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동반성장위원회 전문위원

▲ 김영우 전문위원

바게트(baguette)는 프랑스 음식문화를 상징한다. 흔히 ‘프랑스 사람’이면 베레모에 바게트를 든 모습을 연상할 만큼, 바게트는 프랑스의 일상생활을 대표한다. 지팡이ㆍ지휘봉ㆍ젓가락을 의미하는 바게트는 ‘가늘고 긴 모양의 막대기’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바게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으로,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녹아 있다.

프랑스 역사를 보면 빵이 자주 등장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도 사실은 시민들에게 빵이 부족해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시민들은 귀족에게만 풍족하게 돌아가는 빵에 대해 불만을 품고 급기야 ‘평등한 빵(pain d’egalite)‘을 혁명구호로 외쳤다. 혁명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은 빵 공급을 중요한 정책으로 선정하고 농민과 상인을 통해 품질 관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품질 좋은 빵을 공급하는 것은 위정자의 책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제빵 기술은 이스트의 발명으로 더욱 진화해 일정한 품질의 빵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3년 바게트는 제빵산업 표준화와 시민들의 식생활 보호를 위해 밀가루ㆍ물ㆍ소금ㆍ이스트만을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했다고 한다. 바게트는 폭 5~6cm, 길이 약 65cm, 250g의 무게를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를 법으로 규정한 나라는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바게트는 가장 단순한 빵이다. 하지만 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맛을 내기 어려워 잘 만든 바게트는 ‘예술’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1905년 프랑스에서는 세계 최초로 빵의 카테고리를 규정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몇 차례의 개정을 거쳐 1993년 최종 수정된 바 있는데, 여기에 따르면 전통방식의 바게트(baguettes de tradition)로 인정받으려면 바게트 재료로 밀가루와 수돗물, 요리용 소금과 이스트만을 사용해야 한다.

전통방식의 바게트 제조법을 규정한 법안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1994년부터 파리에서는 바게트의 맛을 평가하는 경연대회(Grand Prix de la Baguette de la Ville de Paris)를 열었다. 심사위원은 전문 제빵업자, 제빵 조합 관계자, 언론인과 전년도 대회 우승자들로 구성되며, 요리법(cooking)ㆍ맛(taste)ㆍ향(smell)ㆍ외형(appearance)ㆍ식빵의 요소(bread)의 5가지 측면에서 평가한다. 치열한 경쟁 끝에 우승한 제빵사는 오븐을 새로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상금과 1년간 프랑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Élysée Palace)에 빵을 납품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바게트에 대한 프랑스인의 사랑은 제빵학교의 설립과 운영에서 잘 나타난다. 프랑스 국립 제빵제과 학교(INBP; L'Institut National de la Boulangerie Pâtisserie)는 1974년 루앙(Rouen)에 설립됐다. INBP는 프랑스의 전문 제빵제과 기술인들을 대표하는 프랑스 제빵제과 연합회(CNBP; La Confédération Nationale de la Boulangerie Pâtisserie française)가 빵의 맛을 높이기 위해 세운 제빵제과전문학교다. INBP가 처음 설립될 때는 제빵제과 분야의 연구소 형태로 출발했다. 연구원들은 문화적 자부심을 가지고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미세한 연구를 하면서 실험을 계속했다. 이후 제빵제과 전문학교로서 INBP에는 제과제빵 분야의 최고 명장(MOF; Meilleur Ouvrier de France)들이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에서 제빵제과의 최고 품질을 유지하고 전문 제과제빵인을 양성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과 자부심을 볼 수 있다.

