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대사건, 지리산 결사대 등 변호사 시절 지역 대학 관련 변론

▲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5ㆍ3 동의대 사건과 지리산 결사대 사건 등 굵직한 대학가 시국사건을 맡아 대학생과 교수를 변론했던 사실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부산지역 인권변호사이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부산지부와 경남지부 대표를 맡았고, 그 인연으로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 노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변론을 다수 맡은 바 있다.

인권변호사로서 대학과의 첫 만남을 꼽자면 영화 <변호인>(2013)으로 잘 알려진 신군부 용공조작사건인 1981년 부림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부산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을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해 수십일간 불법 감금하고 고문 기소한 사건이다. 배후로 부산대 학생 등을 지목했으며, 2012년 재심, 2014년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부림사건 피해자 22명 중 한 명으로 구속됐던 당시 부산대 학생회장 출신 졸업생 이호철씨는 참여정부 들어 민정수석을 지냈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삼철’ 중 한 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독 동의대와 관련된 일화가 많다. 문 대통령은 1989년 당시 동의대 입학부정 사태가 촉발한 뒤 발생한 5ㆍ3 동의대 사건에서 기소된 학생, 해직교수 복직을 위한 변론을 맡았다.

동의대사건은 김창호 교수 등 일부 교수들이 1989학년도 후기 입학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점을 폭로한 뒤, 학생들이 총장실 점거농성을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학생들이 5월 1일 노동절과 맞물려 교문 밖에서 노태우 정권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던 도중 경찰이 시위학생 한 명을 검거하자, 다음 날 학생들은 전경 5명을 납치해 중앙도서관에 감금했고, 3일에는 경찰이 구출작전차 도서관에 진입했다가 학생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전경 7명이 목숨을 잃고 10명이 크게 부상당한 사건이다.

경찰은 학생들이 건물에 뿌린 휘발유와 화염병에 의한 화재 폭발로 경찰들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학생들은 휘발유를 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 99명이 연행, 그중 72명이 구속 기소됐다. 재판에서는 징역 7년부터 무기징역까지 중한 선고를 받았다. 이 학생들을 위한 변호인단에 문재인 대통령이 중심축으로 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변론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밝히기 위한 모의실험을 진행해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입시부정을 폭로한 김창호 교수와 장희창 교수 등 3명도 ‘허위사실 유포’ ‘학생 시위 주동’ 등의 이유로 대학 당국 재임용과정에서 해직당했다. 실제 검찰도 4차례에 걸쳐 입시부정이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4년 뒤인 1993년 문민정부 들어 재수사를 거친 뒤 입시부정이 사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교수가 복직하기까지 17년이라는 기간 동안 변론을 맡은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경남지역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학생들과 교수의 변론을 맡았다. 우선 1991년 10월 진주전문대(현 한국국제대)에서 일어난 소위 ‘지리산 결사대’ 사건이다. 경상대 학생들이 지리산 근처에서 ‘빨치산 후예를 자처한 주사파 행동대’를 꾸리고, 진주전문대 총학생회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경상대생 19명이 구속되고 6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소된 학생들은 부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도움을 청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를 맡았다.

또 하나는 1994년 경상대 교양강의와 교재 《한국사회의 이해》가 국가보안법상 찬양 고무 동조 및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 등의 혐의로 이 수업을 맡았던 장상환 교수(경제학과)와 정진상 교수(사회학과)를 불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경상대는 1994년 2학기 이 수업을 폐강 조치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두 교수에 대한 변론을 11년간 주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이 책은 자유민주 질서를 부정하거나 사회주의 혁명을 선동하고 있지 않다”면서 “교수의 학문적 판단은 학문 내 시장 질서에 맡겨야 한다. 검찰의 기소는 사회과학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론을 폈으며, 결국 2005년 대법원은 이적표현물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정진상 교수는 당시 상황에 대해 “변호인단은 30인 정도 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부터 1심과 2심, 대법원 무죄판결이 나기까지 거의 무료로 변론했다. 학문적인 논쟁이 필요해 복잡한 사안이었음에도 일일이 자신의 언어로 바꿔서 성실하게 대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서 과거 변론했던 이들을 만나, 노동과 사회, 인권 분야에서 더 뚜렷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도 학생운동을 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한 바 있고, 변호사 시절에도 대학 구성원들을 주로 변론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본부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당시와 지금은 정치적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공약과 과거 행보를 종합해보면 대학 개혁에 대한 의지는 상당히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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