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권 보장 위해 대회 출전 최저학력제 도입…현장선 반발

“다른 방법은 없나” “관리·지원체계 뒤따라야” 목소리도

▲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가 올해부터 C학점 미만 학생 선수의 출전 금지 조항을 적용하면서 대학 체육계가 학습권 보장과 학생 인권침해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한국대학신문 이한빛·구무서·주현지 기자] C학점 미만 학생 선수 출전 금지가 대학 체육계에 파장을 몰고 왔다. 관계자들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출전 금지 처분에는 이견을 나타냈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이번 상반기부터 협의회 주체 경기인 농구ㆍ배구ㆍ축구ㆍ핸드볼 대회에서 직전 2학기 평균 C0학점 이하인 학생들의 출전을 금지했다. 이 규정에 따라 회원교 93개 대학에서 102명의 선수가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이에 현장에서는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A대학 축구부 감독은 "대학은 자율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원하는 대로 학점을 얻는 것"이라며 "대한축구협회와 공조해 규정에 넣어 출전을 규제한다면 소송도 고려할 것"이라고 항변했다.

■ 공부하는 운동선수, 왜 강조되나 =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 보장이 제기된 배경에는 공부 없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과거 엘리트 체육이 강조되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보다는 운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기조가 생겨났다. 대학 역시 체육특기생 제도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면서 이에 동참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유라 사태'로 인해 학생 선수들의 입시와 출결문제가 부각되면서 운동선수 학습권과 경기출전 금지 제도가 수면위로 드러났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논의돼왔다. 지난 2007년 안민석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해 의결된 바 있는 '학원체육 정상화를 위한 촉구 결의안' 두 번째 항목으로 최저학력제 도입이 포함됐으며, 같은 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도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과 함께 최저학업기준인정제도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발맞춰 대학에서도 학습권 보장 및 학업능력 신장을 위해 최저학력제 도입을 시도했다. 대학운동부를 운영하는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지난 2012년부터 기준 학점 사항에 대해 논의를 거쳤으며 2년여간의 워크숍 등을 통해 2015년 직전 2학기 평균 학점 C0 이하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회 출전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확정했다. 이 조항은 2016년 1학기부터 적용하려 했으나 학교 현장에서의 준비기간과 적응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실시했다. 한편 올해 신규 리그로 참여하는 대학야구 주말리그는 최저학력제 적용을 1년 유예했다.

전문가들은 운동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국내 스포츠 산업 구조상 학생들에게 다양한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학부생일 때 학습능력 향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운동에 집중해온 학생들이 졸업 이후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할 경우 사회 부적응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포츠의 관심과 열기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 여건상 학생들이 프로를 비롯해 체육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진로를 형성해나가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지난 2011년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졸업 야구선수의 프로 진출 비율은 전체 13.6%에 불과했다.

신승호 국민대 교수(스포츠교육)는 "프로까지 진출하는 선수는 전체 선수 중 극소수"라며 "직업적 활동을 하려면 일정한 지식과 상식이 필요한데 대학에서 이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 진출을 포함해 체육계에서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학생들에게 수업을 통한 교육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미혜 인하대 교수(체육교육)는 "운동적 경험 말고도 심리학, 코칭학, 교육학 등 대학 수업으로 배울 것은 상당히 많다"며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출전 금지는 가혹, 다른 방법 찾아야 vs 선진국도 있는 제도 = 대학가에서는 학생 선수의 학업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출전 금지가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그동안 운동만 해왔던 환경에서 자라온 점과 프로 및 취업을 코앞에 둔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고려하면 출전 금지는 가혹한 처사라는 의견이다. 또한 이미 장학혜택 제외 등의 불이익을 받는 상황에서 리그 출전마저 제한하면 학생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당장 프로 진출 등 진로를 위해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선보여야 하는 4학년 선수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지방 B대 축구부 감독은 "지금까지 선수로 성공해보겠다고 열심히 운동을 한 학생들인데 졸업을 앞두고 출전을 막는 것은 한 사람의 앞길을 막는 것이고 인권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장협의회는 현재 가장 큰 타격을 받는 4학년 선수의 출전금지 현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다만 유예기간 동안 꾸준히 홍보를 해왔으며 최소한의 학점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번복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출전 금지 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대학축구협회 변석화 회장은 "아주대의 경우 튜터링과 보충학습을 실시하는 등 학생들의 학업능력을 키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며 "학생보다 규정이 우선이 돼선 안 된다. 시스템을 먼저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총장협의회는 선진국에도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제도라며 시행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대학의 운동 경기를 주관하는 전미대학경기협회(NCAA)는 1281개교가 가입해있으며 기준 학점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은 대회에 출전할 수가 없다.

