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 문화 해소, “심각할 경우 여성 할당제까지 고려해야”
육아휴직·출산휴가 ‘이용률' 통계 집계도 안 해
“직장어린이집 의무 지키지 않으면 연구비 간접경비 페널티를”

과학기술계·여성정책 연구자·전문가 4인 지상좌담

<1> 사례와 통계로 본 대학의 여성연구자 경력포기 실태
<2> 비정규직·남성 중심 문화 속 여성 배려 대책도 글쎄
<3> 이탈 막기 위한 연구문화 개선·성평등 정책 없이 미래 없다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여성 연구 인력의 경력단절은 오랫동안 인식돼 왔으나 해결책을 고민할 기회는 적었다. 남성과 여성, 한국과 외국, 과학과 젠더, 현장과 정책의 관점을 고루 들을 필요가 있다. 본지는 패널 4명과 함께 지상(紙上) 좌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연구 현장의 남성 중심 문화, 여성 연구자들의 낮은 처우, 실효성 없는 배려 정책이 경력단절 현상의 원인임에 공감하며, 이를 해결할 다양한 대책을 제시했다. 다양한 시선만큼 가장 시급하게 내놓아야 할 정책과 방향성도 다양했다.

△ 신하영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 구본경 오스트리아 과학아카데미 분자생화학연구소(IMBA) 그룹리더
△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생명과학부 교수)
△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 지난 기획에서 남성 중심적 문화와 비정규직 등 낮은 처우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 신하영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신하영) “맞다. 여성 기간제 연구자와 대학원생의 낮은 처우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하는 일을 평가 절하함으로써 여성의 일을 축소하고 일하는 여성의 지위를 낮추는 정치사회적 요소와 IMF 이후 노동 유연화와 함께 비인간적인 인건비 절감의 신자유주의적 경영 행태가 중첩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남성 중심의 문화도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군대문화에 연구실 문화가 유사해진 것이다.”

(김소영) “지금 여전한 성 편견과 열악한 처우 외에 앞으로 전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 큰 문제다. 문화와 제도는 느리게 변하기 때문에 지금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계속 버틸 의지, 이유가 없지 않겠나. 취직을 어렵사리 해도 승진이 어렵고 승진이 되어도 다른 남성 동료처럼 보직이나 임원급이 되어 중요한 리더 역할을 맡기도 어렵다. 5~10년 후를 내다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구본경) “스테레오타입을 두면 안 되겠지만, 전반적으로 유럽 여성들은 자신을 스스로 ‘여성’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는다고 느꼈다. 유럽에서 여성의 무거운 짐을 들면 “왜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네가 돕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여성 스스로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인간체가 될 수 있도록 문화·사회·교육 전반에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소위 ‘군대식 문화’를 해소하는 게 가능할까. 현재의 채용목표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김소영) “채용목표제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것이 할당제다. 성비율이 심각히 문제가 될 경우 할당제와 같은 강력한 조치를 고려해봐야 한다. 2003년 ‘국공립대학 여성교원 임용목표제’가 도입된 것은 획기적인 조치였다. 당시 전무후무하게 200명의 특별 정원을 여성 교원 몫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후 특별 TO가 없어 채용 목표 달성이 매우 어려워졌다.”

(노정혜) “그동안 교육공무원법에 의거하여 양성평등임용 계획을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수립하고 실행하도록 했지만, 당근도 별로 없고, 제재도 없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현재는 채용목표도 없고 할당도 없다.”

(김소영) “대학교원양성평등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올해 어느 국립대에 양성평등추진사업 컨설팅을 갔는데, 총장이 “교수 채용은 결국 학과에서 올리는 후보에 대해 심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관 차원에서 여성 교수 채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했다. 이게 늘 나오는 변명이다.”

(노정혜) “양성평등 임용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 양성평등 임용계획을 수립하고 이행도를 대학 재정지원 사업에 반영하는 등의 내용이다.”

(김소영) “실제 채용목표제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채용목표제 달성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대학에 대해 여성교원 TO를 추가하는 등 재정적 지원이 구체화돼야 한다.”

-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또는 비정년트랙에 임용되는 여성들이 많다.
(신하영) “대학은 인사관리 비용(육아휴직, 일가족양립에 따른 근무시간 배려 등) 이 적게 드는 남자 교수를 선호한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교수의 업무 과중이 해결되고 처우 개선이 병행돼야 일-가족 양립이 가능한 여성 전임 교원이 나올 수 있다.”

▲ 노정혜 서울대 다양성위원회 위원장.

