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강점인 인문학 전통·스포츠 정신 살려 융합형 인재 양성 목표”

“부산시와 손잡고 산학 체제 강화해 서부산 활력 불어넣을 것”

[한국대학신문 황성원 기자] 부산 사하구 승학산 자락에 펼쳐진 동아대 승학캠퍼스를 둘러싼 녹음이 짙다. 교내 민주광장에는 학교 상징인 청동 표범이 있다. 지구본이 표범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표범의 빠른 발놀림과 당당한 위풍은 ‘동아맨’과 닮았다. 1946년 개교해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은 그간 걸출한 동아맨들을 수없이 배출해왔다.

그 표범들의 선봉에는 한석정 총장이 있다. 지난여름, 탈권위를 표방한 총장 취임식에는 주요 내빈 소개 대신 학교 환경미화원과 경비원 등의 학내 구성원의 축하 인사가 담긴 영상을 상영했다. 이후 자신이 실패했던 이야기를 재학생들에게 풀어놓은 실패학 특강과 개강 악수행사 등을 하며 권위를 내려놓고 학내 구성원과의 거리감을 일보(一步) 줄여나갔다.

반면 동아대의 활동영역만큼은 범아시아까지 일보(一步) 늘려가겠다고 천명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총장은 동아맨들의 금자탑(金字塔)을 갈고닦겠다는 열의가 대단했다.

- 동아대는 역사만큼 인재 배출과 지역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해왔다. 자랑한다면.

“동아대는 70년 명문사학이다. 그만큼 동문의 힘이 세다. 정치인과 법조인, 국민적 스포츠 영웅도 많이 배출했다. 최근 스포츠 명예의 전당을 개관해 그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을 방문한 사람들은 ‘이럴 수 있을까’라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 정도로 유명 선수들의 모교다. 학교가 말 그대로 동문의 수만큼이나 끈적끈적한 의리애로 뭉쳐있다.”

- 복싱 마니아로 알고 있다. 최근 시니어 복싱대회도 출전했다. 이유가 있나.

“학창 시절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못 들어가 4수까지 했다. 그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는 별 볼 일 없는 청년이구나”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공부는 미뤄두고 운동부터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복싱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어릴 적 무하마드 알리를 좋아했고 그 영향이 컸다. 덕분에 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벌써 21년째다. 이 분야에서 전국 최장 기록이 아닐까 싶다. 복싱은 흠씬 두들겨 맞아 경기에서 지더라도 재기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주는 운동이다. 젊은 시절 워낙 많이 깨졌고, 다시 일어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몸이 기억하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이 꽤 괜찮은 교육 자료 같다.”

- 최근 학생들에게 실패학 강의를 했다. 상당히 특이하다.

“요즘 청년들은 실패하면 죽는 줄 안다. 강의를 듣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모아 나만의 실패 스토리를 이야기했다. 반응이 좋았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실패하자!’라고 외치더라. 쉽게 이야기해서 구호를 외치며 심적 부담을 떨쳐냈다고 본다. 이제 100세 시대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다. 여러 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강해지는 게 논리적으로도 이상적이다. 청년들에게 융합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경험으로 미뤄보면 30대 후반에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긴 과정이었다. 치과대학에 입학해 공부도 해보고, 신문사 기자, 평범한 직장인 등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면서 ‘평생 할 수 있겠다’라는 직업을 찾은 거다. 그렇게 해당 분야를 정진했고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청년들에게도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학교에서 지원해줘야 한다.”

- 인성 교육에 대한 방안도 있나.

“인성 교육과 관련해 교양과정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동아 젠틀맨’이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개인이 어떤 목표를 향한 전력투구도 좋지만 환경의식, 인문학적 소양 등을 두루 갖춰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근래 일부 검사들과 같이 머리만 발달한 ‘범생이’들이 권력자가 됐을 때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목격하지 않았나. 그래서 교육도 종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동아 젠틀맨이 미래지향적인 인재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 우리 학교에는 특이 유전자가 있다. 지난 70년간 양정모와 하형주, 문대성 등 동아대 출신 국가 스포츠 영웅들을 살펴보면 ‘투지’와 ‘박력’이 대단하다. 또 우리 학교는 인문학적으로 전통이 깊다. 학교가 보유한 국보유물만 하더라도 전국 대학 1순위에 꼽힌다. 단단한 인문학적 배경과 그에 걸맞은 교육환경, 동아대 출신이 가진 DNA가 뭉치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거라 확신한다.”

