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공포의 외인구단’ 만화가)

▲ 이현세 만화가/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한국대학신문 이현진 기자] “9박 10일 외딴 곳에 가서 먹는 것과 자는 것 빼고 하루 20시간 정도 주구장창 만화만 그리게 한다. 얼마나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할 수 있는지,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극한으로 체험하며 몸소 느끼게 하는 거다.”

진정한 만화인으로 입문을 꿈꾸는 자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지옥 같은 훈련이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생들만 경험할 수 있었던 ‘지옥훈련’의 문이 두 해 전부터 외부인에게도 열렸다.

이 캠프를 16년 째 꾸리고 있는 <공포의 외인구단> 작가 이현세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를 만났다.

캠프의 취지는 단순하다.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학생들이 1년 간 학교 수업을 받으며 만화를 그려내더라도 도제 시스템에서 문하생들이 한 달 정도 그려내는 양만큼 그리기 어려워요. 학교에선 이것저것 들어야 할 수업이 많잖아요. 그러니 방학과 동시에 학생들을 잡아놓고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끝을 보는 거죠. 3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학과 학생들 모두가 참여해야 했어요.”

9일째 작품 평가일에는 네이버, 다음, 레진, 학산문학사 등 30여개의 웹툰플랫폼 편집자가 참여해 스카우트도 진행된다. <츄리닝>과 <꽃가족>을 연재한 유명 웹툰작가 국중록과 <삼봉이발소> 하일권 작가, 정필원 작가도 이 캠프를 거쳤다.

캠프를 처음 만든 건 이현세 교수와 함께 세종대 애니메이션학과 강단에 서다 지난 2008년 정년 퇴임한 이두호 작가다. 특별한 지원 없이 학생들의 참가비 10여만 원으로 9박 10일 간의 캠프를 꾸리다 보니 똥파리 가득한 폐교에서 캠프를 꾸리기도 했다. 열악했다. “‘지옥캠프’. 이름도 캠프에 참가했던 학생이 캠프 환경이 ‘지옥’같았다며 작성한 캠프 후기에서 따 왔어요”

2014년부터는 네이버문화재단에서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 “일명 ‘이현세 만화캠프’ 운영비로 쓰이고 있죠. 그 일환으로 운영되는 게 지옥캠프고요. 만화버스도 있어요. 산간벽지 초·중·고등학교 만화동아리에 버스를 타고 순회하며 만화 제작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거예요. 웹툰 작가를 태우고 가죠. 컴퓨터와 장비까지 모두 가져가 만화 제작과 시연, 송고 과정까지 모두 보여줘요. 아직 문화를 직접적으로 접하는 게 쉽지 않은 곳이라도 만화가의 꿈을 져버리게 할 순 없잖아요”

다문화 가정을 위한 만화교실도 운영했다.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이 한국에 와서 겪는 문화적 단절을 해소하고 그들이 소통하는 도구로써 만화를 사용하게 하자는 취지다.

한 때 대한민국 만화 열풍을 선두하며 대중문화 한 장르 발전에 획을 그은 인물이지만 그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교수와 만화가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시간을 통제해야하는 것에 어려움이 컸어요. 이전엔 작업을 해야겠다는 느낌이 오면 그 리듬을 놓치기 싫어서 이틀 간 잠도 자지 않고 작업하곤 했죠. 작품을 다 마치고 나서야 잠을 몰아 잤고요. 만화가와 교수. 두 개의 삶에 욕심을 내며 몸을 혹사하다보니 급성 간염, 복막염, 성대결절, 협심증 등 결국 병을 얻었죠. 지금은 괜찮아요”

20년 간 대학을 지키며 느낀 대학가 ‘예술교육’ 입지에는 못내 아쉬움을 밝혔다. “취업 위주로 흐르는 대학 교육의 방향과 이를 조장하는 정부의 정책은 바뀌어야 해요. 대학생들을 모두 직장인으로만 양성해 취업률을 높이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심지어 최근에는 융합인재 육성을 추진하는데 이 또한 어불성설이죠. 어떻게 모든 학생들을 만능꾼 ‘다빈치형’ 인간으로 만들겠어요. 한 가지 재능과 그것에 대한 열정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일정 대학이나 직업을 목표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슬픈 일이죠. 의사가 꿈이라면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혹은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그 직업을 갖고 무엇을 할지 궁극적인 꿈을 꿔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요. 그 과정을 지지해주는 게 대학에서 내가 할 몫이라 생각해요“

그가 지금껏 세상에 내놓은 만화책의 수를 과연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만화가인 본인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현세 교수는 자신의 궁극적 꿈이 ‘항상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만화가’라고 소개했다. “아무리 인기를 얻은 작품일지라도 2탄, 3탄은 싫어요.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요.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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