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수 전북대 교수(과학학)

과학자들과 가속기·미세입자 연구 함께한 철학자
정년 3년 앞두고 《과학문화연구》 시리즈 기획

▲ 정광수 전북대 교수.(사진=김정현 기자)

[전주=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4차 산업혁명 말인가? 저는 첨단 과학기술에 낙관적이다.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 로슬린연구소도 처음에는 실험동물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과 전문가는 복제인간을 우려했다. 현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시험관아기 기술로 연결됐다. 저도 복제인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기술은 다르다. 지금 시대에는 일반론적으로 과학기술을 금지시키기보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과학기술은 효용도 있지만 위험도 뒤따른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지난달 1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회의에서 상영된 ‘킬러로봇 금지 캠페인’의 영상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드론 기술을 접목한 작은 로봇이 인간의 뇌 최심부를 강타하는 모습이 충격을 던졌다.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전자가위의 위험성, 부작용을 우려하는 윤리학자들과 과학자들의 논쟁이 뜨겁다.

《과학문화연구》 총서를 기획해 내놓고 있는 정광수 전북대 교수(과학학)를 지난달 22일 전북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9번째 총서 《과학기술과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세계관·인간관》을 내놓았다. 4차 산업혁명을 상징한다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새로운 생명공학 기술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그가 ‘과학 실험을 하는 철학자’이기에 가능했던 것일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 당시 영어 문제를 풀다 과학기술이 오용되면 윤리적 문제가 발생해 세계 파멸로 이어진다는 비관론자의 글을 지문으로 접했다. 대학 때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과학철학을 연구한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과학적 증거를 직접 실험하고 철학적 문제의 해답을 찾는 실재론에 관심이 있었다. 미국 유타대에 유학을 가 과학자들과 입자가속기를 이용, 미세입자 쿼크(quark)를 찾는 실험을 수행하고 논문을 썼다.”

‘쿼크’의 존재 유무는 과학학 또는 과학기술학(STS)의 중요 주제다. 반 프라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전자를 믿고 싶으나 증거가 없다’는 반(反) 실재론자로 알려져 있다. 실재론자인 정광수 교수는 이를 반박하고자 이언 해킹(Ian Hacking)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와 실험을 통해 증거를 찾으려 한 것이다. 전북대 과학학과에 부임한 뒤에도 정 교수는 틈틈이 과학자들과 과학 실험을 수행해 오면서 과학자들과 소통했다. 그 덕에 서로를 백안시(白眼視)하지 않고 실용적인 철학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 정광수 전북대 교수.(사진=김정현 기자)

“3차 산업혁명은 정보기술 시대를 낳았다. 특히 우리 삶의 양식, 즉 문화와 가치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포스트모던적 태도가 싹트기 시작했다. 구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개방을 선언하면서 ‘인도적 사회주의’를 남긴다고 천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융합과 소통의 시대 속에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ICT와 각종 분야의 경계를 융합하는 기술 혁명인 4차 산업혁명이 생기게 된 것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유용함을 늘리고 오·남용과 예측 못 할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다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

정광수 교수는 새로운 과학기술에 낙관적이지만, 그 바탕에 과학자들의 연구윤리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에 자율성을 부여하되 다학제적 윤리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정년을 3년 앞둔 그가 《과학문화연구》 시리즈를 기획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문적인 서적이든, 비전문적인 서적이든 대학 도서관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다고 했다. 과연 과학기술의 효용성과 윤리를 함께 고민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은퇴를 바라보는 주름살 진 노학자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 주목해 볼 시점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