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사태’는 대학가에 전방위적 충격을 던졌다. 우리 대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였기에 대학인이라면 누구 하나 이번 사태를 쉽게 넘길 수 없었으리라. 이화여대 사태는 이화여대의 문제이면서 또 전국 모든 대학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필연적인 사태였다.

이화여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자 주요 언론들은 연일 교육부를 타박했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지, 또 1차 공모와 2차 공모 당시 서로 다른 기준을 명시한 탓에 대학의 의견수렴 절차 부족을 야기했다고 꼬집으면서 말이다.

당혹스러웠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났겠다고 안도했을 교육부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지난달 중순 발표했던 정부재정지원방식을 하향식에서 상향식으로 개편했다는 점 말이다. 지금까지 교육부가 사업계획을 공고하면 대학들이 몰려들어 사업을 신청하고, 경쟁을 거쳐 예산을 따내는 방식 대신 대학들이 스스로 중장기 발전계획과 특성화 전략을 낸다면 총액 지원할 것이라는 ‘변명’이 준비돼 있었다.

본지는 박근혜정부 들어 여러 번 이 같은 정부재정지원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여러 기사와 직접 대학인들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지면을 할애하고, 각종 간담회와 프레지던트 서밋을 통해 대학들의 언로를 확보했다.

교육부 주요 간부들은 매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예산당국과 협의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재정지원사업의 단기적 성과를 주문하고 평가, 평가, 또 평가하면서 줄곧 대학을 통제했다. 실무선에서는 대학들의 요구를 단순히 ‘유불리에 따른 건의’ ‘민원’ 정도로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정부가 대학 정부재정지원방식 개편을 선언한 만큼 이제는 전환기로 삼기 위한 후속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과거의 혼란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부는 충분히 긴 호흡으로 정부재정지원방식을 검토하고 평가방식, 지표, 적용 후 시뮬레이션 등을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 고등교육으로 수혜를 받는 산업 및 고용분야의 정부부처도 대학에 단기적 성과를 주문하기 보다는 국가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라는 큰 틀의 공감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교육부에서 요청한 GDP 1% 목표 달성을 위한 고등교육 예산 확대 요청에 대해서도 여전히 심드렁한 자세로 임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의 주요 사업마다 중복성이 있는지 찾기 급급하고, 숫자로 보이는 단기 성과만을 따져 예산 감축 방안만을 고민하는 자세는 ‘투자 없는 성장’을 외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다. 고용노동부 역시 고용보험기금 활용에 대한 대학가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대학들은 이번 정부재정지원방식 전환으로 각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물론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대내외적 요인이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이화여대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듯, 구성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의 사업이라도 좌초될 수 있다. 수습 시간, 거버넌스 변동 등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다.

남은 하계방학, 또 하반기 동안 대학들은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고, 구성원들과 함께 긴 토론과 논쟁을 벌이길 바란다. 다소 지난하더라도 참을성 있게 소통 노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대학의 본부와 교수, 직원, 학생들이 공동의 목표로 한배를 탔다는 공감대가 생기는 순간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는 귀한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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