- 동아 젠틀맨십에 관해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무도와 인성’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올해 신입생부터 유도와 태권도 수강이 필수다. 전국 대학 중 유일무이하다. 재학생은 유도나 태권도 중 하나를 선택해 몸을 사용하는 법부터 인성과 사회봉사와 관련된 교안도 함께 배운다.”

- 학교의 인문학적 전통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동아대는 한국 최초 동양문화 연구원인 석당전통문화연구원을 설립해 고려사부터 팔만대장경 연구, 빈민촌 독서운동 등 인문학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해온 인문학 메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국보와 유물을 다수 보관하고 있는 석당박물관은 전국 대학 중 랭킹 1위다. 또 명성에 걸맞게 교육 커리큘럼도 확실하다. 영어영문학과와 중국어학과 등 13개 학과가 참여하는 인문융합콘텐츠기획과 창의인문경영 등 인문학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연계전공을 만들었다. 자기설계연계전공은 문자 그대로 인생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인문학 섭취가 필수다. 모든 단과 대학으로 확대시킬 계획이다. 더불어 지난해 인문역량강화사업(CORE)에 선정돼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게 인문학 콘서트다. 지난 5월에는 만해대상 수상자인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를 초청했고 이번 가을에는 도쿄대 교수였던 재일동포 학자인 김상중 교수를 초청할 예정이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사회 분위기가 이공계나 실용 학문 중심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데 동아대는 인문학을 보강해 융합교육을 시키려고 한다.”

- 이번에 사회맞춤형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LINC+)사업에도 선정됐다. 어디에 초점을 둘 계획인가.

“부산·경남에서 우리 대학의 강점은 산학이다. 재계의 유수한 지도자들을 배출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기본적인 방침은 ‘서부산 활성화’다. 부산 내 관광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은 경기가 활발하지만 서부산은 반대다. 이 지역이 1970년대에는 공단이 있어 부산의 핵심 물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심이 해운대 쪽으로 이동하며 낙후된 거다. 최근 서부산이 도시문화 재생과 산업고도화, 실버바이오·헬스 분야를 내세워 산학협력 정부 사업에 선정돼 5년간 220여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이와 함께 동아대도 LINC+ 사업에 선정되면서 각종 산학연계 교육과정을 만들어 서부산과 운명을 같이할 생각이다.”

- 동아대 활동영역을 동북아시아를 넘어 중동·환태평양까지 넓히겠다고 밝혔는데, 계획이 있나.

“포부를 밝힌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극빈 시절 한국은 여러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았다. 이제는 개도국에 기술과 교육적 조력 등을 베풀어야 할 때가 됐다. 두 번째는 서구와 중국, 일본에만 머물러 있던 시야를 세계 인구의 2할을 차지하는 회교권으로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권과 교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슬람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기초 아랍어도 배우고 있다. 할랄 연구와 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우리 학교는 현재 32개국 239개 기관과 국제교류협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탄탄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차근차근 실행해나갈 생각이다.”

- 대내외 여건으로 대학들이 연합 체제를 이루는 추세다. 동아대는 추진되고 있는 게 있나.

“현재 대학들이 연합하는 건 살아남기 위한 트렌드다. 학령인구가 감소해 정원이 줄어들고 등록금도 동결돼 재정 감축을 하거나 적자로 돌아서는 대학이 실제로 많다. 동아대도 생존을 위해 원도심에 위치한 한국해양대, 고신대와 협약을 했다. 원도심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문화가 융성한다. 10여 년 전 부민동에 동아대 다운타운 캠퍼스가 들어서며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사례가 있다. 고신대는 의학 분야 협력이 가능하고, 한국해양대는 해사법학부가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테고 이를 통해 구도심 부흥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 자신만의 좌우명이 있다면.

“‘60대까지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게 좌우명이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왔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청년들을 강건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고 준비생에게 금전적 도움을 주면서 온실 안의 화초로 키워선 안 된다.”

■ 한석정 총장은…

1953년생.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볼스테이트대학(Ball State University)에서 사회학 석사를, 미국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사회학 박사를 취득했다. 1983년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돼 사회과학대학장, 교무처장, 부총장 등을 거쳐 2016년 8월 제15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대외적으로는 만주학회장, 부산구술사연구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사회사학회 이사,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 《화려한 군주》 《주권과 순수성》 등이 있다.

<대담=김석준 부회장 겸 발행인 / 정리=황성원 기자 / 사진·영상=한명섭 부국장 겸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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