀해지는 결과를 가져왔을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성평등 인식을 높이는 교육·공론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성대 학생 김 모(경영학과)씨는 “대학은 남녀가 평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라고 생각한다”면서 “사회에 나가면 성평등을 주제로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대화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대학에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토해내고 얘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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