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속속 대선주자들의 교육철학과 공약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대 폐지론, 사교육 폐지론, 수능 폐지론 등등 대입 관련 각종 '폐지론'을 앞세운 공약들이 가장 눈에 띈다. 서울대 폐지론이 가리키는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지난 대선 때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 역시 대학 서열화와 대입경쟁을 막기 위한 일환이었다.

물론 입시가 전체 교육과 계층이동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키워드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쉬운 건 대학이 안고 있는 다층적인 문제들은 놔두고 입시만 건드리는 모양새다. 아직 대선주자 캠프가 완성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표를 의식한, 대학의 목소리와는 단절된 공약들이 열거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정부는 소득연계형 반값등록금을 대학 제1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 결과는 어땠나. 지난 4년간 등록금 인상 대학을 손에 꼽을 만큼 등록금 물가 잡기에는 성공했다. 국가의 대학재정지원을 OECD 평균인 GDP 1%로 올린다는 공약도 올해 0.99%까지는 달성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해당 재원을 차지하는 국가장학금 4조원은 대학의 등록금을 국고로 대체했을뿐이었다. 오히려 정원은 줄이고 국가장학금 2유형으로 대학의 장학금 확충을 유도했기 때문에 대학들로서는 '본전'만 겨우 채웠거나 재정규모가 줄었다.

등록금 부담을 줄이는 것은 중요한 시대적 과제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급부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일부 대학을 선별해 나눠주는 방식의 국고사업이 난립해 대학은 본연의 교육과 연구보다 평가 잘 받기에 골몰하면서 안쪽으로 썩어 들어갔다. 국고사업으로 대학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고, 각종 정책유도지표를 연계하면서 온갖 갈등과 내홍으로 대학 내 거버넌스는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공약 사항이라면서 국가장학금 정책과 등록금 동결기조만은 올해도 유지했다. 대학 생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대중 인기에 영합한 공약이 얼마나 뒤틀린 대학사회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풍선효과' 사례다.

박근혜정부는 '고학력 비정규직의 비극' 강사문제는 공약에 없었다는 이유로 5년 동안 전혀 개선해내지 못했다. 급기야 이전보다 더 악법을 만들어냈다는 날 선 비판에 직면했다. 재정난을 호소하는 대학들은 급기야 시간강사에게 줄 돈이 없다면서 전임교원 책임시수를 높이고 교직원 연봉을 깎는 등 인건비에도 손을 대는 실정이다.

대선주자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대학을 어설픈 공약에 동원하지 말라. 대학을 인기영합에 사용하지 말라. 이미 충분히 뒤틀려있다. 진정 대학인들의, 청년들의 고통을 듣고자 한다면 무거운 마음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대학 현장에서 가능한 한 많은 계층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이해한 뒤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것만이 대학을, 이 사회를 정상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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