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 해결에 구성원들 머리 맞댈 때

이화여대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처장단은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일괄 사퇴했다.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요구대로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은 무산됐다. 그러나 경찰 1600명의 캠퍼스 진입이 줬던 충격과 상처를 강조하며 곧 총장 사퇴론으로 불거졌다. 동문들까지 합세한 대규모 시위는 최경희 총장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학생들은 여전히 본관을 ‘지배’하고 있다.

‘총장님과 대화하고 싶다’던 학생들은 거듭되는 최경희 총장의 대화 요구에 ‘서면이 아니면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근본적으로는 총장 사퇴 이전에는 본관 농성을 풀지 않겠다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최경희 총장 사퇴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야말로 기세가 역전된 셈이다.

학생들의 점거 농성이 본부의 평단 사업 철회까지 간 데 대해서는 외부세력을 배제하는 ‘고립 전략’이 유효했던 것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화여대 학생들이 조그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론’이다. 어떻게 교육기관의 장이 경찰병력을 투입해 학생을 통제할 수 있느냐는 상식과 비상식의 논쟁, ‘학교의 주인이 어떻게 학생이냐’는 보직교수의 발언 논란, ‘외부세력 없는 학생들의 순수한 시위’라는 구호들이 여론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대학도 결국 움직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얻어야 하는 것이 겨우 ‘총장의 사퇴’인가. 본지에서도 이번 사태를 심층적으로 짚었다시피, 근본적인 원인은 총장 개인이 아니다.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의견이 비중 있게 반영될 만한 의사결정 구조가 부재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소통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만약 최 총장이 사퇴하더라도 대학 운영 방향을 결정할 때마다 모든 결정들이 이같은 사태를 거쳐야한다면, 지금처럼 본관이 점거된 채로 수년간 학생들의 ‘느린 민주주의’를 기다리느라 필연적으로 겪게 될 행정 마비를 감수할 새로운 총장은 누가 있을 것인가. ‘무정부’ 상태의 대학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보다는 퇴보와 혼돈의 굴레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큰 법이다. 그 때도 여론이 학생들의 명분을 응원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차가운 분노’로 실리를 취하기를 권한다. 학생들은 2학기 개강이 다가오는 만큼 점거농성을 풀고, 대화 테이블에 나와야 할 때다. 지성인답게, 주체답게 어떻게 이번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다. 이미 본부에서 학생들을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보직교수들이 대거 사퇴한 상황에서 점거농성은 명분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신 학내 구성원 단체의 위상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대학평의원회 구성과 운영방식, 실제 굵직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구성원들의 의견은 정관과 내부 규정상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를 명문화 하고 제도화 되도록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화여대 본부 역시 교육기관으로서 명분에 집중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줄 때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그간의 불통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지난한 논의’를 진행할 것을 다시 강조한다.

대학가는 여전히 이대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이대 사태는 ‘대학이 한 단계 도약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느냐’를 결정짓게 될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학답게 이번 사태가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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