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위 ‘정상화 심의 원칙’, 비리 사학 복귀 통로로…
변화된 법리에 맞춰 심의원칙 개정해야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해선 우선 ‘악한 고리’인 사학비리를 근절해야 한다. 사학비리대학들은 대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돼 왔다. 문재인정부가 공약으로 내건 국공립대 네트워크와 공영형 사립대도 벌써부터 사학비리재단의 연명수단으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본지는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꼽히는 사학비리 근절을 위해 현재 상황과 중장기적 대책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편집자주>

<연재기획_사학비리 근절대책>

上. 사학분쟁조정위원회 10년, 만신창이 상지대와 개선방안은

中. 사학비리 근절, 법개정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단기적 대책은

下. 사학비리 근절 중장기 대책, 해법은 입법이다
 

▲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에게 임시이사 파견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이재‧이하은‧김진희 기자] 상지대 이사회가 진공상태가 됐다.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 9명의 임기가 지난 6월 7일자로 만료됐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김문기 총장이 해임된 뒤 총장대리로 운영되고 있는 상지대는 이로써 총장과 이사회가 모두 붕괴됐다. 앞서 지난해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D-)을 받은 바도 있어 사실상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당분간 호전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총장을 선출할 이사회는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공백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월 김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후임이사 명단이 교육부로 제출됐지만 이 대학 교수협의회가 4월 19일 춘천지방법원에 이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한 채 보직인선을 강행했다는 게 이유다. 대학 측은 이에 대해 이사회회의록 등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추천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분규 대학의 정상화를 조정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와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사실상 손을 놨다. 사분위는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상지대에 대한 정상화 심의를 잠정 중단한다는 입장이다.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리 공방은 8일 처음으로 시작됐다. 교육부는 가처분 신청 판결과 사분위의 조정 결과를 기다리며 오는 26일께나 상지대 임시이사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교수협의회는 모든 사태의 원인으로 사분위를 지목하고 있다. 상지대가 사학비리의 상징처럼 부상한 데는 결국 사분위의 잘못된 결정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잘못된 결정을 거듭해 상지대를 학내 분규로 내몰고도 사분위는 사과는커녕 위법한 결정을 감추기에만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 사분위 ‘정상화 심의 원칙’이 김문기씨 복귀 통로로=상지대 사태의 직접적인 발단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에 상지대는 이미 1970년대 부정입학 등으로 퇴진하고 구속됐던 김문기씨가 총장으로 복귀했다.

총장이 된 김씨는 인사권을 남용했다. 서류심사나 면접시험 없이 계약직 2명을 특채했고, 친아들 김성남씨를 상임이사에 앉혔다. 족벌경영이다. 김씨의 상지대 총장 복귀를 거세게 반대했던 정대화 교수를 비롯해 교수 4명을 파면했다. 지배구조를 갖춘 김씨는 교육용 기본재산을 부당하게 이용했다. 교육용 기본재산으로 엄격히 용도가 정해져 있는 총장 관사를 무단으로 측근인 상지대 한방병원장에게 무상으로 사용하게 한 게 단적인 예다.

교수협의회는 반발했다. 총학생회와 손을 잡은 교수협의회는 김씨 퇴진을 요구하며 학내 농성을 시작했다. 총학생회는 교육부에 임시이사 파견을 촉구하며 동맹휴업에 돌입했다. 학내 분규가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상지대는 만신창이가 됐다. 대학의 존폐를 결정짓는다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사실상 최하위권인 D- 등급을 받았고, 정부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이 모두 취소됐다. 그간 받았던 국고지원금은 모조리 반납했다. 그해 대학 입시 역시 실패하는 등 대학 운영이 파탄지경에 이른 것이다. 김씨의 복귀와 그로 인한 사학비리가 불러온 파국이다.

전문가들의 화살은 사분위를 겨냥한다. 김씨는 사분위가 독점적으로 휘둘러온 이른바 ‘정상화 심의 원칙’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사분위는 1974년 퇴출됐던 김씨 일가의 2010년 대학 복귀를 허용했다. 이후 김씨 일가가 장악한 상지대 이사회는 2014년 공식적으로 김씨를 총장으로 선임한다.

사분위는 2007년 참여정부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치열한 다툼 와중에 탄생한 기구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천막당사 투쟁에 밀린 참여정부는 사분위 설치를 비롯해 개방이사 추천권한 후퇴, 대학평의원회 기능 축소 등을 골자로 한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동의했다.

