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서울대·사립대 참여가 관건 … 정책 우선순위 재선정 지적도

▲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지난 18일 원탁토론아카데미 포럼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이재·천주연 기자] 문재인정부 대학정책의 원형은 뜻밖에 시도교육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교육실험이다. 조희연 교육감이 지난 3월 중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대학의 서열체제를 개편하자고 내놓은 안에는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대학정책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조희연 교육감은 3월 “우리의 목표는 학벌사회 해소와 대학서열 해소, 입시 해소의 3대 해소 과제를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연 교육감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달성해야 할 결과적 목표이자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학벌 등 온갖 부조리함이 결합된 직업과 임금의 서열구조가 깨지지 않으면 그 서열구조에 조응하는 대학서열체제도 지속될 것이며, 그 조건에서 입시는 해소될 가망이 없다. 사회와 초중등교육을 매개하는 중간지대 영역인 대학이 사회체제의 평등성을 견인하고 동시에 입시를 해소하면서 초중등교육을 정상화시키는 중요 장치 또는 계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이 밝힌 대학정책 철학은 그보다 앞서 출간된 문재인 대통령과 소설가 문형렬씨가 엮은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책에서 사회계층을 결정하는 요소 중 교육을 강조하는 문형렬씨의 질문에 “교육이라는 게 원래 기회를 그만큼 늘려나가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라며 “이제는 불평등이 심화돼서 있는 사람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없는 사람은 더 낮은 교육을 받는다. 교육 자체가 대물림처럼 돼버리고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부서져버렸다. 누구나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입시제도를 단순화해야 한다”며 “수능이든 내신이든 특기전형이든 이런 것 중 하나만으로 입학이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도가 불평등을 조장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밝혔다. 이어 “근본적으로는 대학 서열화를 없애고 전문 분야로 재편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대학평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공동입학, 공동학위제가 가능하다. 단순히 학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공동학위를 주는 것이다. 지난 대선(18대 대선) 때 국공립대학부터 먼저 공동입학 공동학위제를 하겠다고 공약을 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 사립대학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에 대한 의지를 동시에 밝힌 대목이다.

여기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5월 18일 서울글로벌센터 원탁토론아카데미 교육포럼에서 밝힌 내용을 포함하면 문재인정부가 그리고 있는 대학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낸다. 김상곤 전 교육감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국공립대 학생 비율을 현재 24%에서 5년 내 4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밝혔다. 또 공영형 사립대도 5년 내 30곳 안팎이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공립대 수를 늘리지 않더라도 공영형 사립대를 도입하면 국공립대 재학생 비율을 목표치에 근접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대학정책은 이 40% 안팎의 학생과 약 70개에 달할 국공립대와 공영형 사립대에 투자를 거듭하고 각 대학들의 학위과정을 연계해 전국에 걸친 하나의 대학망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들 대학이 일정하게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고 시민들이 요구하는 고등교육 수요를 담당하면서 입학 문턱을 낮추고 대학 교육비를 대폭 인하하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과도한 대학 서열화와 입시과열 그리고 학벌주의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동시에 눈여겨볼 정책은 자율형 사립대다. 보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이른바 SKY대학(서울대·고려대·연세대)을 비롯해 공고한 대학서열체제에서 상위권을 점하고 있는 대학들에 대한 정책이다. 이들은 재정적으로도 튼튼하고 교육여건이나 질도 뛰어나 사실상 정부의 지원 없이도 대학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는 대학들이다. 국민 세금으로 이들 대학을 지원한다고 해도 공감대를 얻기 힘들 뿐만 아니라 역으로 대학에서도 국고지원을 바라고 운영권의 일부를 넘길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이들 대학에 대해서는 재정지원을 완전히 차단한 채 대신 등록금 인상 등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정책이 모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부 사립대는 자체 재원을 활용해 자율적이고 특성화된 발전을 노리고,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 전환 대학은 대학 진학을 바라는 다양한 계층과 환경의 시민들에게 가깝게 고등교육을 하는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다. 여기에 전문대학까지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을 유도해 부피를 좀 더 키우면 불필요한 대학 간 경쟁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지역균형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다.

여기까지가 청사진이다. 두 정책이 바로서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에서 국공립대 네트워크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것도 이 같은 어려움을 인식한 결과로 해석된다.

우선 공영형 사립대부터 살펴보자. 공영형 사립대의 어려움은 우선 재원이다. 강하게 공영형 사립대 추진을 요구하고 있는 교수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10여 개 사립대를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35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예산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매년 지출이 담보돼야 하는 비용이다. 현재 대학지원 예산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예산은 아니다. 특히 문재인정부의 공약대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제정된다면 해결이 가능하다.

다른 문제는 참여대학의 확보다. 공영형 사립대의 딜레마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발전 여지가 남아있고 대학운영이 견실한 대학은 사실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을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면 공영형 사립대 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1차연도에 어떤 대학을 공영형 사립대로 전환하는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우려는 오히려 부실·비리사학들이 공영형 사립대 전환에 응하는 경우다. 운영권의 일부를 넘겨주더라도 대학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다면 사실상 세금을 동원해 부실·비리대학을 연명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서울대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점적인 문제다. 서울대가 빠진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정책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있지만 동시에 서울대를 국공립대 네트워크에 포함시킬 경우 서울대의 역량을 갉아먹는 ‘하향평준화’가 일어날 것이란 지적이 있다. 실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이런 문제로 서울대 폐지론이 역풍을 맞았던 전례가 있다.

보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2012년 당시 서울대는 일반 국립대였지만 현재는 국립대 법인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사립대도 아니고 국립대도 아닌 새로운 형태다. 대학의 운영 자율성을 강조했던 정책으로,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법인화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논리다. 서울대를 국공립대 네트워크에 포함시키려면 우선 법인화법부터 손봐야 할 필요가 생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선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바른정당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최원기 수석전문위원은 “공영형 사립대나 국공립대 네트워크는 문재인 대통령이 하겠다고 한 것이니 장단점을 분명하게 따져보고 실시해야 한다. 현재 긴급한 우선순위는 아니라고 본다. 인구변화가 목전에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정책들이 우선이다. 그 뒤에 체질을 바꾸는 정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대학구조개혁과 지방대 불이익 조정 등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김지영 수석전문위원은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영 위원은 “공영형 사립대는 결국 관선이사가 파견돼 활동하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인데 이 부분은 국민의당에서도 공감했던 내용”이라며 “그러나 그 활동에 있어서 자율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교육부 정책에 종속되는 것 아닌가. 실제 문재인정부는 교육부 폐지에 대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국가교육위원회도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의장이 대통령인 자문기구인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교육정책 논의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국민의당은 향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교육정책을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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