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용 전주비전대학 교수

통일 준비는 유실수를 심는 일이다. 거친 땅에 박힌 바윗덩어리와 자갈들을 골라내고 거름을 준 후 정성스레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다음 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알찬 열매가 열리기까지 몇 년을 지난하게 기다려야 할 일이다. 어쩌면 풍성한 알맹이의 혜택은 내 생이 아니라 내 자식대가 되어서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통일은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 대부분은 반대 사유로 ‘통일비용’의 문제를 언급한다. 유럽 제일의 부국이었던 서독도 동독을 통일하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었고, 그래서 서독 국민들이 고통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은 어떤 모습인가?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독일은 지금도 유럽을 넘어 세계 속의 강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분명 서독은 통일을 위해 큰 희생을 치렀고 옛 동독지역과 서독지역의 격차는 지금도 존재한다. 1990년 10월 통일이 되기 십 수 년 전부터 서독은 통일을 위한 준비 노력으로 동독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경제, 정치, 인도적 차원의 많은 지원을 해왔다. 하지만 막상 통일이 되자 동독인들은 생활수준이 높은 서독으로 대거 이동했고 이로 인해 동독은 경기침체에, 서독은 인력의 공급 초과현상으로 실업률이 치솟게 되었다. 서독 정부는 동독 지역에 기업들을 이전시키는 정책으로 사람들의 이동을 막아보고자 했으나 그 때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동독인들의 기술력이었다. 동독지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해도 서독 기업들의 앞선 기술력을 동독의 인력들이 뒷받침해 줄 수가 없던 것이었다.

통일이 된 이후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은 남북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일에 사용될 것이다. 그 격차는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가 주어졌을 때 가장 효율적이다. 그래야 남한의 공장이 북한에 지어지는 게 가능하고 북한의 인력으로 더욱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을 대비 해 우리는 북한의 인력을 현재 남한과 대등한 기술력을 전수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통일 준비 방안 중 하나는 바로 탈북자들을 뿌리산업 기술자로 양성하자는 것이다.

뿌리산업이란 주조, 금형, 용접, 표면처리, 소성가공, 열처리 등 부품 혹은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초공정 산업을 말한다. 제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된다는 의미에서 뿌리산업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뿌리산업은 기계, 자동차, 선박, 반도체, 전기, 전자산업이 발달한 나라에서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그 작업이 고되고 힘들어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이 직종에 조사하는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가 다양한 사업을 벌이려 해도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뿌리산업 관련 기술자를 양성하는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시기에 탈북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이 기술교육을 책임지고 지역 뿌리산업 기업체가 현장실습과 채용을, 지자체와 정부가 교육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해 본다. 뿌리산업 기술자로 양성된 탈북학생들은 졸업 후 분야별 산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학생 및 산업체 종사자들의 지도자로 활동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뿌리산업의 기술과 더불어 남북의 문화적 이질감, 기술용어의 통일화를 위한 교육을 실시한다면 그 효과는 더욱 배가될 것이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내용은 대학에 특성화된 전공 관련 통일 기술 동아리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농촌 지역에 전기과 학생들이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노후전기 시설을 교체해주고 건축과 학생들이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 등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지역 대학들이 특성화된 전공과 관련된 통일 기술 동아리를 결성한다면 통일 후 각 대학의 동아리가 북한의 지역별 담당을 정하여 빠른 시설 및 환경 개선에 앞장 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고교 학생들의 진로·직업체험 학습과 관련된 제안이다. 교육부는 올해 시범단계를 거쳐 내년부터 모든 중학교가 의무적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진로·직업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들이 진로·직업 체험센터를 만들어 운영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역별로 통일 거점 대학을 육성하여 대학에서 진로와 직업만이 아닌 통일을 체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해 보자는 것이다. 막상 닥친 통일의 현실은 우리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과는 다를 수 있지만 그 때를 염두고 두고 미리 예습을 해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에게 다가올 이질감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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