INBP의 교육은 매해 2월과 9월에 각각 시작하고 6개월 과정이다. 수업은 하루에 6시간이며 주로 실기 위주로 실제로 빵을 만들고 과자를 만드는 일이 주를 이룬다. 제과는 기본적인 파트(Pâte)ㆍ타르트(Tarte)ㆍ포이타쥬(Feuilletage)ㆍ슈(choux) 등을, 제빵의 경우 피셀(Ficelle)ㆍ바게트(Baguette)ㆍ파인 오 송(Pain au son 밀겨빵), 크루와상(Croissant) 등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기 위한 실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INBP의 수업은 실기에는 그룹당 12명이 참석하고, 이론 수업에는 24명이 참석한다. 소규모 그룹을 통해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제대로 기술을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수업은 제빵 제과와 관련된 이론, 노동법 및 식품과학 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프랑스 역사, 지리, 정치, 경제 등도 배우게 된다. 바게트에는 프랑스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는 철학에서 이런 과정을 익히게 한다.

INBP가 루앙에 위치한 것도 흥미롭다. 노르망디 지방 중심에 위치한 루앙은 프랑스 문화부가 선정한 ‘예술과 역사의 도시(‘Rouen, ville et pays d’Art et d’Histoire)'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되었던 루앙은 1970년부터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고 ‘인상파 예술의 도시(‘ville de l’impressionnisme’)' 라고 불리기도 한다. 루앙이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은 프랑스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가 남긴 작품 때문이다. 1892년 모네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연작으로 알려진 ‘루앙 대성당’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성당을 비추는 빛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간대, 각도, 그리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30점 이상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같은 재료로도 다양한 바게트 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루앙에 제빵제과 학교가 있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제빵업은 제빵과 제과로 나뉘며 크게 제빵사(Boulangerㆍ블랑제)와 제과사(Pâtissierㆍ파티시에)로 구분된다. 불랑제는 바게트를 비롯하여 크루와상, 파인 드미, 파인 오 쇼콜라 등을 주로 만들며 이 중에서 바게트가 가장 중요하다. 반면 파티시에는 각종 케이크와 다양한 디저트를 만드는 장인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잼을 전문으로 만드는 과정도 있는데 이를 콩피세르(Confiseur)라고 별도로 부른다.

제빵이나 제과기술을 배우고 나면 몇 가지 자격증이 단계별로 있다. 그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CAP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취업자격증이다. CAP는 직업 전문기술을 익히고 취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제과제빵 외에도 수십 가지의 분야가 있다. 시험은 매년 5월 말과 12월 말에 실시하는데 주관식으로 진행하므로 외국인 학생들은 무조건 프랑스어로 된 제과제빵 용어를 모두 외워야 시험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INBP 학위증을 받고 나면 전문과정 자격증인 BP에 도전하게 된다. 이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분야별로 제빵사나 제과사, 혹은 요리사가 되려면 필수적이다. 이 자격을 취득하면 직업인으로서 제빵이나 제과업종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BM에 도전할 수 있다. 이 과정은 CAP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전문가로서 활동하기 위해 이수하는 것으로 3년 이상 직장 경험을 필요로 한다.

프랑스는 장인(Ouvrier)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1924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권에서 가장 우수한 장인을 분야별로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바로 프랑스 최고 명장(Meilleur Ouvrier de France)을 뽑는 것이다. 이 대회는 4년마다 개최하며 보석세공ㆍ요리ㆍ제빵ㆍ가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발하며 모든 직업인들은 최고의 명성과 권위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 선발대회는 시험이 아니라 분야별 콩쿠르를 통해 이루어지며 수상자가 없는 경우도 많이 있다.

앞에서 본 바게트는 밀가루ㆍ소금ㆍ이스트에 물을 넣고 반죽을 하고 완전히 부풀면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바게트 특유의 길쭉한 모양이 되도록 자연스럽게 늘여 오븐에 굽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지만 장인들은 맛있는 바게트를 위해 혼신의 장인정신을 불어넣는다. 잘 구워진 바게트는 톡톡 쳤을 때 속이 빈 가벼운 소리가 나고 빵을 뜯을 때 쉽게 갈라지면서 향이 배어 있어야 한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장인들의 노력 때문에 바게트는 예술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중심에 루앙의 국립 제빵제과 학교가 자리 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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