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끝나갈 무렵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가 이뤄졌다. 꽃샘추위가 봄이 오는 신호이듯,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 사실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소리와도 같다. 이번 사태는 우리 한국 사회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를 가늠하는 중대한 기로가 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새롭게 열어갈 것인가 하는 과제를 던져 주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학은 안팎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지난해 이대 미래라이프대 사태는 박근혜 정부 대학정책이 응축돼 터진 대학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고, 부정입학과 학사 특혜, 재정지원사업 특혜 의혹까지 줄줄이 이어지면서 대학과 대학정책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학과 지식인의 반성도 분명 필요하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는 엘리트 지식인 관료들의 역할도 한몫했다. 무리하게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실시하면서도 조직 내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을 강조하고 반발하는 이를 제거하는 식의 통치는 과거의 산물로 남게 됐다.

이제 대한민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심판의 민주주의에서 대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각자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제 목소리를 내고 토론하며 협의해나가는 의사결정 방식이 자리 잡을 수 있느냐 여부와도 직결된다.

대학도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 혁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공정한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이다. ‘안주하는 엘리트 집단’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된 ‘상아탑’을 ‘사회 지성인 집단’의 상징으로 바꿀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다.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달라는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대학본부, 법인, 교수, 직원, 학생. 비정규 교수와 비정규 직원. 고등교육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와 권력관계가 중첩돼 있다. 언제나 정책과 재정 문제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얽혀있는 문제를 단숨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고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부단히 소통하고 해결방안을 찾으려는 자세만이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견제역할을 담당하는 대학평의원회가 제 역할을 하고, 대학본부와 이사회는 떳떳하게 검증을 받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확대해나가는 제스처가 중요하다.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인권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 이것이 새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될 것이다.

또한 대학 운영진이든 구성원이든 부정비리는 단호하게 잘라내야 한다. 정유라 입학 및 학사 특혜는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일이었다. 대학이 사익을 얻기 위해 권력이나 자본과 유착하게 되면 부정비리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이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고등교육 발전 방향을 설계하는 데 있어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이 반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해관계는 잠시 내려놓자. 더 많은 토론과 더 따뜻한 이해, 더 진심 어린 양보를 바탕으로 한 더 섬세한 선순환 체계. 우리 대학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간 협력이 필요하다.

곧 봄이다. 대학 위기를 가져올 여러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전성기로 만들어볼 준비를 시작하자. 이제는 반목과 대결을 끝내고 미래를 향한 화합과 협치의 튼튼한 토대를 대학이 앞장서 주도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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