전문가들이 사분위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정상화 심의 원칙이다. 사분위 정상화심의 원칙은 사학 분규 이해 관계자(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종전이사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양자의 합의안대로 정상화를 이행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단서가 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종전이사에게 이사 정수의 과반수에 해당하는 추천권을 넘긴다. 종전이사는 사학 분규가 발생해 교육부가 임시이사를 파견하기 직전의 이사들을 일컫는다. 사실상 옛 재단에 속한 종전이사에게 정상화 이후 대학 운영권을 넘기는 셈이다.

이런 판단의 배경엔 이른바 김황식 판결로 불리는 2007년 대법원 판례가 있다. 김씨가 상지대 복귀를 위해 줄기차게 제기했던 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2007년 김씨가 제기한 상지대 임시이사의 정이사 선임 무효 소송에서 종전이사가 이사회에 법률적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며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른바 ‘사학의 자주성’을 인정한 것이다. 설립자가 있는 사학재단은 설립자의 유지가 계승돼야 하므로 문제를 일으켰더라도 설립자가 선출한 종전이사들에게 경영권이 있다는 논리다. 이런 판례에 따라 사분위는 옛 재단 측 이사의 정상화 뒤 경영권을 인정하는 정상화 심의 원칙을 가다듬었다.

정상화 심의 원칙을 기반으로 사분위는 2008년부터 60개 사학재단의 정상화를 강행했다. 대학은 28곳에 달한다. 지난 2월 도종환·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따르면 이 가운데 상당수 대학이 여전히 사학 분규가 발생하고 있다. 2007년 출범 초기부터 사분위가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까닭이다.

사분위 회의록을 통해 드러난 사분위원들의 인식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사분위원들은 정상화 심의회의에서 “새로운 주인 선임은 우리가 하는 것”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너무 들어주면 목소리만 더 커진다” “종전 설립자를 이사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다음 임기 때 이사진에 합류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 등 사실상 옛 재단에 치우친 발언을 일삼았다.

특히 39회차 회의에서 한 사분위원의 발언은 사실상 사분위의 정상화 심의가 편향적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 사분위원은 당시 “종전이사를 임시이사 파견 직전의 임기 만료된 사람으로 한정하면 법인의 주축이었던 분들은 죄를 지은 것이 많아서 임원 취소를 당해버리고 속된 말로 주변에 계신 분들은 죄를 안 지어 임기를 채우게 되니 결과적으로 학교 설립자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헌재 판결로 비리 사학 복귀 제동 걸려, 하지만 여전히 갈 길 멀다는 지적도= 그러나 사분위의 이런 편향된 정상화 심의는 지난 2013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출퇴를 맞는다. 헌법재판소는 사분위 정상화 심의 원칙의 기반이 됐던 사학의 자주성에 대한 해석을 전복한 판결을 내려 사분위의 일방적인 구재단 편들기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판결문에서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의 영속성은 ‘이사의 영속성’이 아니라 ‘정관’에 의해 보장된다”고 판시했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인적 연속성, 즉 비리를 저지른 종전이사의 소유권을 보장하기보다 교육과 연구 등 대학 본연의 기능에 몰두해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를 반영해 2015년 대법원은 처음으로 학내 구성원의 손을 들어줬다. 상지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헌법상 대학자치의 주체이고, 정상화 과정에서 이사선임을 다툴 자격을 인정한 판결을 한 것. 실제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교육부의 상지대 이사선임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해 그해 12월 김씨의 총장 해임과 상지대 임시이사 파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지대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김명연 상지대 교수(법학과)는 “정상화 법리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검토와 심의 없이 종래 정상화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 학교법인을 정상화하고 있다”고 교육부를 비판했다.

김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판결이 갖는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 판결을 정상화 과정에 있어 개방이사 선임과 관련한 단순한 절차상 하자로 의미를 국한했다”며 “교육부와 사분위가 김문기 옛 재단에 학교운영권을 회복시키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재의 정상화 심의 원칙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종전이사에게 이사 정수의 과반수 이상의 정식이사 추천권을 부여해 경영권을 보장해 필연적으로 갈등이 재발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면서 “변화된 학교법인 정상화 법리에 정합하도록 심의 원칙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상화 심의 원칙의 개정으로 종전이사 추천부터 제한해야 제대로 된 사학의 정상화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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