(노정혜) “최근 서울대 다양성위원회에서 내놓은 통계를 보면, 비전임 교수·연구원 중 전업(full-time)으로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박사급 인력은 2168명(2016년 기준)이다. 이들 중 58%가 여성이다. 정년 트랙 전임교수 2114명과 같은 규모다.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채용 기회를 늘린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전임교원으로 발탁될 수 있을 것이다.”

(구본경) “유럽연합의 연구지원 사업인 ERC starting grant를 받으려면 박사학위 후 7년 이내에 신청을 해야만 한다. 여기에 여성의 경우 각 출산마다 1.5년씩 기간을 인정해 준다. 예컨대 학위 취득 후 아이를 2명 둔 여성은 10년 이내에 신청을 해도 된다. 7년 경력과 10년 경력이 경쟁하면 아이 2명을 둔 10년 경력의 여성이 유리하게 된다. 남성도 자녀 출산 시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열심히 키우면 휴직을 인정해 준다. 군 경력으로 남성이 경력 단절을 겪는 경우에도 해당 기간만큼 인정한다.”

- 출산한 여성 연구인력들의 양육을 지원하는 정책이 실효성 없다는 지적이 많다.
(노정혜) “최근 우리 대학의 공대 여교수가 8월에 출산을 했다. 출산을 하면 한 학기 강의가 6학점 감면되는 제도가 있는데도 9월부터 강의를 했다고 한다. 자신을 시간강사로 대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교수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 제도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당연한 권리도 누릴 수 없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 구본경 오스트리아 IMBA 그룹리더.

(구본경) “어린이집이 고용을 늘리면서 동시에 미래세대를 키우는 훌륭한 국가사업이라는 인식을 정부가 가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아이를 보호하는 어린이집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국가 연구비를 지원할 때 주는 간접비(오버헤드)에 페널티를 주는 것도 생각해 봄직 하다.”

(김소영) “WISET의 통계를 보면 법정 의무인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운영하는 비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출산휴가 99.6%, 육아휴직 98.2%). 그러나 실제 ‘이용률’에 대한 집계는 아예 안 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육아휴직 = 육아해직’이라는 등식이 여전한데, 통계로는 전혀 안 나온다. 정책의 기초는 관련 통계인데, 상황을 잘 모르면 ‘왜 아직도 육아휴직을 요구하느냐’고 할 수 있다.”

(노정혜) “대학이 시간강사를 쓸 예산까지 배정해야 강의 감면의 실효를 누릴 수 있다. 직장 안이나 주변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적극적으로 운영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임무다.”

- 경력단절 문제 해소에 필요한 연구, 경제, 사회적 부담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구본경) “유럽의 출산휴가 정책은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약 6~18개월 정도다. 마치 병가와 유사하게 임금을 지급한다. 장기간 자리를 비우지만, 반드시 그 자리로 돌아오도록 한다. 물론 중간에 자리를 비운다고 타국의 경쟁자가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 이를 위해 대체인력(Maternity Leave Cover)을 뽑고, 일종의 수습사원, 인턴처럼 경력을 쌓도록 한다. 연구 논문을 발표할 때 이들도 기여도를 인정받지만, 출산 휴가 중이었던 이가 통상 1저자를 유지한다.”

(김소영) “2014년 여성정책연구원에서 낸 자료를 보면, 여성 경력단절로 인해 2000년부터 13년간 들어간 사회적 비용이 총 18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연간 약 12조8000억원인데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인 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약 14조원(2015년 기준)이다. 여성 경력단절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정말 어마어마한 수치인데 이게 체감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여성 경력단절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경력단절 여성’ 개인이 각자 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하영) “그간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경력단절 예방을 바라보는 관점은 여성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자원의 여유가 되면 베풀어야 하는 시혜적 ‘복지’ 차원에서 접근했다. 이공계 여성인력 손실을 막는 것이 이공계 전체의 생태계를 살리는 길이며, 다양성을 통해 한국 과학기술계가 성장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는 차원에서, 경제적 접근을 통해 그 필요성과 실효성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구본경) “독일은 연구인력 손실이라는 부분을 인턴과 같이 단기 계약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되면 출산휴가 중인 사람과 단기 계약직, 총 2명을 1명을 위해서 고용하는 형태가 된다. 월급은 정부가 초기 3~4개월을, 남은 기간은 건강보험사가 지급한다. 사회 전체가 재정적인 부담을 분담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내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많이 부럽다.”

(김소영) “다만 경제적 효용 중심의 사고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만약 경력단절이 그다지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지 않거나, 경력단절 여성을 활용했는데도 별로 시원치 않더라고 하면 경력단절 복귀 사업 같은 것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일의 목적은 단지 돈벌이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존재와 자아 실현의 관점에서도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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