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영 고려대 독일어권문화연구소 연구교수

▲ 유진영 고려대 독일어권문화연구소 연구교수
공동집필 : 조보람(피아니스트)  

보통 ‘악기(Instrument)’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피아노’다. 요즘은 국가를 불문하고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대부분 배워봤다고 할 정도로 피아노는 대중적인 악기가 되었다.

중국에는 지난 1999년 미국 ‘라비니아 페스티벌(Ravinia Festival)’에 혜성같이 등장하며 거장 반열에 오른 피아니스트 랑랑(Lang Lang)이 있다. 그의 영향으로 최근 중국 내 약 4000만 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이른바 ‘랑랑 효과’라 한다.

이처럼 우리가 연주자는 많이 접해 보았지만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 특히 그 악기를 제작하는 사람은 과연 어떻게 양성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여기서는 직업교육으로 유명한 독일에서 악기 제작자, 그중에서도 피아노 제작자가 어떻게 양성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독일에서 피아노 제작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 주의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 위치한 ‘오스카 바클러 학교(Oscar-Wackler Schule)’가 있다. 이곳은 독일 내 ‘피아노 제작자’를 양성하는 유일한 학교다. 피아노 제작 외에 이 학교에 설치된 학과로는 피아노, 쳄발로, 파이프 오르간, 금관 및 목관 악기 제작과가 있으며, 전통적인 이원화 직업교육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처음 피아노 & 쳄발로 제작자 과정에 입학하면 본인 적성에 따라 피아노 제작자 혹은 쳄발로 제작자 과정을 선택하게 되는데, 보통 전 세계적으로 피아노 시장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대부분 피아노 제작자 과정을 선택하고 있다.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교 전에 피아노 제작사와 ‘도제’ 자격으로 계약을 체결한 후 학교가 위치한 주인 바덴 뷔르템베르크의 수공업회의소(Handwerkskammer)에 정식 등록이 되어야만 입학이 허가된다.

▲ 오스카 바클러 학교 캠퍼스

여기서 독일의 직업교육에 관한 소개가 필요하다. 독일의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4학년 후에 중등교육 1단계에서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 5~9학년), 레알슐레(Realschule, 5~10학년), 김나지움(Gymnasium, 5~9학년), 게잠트슐레(종합학교, Gesamtschule, 5~10학년) 등의 복선제 학교로 연결된다. 이 학교 졸업 후 중등교육 2단계에서는 30-40%의 학생들이 김나지움(10~12학년)으로, 60~70%의 학생들이 2-3년 과정의 직업교육(Berufsbildung)과정으로 진학한다.

독일의 직업교육은 이원화된 교육을 제공하는데, 이원화 교육이란 학교에서 이론을, 산업체에서 실습교육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실습교육의 비율이 3분의 2다. 보통 직업학교에서는 주별 규정 및 교육직종, 교육햇수에 따라 1~2일간, 산업업체에서의 교육은 일주일에 3~4일간 실시한다. 그래서 이론뿐 아니라 실습에 있어서 독일의 직업학교와 산업체에서의 이원화된 직업훈련교육은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 직업교육 단계별로 학생들은 교육성과를 증명해야만 하는데 중간단계에서는 중간시험, 마지막 단계에서는 졸업시험이 실시된다. 수공업분야에서 졸업시험은 전통적으로 ‘숙련공(직인)시험(Gesellenprüfung)’이라 불리며 수공업회의소에서 임명한 시험위원회에 의해 감독된다.

