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구재단 ‘노벨과학상 수상자 트렌드’ 분석...국제공동연구·블록펀딩 눈길

文 정부도 2019년 목표로 연구자 생애 기본연구비 지원 정책 추진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 “대학자율 블록펀드 등 방식 검토중”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지난 9일로 마무리된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도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꾸준한 연구비 지원이 필수적이었음을 밝힌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노벨상이 또 국제적 공동연구 또는 분야를 넘나든 학제 간 융합의 결과물에 주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진다는 점도 정책적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18일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 591명을 분석한 ‘노벨과학상 수상 현황 및 트렌드’ 자료집을 내놓았다. 

■ 공동수상·융합주제 증가...한국과 달리 2040대에 성과= 보고서는 노벨상이 개인 혼자에게 주어지기보다 같은 주제를 연구한 복수의 연구자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주목했다. 특히 최근에는 2인을 넘어 3인이 공동으로 수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학문 분야가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는 등 학제 간 융합과 국제 교류가 필연이 됐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단적인 예가 올해 노벨물리학상이다. 수상자인 라이너 바이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도 공동 수상자인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배리 베리시 교수, 킵 손 명예교수 그리고 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라이고, LIGO)과 공동으로 연구 성과를 도출했다.

이는 세계 과학계의 변화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이광복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본부장은 “전과는 달리 점차 기술과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한 명이 연구를 개척할 수 없다. 예컨대 반도체를 연구하려면 물리학, 화학, 공학, 전기분야 전문가가 모두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당연히 융합 연구는 활성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도 “일본 과학자들이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의 연구실에서 우수한 과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전 세계적 연결고리'를 갖고 활동하는 것이 수상 기회를 높이는데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며 “우리는 왜 아직 수상자가 없는지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세계 무대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더 활약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상자 10명 중 9명이 35세 이전에 노벨상을 수상한 주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점도 눈길을 끈다. 42세를 전후로 해당 논문을 완성하고, 이로 인해 50대 초반에 최고 권위자라는 명성을 얻는 것이다. 대개 30대 초중반에 박사 학위를 받고 40대가 돼서야 연구 환경을 확보할 수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이는 신진연구자들이 정부와 대학의 안정적 재정 지원과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16명 중 14명도 30세 이전에 연구실에 들어가 안정적 환경에서 성과를 내놓았다. 200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노요리 료지 일본 나고야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긴 연구생활 동안 과학연구비에 의지해왔다”며 정부 재정 지원의 중요성을 암시했다.

▲ 노벨화학상 수상자 노요리료지의 생애주기별 정부 연구비 지원과 연구성과 결과를 표시한 그래프. 한국연구재단 보고서 발췌.(자료=한국연구재단)

■ 文정부 연구자생애기본연구비 2019년 도입 목표...대학교부금 방식 검토할까= 이는 과학계 요구에 따라 연구자 주도 연구비와 신진연구자 지원 확대에 나선 한국 정부의 최근 정책와도 맥이 닿아 있다. 과학의 지평을 넓힌 주제에 주어진다는 노벨상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상’ 자체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과학의 기초를 회복하기 위한 정책적 시사점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국립대학교부금을 연 12조원 정도 지급한다. 대학의 자율 아래 필요한 곳에 투자하도록 하는 일종의 기반적 경비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경상비, 인건비 및 연구자 개인에게 지급되는 ‘과학연구보조금’ 등으로 편성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04년 국립대학 법인화를 기점으로 국립대학교부금을 매년 1%씩 줄이다 연구자들의 반발을 샀다.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정책연구팀장은 “2004년부터 줄어들던 일본의 기반적 경비가 올해 25억엔(2500억여원) 늘었다. 논문실적도 점차 뒤처지고, 신진연구자 고용 불안과 기초연구 침체가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연구재단 자료에 따르면 2004년부터 올해까지 교부금이 12% 줄어든 동안 일본의 과학기술분야 박사과정 학생 수는 24.3%가, 정년보장트랙 교수 수는 10% 가량 감소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같은 취지에서 연구자 생애기본연구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광복 기초연구본부장은 “2019년까지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여러 방식을 검토 중에 있다”며 “지금까지의 과학기술 분야 대학재정지원을 특수목적사업이라 본다면, 블록펀딩(일본의 국립대학교부금 방식)도 신중하게 검토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립대학교부금의 형태로 대학 내에서 자체 기준으로 연구비를 분배하는 방식과 현행대로 연구자가 연구비 지원기관으로 지원서를 넣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자율 블록펀드의 장단점도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이 본부장은 “블록펀딩은 학교 특성화에 도움이 된다. 예컨대 어떤 분야에 대학을 특화시키겠다면 총장이 연구자를 많이 뽑고 연구비를 많이 배분할 수 있고, 대학 집행부의 권한도 커진다”며 “다만 우리 연구자들이 연구재단보다 대학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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