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수련

[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배우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저에게 실패는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이에요. 시도했는데 좌절된 것은 실패가 아니에요. 제가 정의한 실패는 남들과는 다른 것이었죠. 삶의 기준과 개념은 본인에게 맞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청와대 경호실 여성 1호 경호관으로 약 10년을 보내고 배우로 전향한 이수련씨는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다. 배우를 결심했을 때 나이는 서른셋. 그 전까지는 뚜렷한 꿈이 없었다고 밝혔다. “영문과를 선택한 것도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호관을 지원했을 때도 언론고시를 준비하다가 여성을 뽑는 공고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이씨는 전공이 경호관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영어 강의에 원서로 수업하니까 살아남기 위해 공부했어요. 그때 실력으로 경호실에서 영어가 필요한 행사에 많이 참여했고, G20 캐나다 정상회의에서도 영어로 브리핑했습니다.”

최초의 여성 경호관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여중-여고-여대를 나와서 군대식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또 현장에 나가면 제가 팀장으로 경호 책임을 맡곤 했는데 군이나 경찰들은 제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며 만만히 봤어요. 발끈해서 여러 번 싸우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경호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털어놨다. “특전사, 공수부대, 해병대 마스터했습니다. 이를 위해 수영부터 사격, 무술, 헬기 레펠 훈련 등 종합 훈련을 받아야 했어요. 경호관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 훈련 거치면서 적응이 되더라고요.” 

대통령과 국빈을 경호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많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 올 때마다 제가 경호했어요. 미국 선발 경호팀도 오는데 그들은 체격이 크고 방탄 코트를 입고 다닙니다. 절 처음 봤을 때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혹시 닌자(자객)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또 여성 경호관이다 보니 신기했는지 기자들이 계속 사진을 찍더라고요. 사진찍히면 안 되는데 선배들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습니다. ”

10년의 경호관 생활을 그만두고 배우로 전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삼촌이 연극배우였어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막연히 무대에 서는 일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 뜻하는 대로 살다 보니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연기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그만두면서 여러 대기업에서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의도 했어요. 돈 벌 목적으로 나온 게 아니기에 다 거절했죠.”

이후 이수련씨는 3년간 새롭게 배우고 수많은 작품을 거쳤다. 연기를 가르쳐 줄 선생님과 감독들을 찾아다니고, 10대들 사이에서 연기수업을 들었다. 중국어도 꾸준히 공부했다. 이 기간이 본인을 위해 채우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경호관일 때는 감정을 느끼면 안 됐습니다. 점점 무감각해졌죠. 연기하면서 나를 마음껏 표현하게 되고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깨닫게 됐어요. 마음껏 울 수 있고 화도 내면서 해방감을 느끼게 됐어요.”

사람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경호관일 때는 누구나 테러분자로 볼 수 있습니다. 소개팅하면서도 건물 안에는 몇 명이 있는지 확인하고, 누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으면 경계했어요. 지금은 반대로 연기해야 하는 역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사람에 대한 시선이 깊어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경호관 생활이 몸에 배 새벽 4시에 눈이 떠집니다.”

그러나 10년간의 경호관 생활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20살 때 오디션을 봤더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경호실에서 갖은 욕을 들어서 웬만해선 자존심에 상처받거나 기죽는 일은 없어요. 나에게 맞는 스토리가 나올 것이고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죠. 한중합작 드라마 <최고의 커플>은 중국 동영상 사이트 ‘유쿠’에서 조회 수 10억 회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이제 발전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려고요.” 

돌고 돌아 배우를 선택한 그는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들과 취업준비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늦게 배우를 시작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배운 것이 큰 자산이 됐어요. 경호관 경험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당장 돈이 없다면 돈 모아서 40대에 꿈을 이루는 것도 멋있잖아요. 20대에 대학 졸업 후 취업해서 30대에 결혼한다는 기준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르바이트든 공부든 목표를 정하고 미쳐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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