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고사업 자율성 확대한다지만 ‘코끼리 비스켓’

대학재정지원·평가 방식 근본적으로 바뀌려면 법령체계 다듬어야

<글 싣는 순서>
①대학발전을 위한 재정투자 확충
②대학 자율성에 기반한 대학구조개혁
③대학운영 및 교육환경 개선 지원 및 원대 정당 정책위원장 미니 인터뷰

[한국대학신문 이연희·김소연 기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허향진)가 대학재정 다음으로 시급한 현안으로 꼽은 것은 ‘대학 자율성’이다.

본지가 최근 전국 4년제 대학교 기획처장 46명을 대상으로 ‘대학 자율성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하는가’를 10점 척도로 묻자 평균 2.78점에 불과했다. 반면 각종 정부의 대학평가로 인한 피로도와 부담은 8.69점에 달해, 대학들이 정부로부터 느끼는 압박이 상당한 수준임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 본지가 최근 전국 4년제 대학교 기획처장 46명을 대상으로 ‘대학 자율성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하는가’를 10점 척도로 물었다. 대학 자율성은 평균 2.78점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대학자율성을 가로막는 규제 중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문항은 중복응답을 허용해 총 63개 답변이 도출됐다. 절반이 넘는 34명(54%)의 기획처장이 대학평가 간소화(평가인증과 연계)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뒤이어 26명(41%)은 등록금 인상 규제 완화를, 2명(3%)이 산학협력 부가세 면제를, 1명(2%)이 대학내 교육숙박시설 운영 규제 완화를 꼽아 대학재정 관련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 본지가 최근 전국 4년제 대학교 기획처장 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자율성을 가로막는 규제 중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중복응답 허용)로 대학평가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대학 자율성은 헌법 제31조에서 법으로 보장하는 개념으로, 학자들은 ‘학문적 자유(academic freedom)’와 ‘기관 운영상 자율성(institutional autonomy)’ 두 관점으로 접근한다. 대학이 교육기관인 만큼 두 개념은 연결돼 있으나, 최근 신자유주의 대학 체제에서 대학들이 요구하는 자율성은 후자에 가깝다.

변기용 고려대 교수는 2009년 논문 ‘대학 자율화 정책의 쟁점과 대안’을 통해 대학의 기관 운영상 자율성은 ‘대학이 상위 의사결정자인 정부에 의해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의 효율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행하고 있는 통제와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으려는 논의 말이다. 최근 수년간 대교협이 정부에 법령 개정이나 조세 혜택 등을 건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유시장의 조건을 대학에 적용할 경우 대학 설립과 폐지, 학과의 설립·폐지·증원, 교육과정 설치와 연구의 자유 등을 가리킨다. 또한 대학 거버넌스를 비롯해 학생 선발, 교직원 수와 보수책정, 연구 간접비, 수익사업의 자유 등 운영상 자율권은 물론 등록금 책정 자유까지 대학 자율성 범위에 놓여있다.

정부는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 삼불정책(기여입학제, 본고사, 고교등급제 금지)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신자유주의 교육철학에 입각한 대학 자율화 정책을 펴왔다. 대학설립준칙주의는 대학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췄고, 대학정원도 사립대는 1989년, 국립대는 2002년 이후 실질적인 자율화 시기를 맞았다. 국립대학 법인화는 대학 자율화 정책 일환이다.

물론 대학의 공공성을 확대하라는 요구와 자율성을 늘리라는 요구가 끊임없이 상충돼왔다. 참여정부 들어 사학 운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사학법 개정 당시 ‘사학 자율성 침해’ 여부에 대해 엎치락뒤치락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대학구조개혁’이 전체 화두로 제시되면서, 대학 규제는 큰 틀에서는 강화되고 각론에서 완화되는 추세다. 우선 2013년에는 17년 만에 대학설립준칙주의 폐기돼 대학 설립의 자유가 없어졌다. 다른 규제는 국고지원과 결부돼 강화됐다. 대학 등록금은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고 국가장학금 4조원 상당을 학생에게 직접 투입하기 시작했다. 대학정원은 대학구조개혁정책과 함께 억제되고 있지만 아직 대학구조개혁법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장학금 2유형, 대학 특성화(CK, SCK) 사업과 연계돼 정원을 감축하고 있다. 대입전형 간소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과 연구를 지원하는 각종 사업도 평가지표와 사업비 집행 측면에서 대학의 교육과 연구, 입시 전반에 더욱 깊이 관여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4년제 대학 기획처장은 “사립대는 국립대에 비해 대학 재정운용 자율성이 보장돼왔는데, 현재는 등록금 책정 규제 등으로 ‘준 국립대학’이 됐다”고 지적했으며, 다른 대학 기획처장은 “교육부 재정을 대학에 사업으로 지원하면서 결과적으로 대학의 자율적 발전을 저해한 요소가 많다”고 비판했다.

▲ 본지가 최근 전국 4년제 대학교 기획처장 4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각종 정부의 대학평가로 인한 피로도와 부담은 8.69점에 달해 대학들이 상당한 부담과 피로를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각론에서는 ‘대학 규제 완화’ 명목으로 대학의 수익사업을 △2km 이내 분리된 교지 단일교지로 인정 △해외캠퍼스 설립 및 1+3교육과정 허용 등을 추진·실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 재정과 운영상 근본적인 규제가 워낙 커, 대학들이 느끼는 자율성 수준은 상당히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대학 등록금 자율화 문제는 복잡하다. 2000년대 등록금 책정 자율화 이후 대학들이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해 지속적으로 인상한 결과 등록금 인하 요구가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경상비도 모자라 교육 질이 저하된다며 인상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박근혜 정부 역시 등록금 동결기조를 풀기 어렵다고 고개를 젓고 있다. 현 등록금 정책이 한계에 달한 만큼 정부가 보조금을 투입하는 표준등록금 형식으로 명목등록금을 낮추거나 학자금 대출을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는 이유다.

정부는 각종 평가에 정성평가와 자율공모 방식을 확대 도입하면서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 보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지난 15일 전국대학교기획처장협의회 하계세미나에 참석해 “대학들이 정부 정책에 부담이 많고 자율성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큰 방향에서 자율성 강화 목표를 세웠다”며 국고사업 전반과 대학구조조정, 국제화, 대입 등 사회의 요구와 발맞추는 동시에 대학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현재 교육부가 평가를 통해 사업비를 차등 지원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는 “교육부 평가를 통해 대학에 사업비를 차등 지원하면 모든 대학의 거버넌스와 교육과정, 학사구조, 연구분야가 교육부가 유도하는 방향대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다른 정부부처와 국회, 대학들이 인식하는 만큼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등교육법상 교육부장관에게 대학의 관리·감독 권한을 둔 데 대해서는 “대학에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정상화 하는 차원의 것이지 리더십 형태로 해석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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