한종우 집행위원(고려사이버대 교수)은 "NBA의 전설적인 선수인 카림 압둘 자바도 대학선수 시절 성적이 미달돼 출전을 못한 바 있다"며 "우리도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에 기준으로 삼은 C0 학점은 출결, 과제 제출, 시험 응시 등 기본적인 학사 과정만 잘 소화하면 충분히 취득 가능한 학점이라는 의견이다.

한종우 집행위원은 "C0는 학사경고를 면하는 수준이다. C0도 안되면 학사경고라는 뜻인데 학사경고를 받으면서 대학에서 운동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기본 소양 교육을 충실히 실시하고 학습한다는 의미를 되새겨봤을 때 C0라는 기준은 최소한의 학점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공부하는 학생 선수 육성, 대학 변화 절실 = 학생들의 학습권을 지키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출전제한 제도가 실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대학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언급한 미국도 최저학력을 설정해 미달 학생들의 출전을 제한하고 있으나 엄격한 관리를 통해 실제로 학습능력을 도모하고 있다.

1년 내내 운동을 하는 국내 상황과 달리 미국은 대회가 있는 특정 시즌에만 운동을 하고 시즌이 끝나면 학업에 몰두한다. 또한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개인별 수업을 실시하고 출결과 성적을 담당 교수에게 확인한다.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문화와 시스템적 제도가 구비돼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운동부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강의를 마련하는 고려대나 야간수업을 개설한 아주대, 인하대 사례 등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학의 시스템 구비 상태와 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신승호 교수는 "출전제한 같은 규제가 실효적 효과를 거두려면 미국처럼 학생들의 학습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방책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학점 취득의 공정성 및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손천택 인천대 교수(체육교육)는 "대학의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각하고 대회나 매달 성적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는 인정학점 등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다면 학업능력을 신장시키겠다는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 남아있는 논란의 불씨, 제도 정착은 오리무중 = 이번 학기부터 최저학력제 출전 금지가 전격 도입됐으나 전면적 확대 시행은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각 스포츠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의 출전을 총장협의회가 제한할 권리와 강제성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다. 스포츠총장협의회 회원 대학과 비회원 대학이 함께 대회에 참가하는 대학축구리그(U리그)는 대학마다 이견이 있는 상태다.

A대학 축구부 감독은 "리그 대회 주관은 대한축구협회에서 하는건데 총장협의회가 이를 제재할 권한이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협의회 회원교에만 규정을 적용할 경우 회원교 대학의 역차별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C대학 학생지원팀장은 "회원교가 학점제한 선수를 제외했는데 비회원대학이 학점에 상관없이 학생들을 출전시키면 형평성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U리그 참가를 앞두고 일부 대학들은 C0학점 이하 선수의 출전 강행과 대회 참가 포기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연세대는 최저학력제 출전 금지로 14명이 출전하지 못하게 되면서 선수 부족을 이유로 지난 21일 개막을 앞두고 불참을 선언했다.

갈등 해결은 결국 총장협의회와 각 대회를 주관하는 연맹 간의 협의에 달렸으나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학생의 학습권과 대회 출전, 성적 및 진로 등을 둘러싸고 대학, 협의회, 연맹, 학생 및 학부모 등의 입장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총장협의회 측은 이번 제도 도입이 학생 선수 학습권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강신욱 집행위원장은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방안인데 마치 학생들을 힘들게 하고 억압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그동안 학사 관리나 규제의 중요성과 심각성에 대해 대학사회에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이번이 터닝포인트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축구의 경우 대한축구협회는 제도 유보를, 총장협의회는 전면적 시행을 주장하며 의견이 엇갈린 상태다. 이 가운데 24일 개막한 U리그는 최저학력제 출전 금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유보된 채 치러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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