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무서 기자

[한국대학신문 구무서 기자]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당나귀 벤저민은 제일 똑똑한 동물로, 돼지들을 제외하면 글을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다. 벤저민은 돼지들이 일으킨 혁명의 부조리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기억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목소리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자신의 친구인 복서가 도살장에 팔려가게 되자 그제야 친구를 구하러 나섰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지난 2015년 8월, 국립대 총장 임용에 정부가 간섭하고 대학 자율을 침해하는 것에 반대하며 고현철 교수가 몸을 던졌다. 모두 그의 용기와 결단에 박수를 보냈고 대학은 이제 바뀔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故고현철 교수가 투신한 지 고작 2년 후, 지금 대학은 어떤 모습인가. 투신 이후 2개월 만에 국내 첫 2순위 후보자가 국립대 총장에 임용되는 촌극이 발생했고 이를 시작으로 4개 대학에서 연달아 2순위 후보자가 임용됐다. ‘무순위 추천’이라는 가림막을 쳐놨지만, 대학 구성원들은, 특히 식자라고 하는 교수들이라면 총장 임용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대학가는 요람에서 잠든 아이처럼 조용하고 고요하다. 정부가 잘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도 찾아보기 힘들다.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는 경북대조차 잘못을 지적하던 최초 150명가량의 교수 숫자가 2순위 후보자 임용 후 30명대로 떨어졌다.

교수들은 바쁘다. 본연의 임무인 연구와 교육 외에도 평가를 위해 봉사와 산학협력에도 신경 써야 한다. 최근에는 각종 재정지원사업과 관련해 지표 작성도 해야 하고 이 모든 것을 해내면서도 성과연봉에 의해 연봉을 깎이지 않으려면 고개를 돌릴 틈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현 상황에 대한 변명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가 대학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 최후의 집단이 교수라면 그들의 최우선 관심사는 대학의 민주화여야 한다. 대학 구성원이 선출한 총장을 잃고 직선제를 잃은 대학은 앞으로 어떤 친구를 잃게 될 것인가. 벤저민처럼 정말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땐 이미 되돌리기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찬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드는 이 추운 날씨에도 어린 학생들이 대학 민주화를 위해 청와대 앞 농성에 들어갔다. 이 아이들 앞에 서서 가치와 정의를 가르칠 교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지식인으로 존경받고 부조리에 맞서 목소리를 낼 교수들은 어디에 있나. 울고 소리쳐라. 끊임없이 비판하라. 행동하지 않는 자에게 민주주의란 없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