중등직업교육뿐 아니라 독일의 고등직업교육에서도 이원화 학위과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대학학위과정은 응용과학 대학으로 불리는 전문대학교(파크호크슐레, Fachhochschule,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 바덴뷔르템베르크 협동 주립 대학(Duale Hochschule Baden-Wuerttemberg, Baden-Wuerttemberg Cooperative State Universities)과 직업아카데미(Berufsakademie) 또는 비즈니스 아카데미와 사내 직업교육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렇다면 피아노 제작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재능과 조건, 적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현지를 직접 방문한 경험이 있는 조보람씨(고려대 독어독문학과)는 "자신이 갖고 있는 손 기술과 음악적 감각의 결합에 관심이 있고, 전통적인 수공업 기술에 열정을 느끼며, 음악의 ‘음’에 필요한 섬세한 귀를 가진 자라면 피아노 제작자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한다. 즉, 단순한 수공업 제작의 단계를 초월하여 예술적 감성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독일이 고전 음악과 악기 제작의 본고장인 만큼 악기 제작이 하나의 단순한 ‘기술 작업’이 아닌 예술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특히 피아노 제작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관성, 힘과 가속도와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라고 하는데, 피아노라는 악기는 연주자가 건반에 주는 에너지가 10배의 힘으로 변하여 울리게 되는데, 이는 결국 건반 깊이 1mm 차이가 결과적으로 10mm 차이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즉 악기에 적용되는 무게·거리·속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알아야 소리를 감각적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독일의 직업교육에서는 이원화되어 교육이 진행된다. 즉 여기서 피아노 제작자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학교와 공방 또는 산업체에서 실습교육을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산업체에서 실습을 하면서 일정 부분의 실습훈련비를 받는데, 이는 직업교육 체계 내에 전통적으로 규정된 부분이다. 오스카 바클러 학교에 입학하면 3년 6개월 동안의 교육과정 중에 1학년 때에는 400~776유로, 2학년 때에는 480~811유로, 3학년 때에는 520~851유로, 마지막 학년인 4학년 한 학기 동안은 600~898유로의 돈을 받으며 과정을 이수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3년 6개월 동안 ‘도제’가 되기 위한 자격으로 계약한 회사 혹은 산업체에서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장인(Meister)의 지도하에 실무교육을 비롯하여 학교에서는 이론 수업을 병행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론 수업은 총 10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 나무와 기타 재료들에 대한 재료학, 2) 음향악, 3) 예술사, 4) 피아노 제작에 대한 전공 이론, 5) 수학, 6) 영어, 7) 세무회계, 8) 독일 상법, 9) 물리, 10) 화학 등의 방대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학교에서 8시간의 이론수업이 진행되며, 주 6시간의 실무 실기수업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과정의 2년 차 마지막에 실시되는 ‘중간평가’가 있는데, 이 평가를 무사히 통과해야만 주어진 교육기간 내에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한다. 3년 6개월의 모든 과정을 마칠 무렵에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졸업 시험과 슈투트가르트 수공업회의소(Stuttgart Handwerkskammer)에서 실시하는 자격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과 동시에 ‘피아노 제작자(Klavierbauer)’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여기서 3년 6개월 동안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을 독일에서는 ‘수공업 숙련공(직인, Geselle)’이라고 부른다.

‘피아노 숙련공/기술자(Klavierbauer)’ 자격을 취득하고 나면, 학교 입학 전 도제 자격으로 계약했던 산업체 및 회사의 정식 피아노제작자나 기술자로 취업하게 된다. 이때 처음 봉급은 제작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월평균 1360유로 정도다. 물론 해가 지날수록 봉급이 꾸준히 상승하여 약 3000유로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독일 내에 대표적인 피아노 제작사로는 세계적인 피아노 제작 회사인 ‘Steinway & Sons’를 비롯하여 ‘C. Bechstein’ 등이 있다. 현재 한국인 피아노 제작 장인 한 명이 Steinway & Sons사에 소속되어 Frankfurt am Main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숙련공(Geselle)으로서의 직업적 활동을 쌓은 후 계속교육(Weiterbildung/Fortbildung)을 받을 수 있다.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하고자 한다든지 또는 더 많은 급여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과정 같은 것이 있는데 바로 고등교육에 속하는 ‘장인양성교육’이다. 장인학교, 마이스터슐레(Meisterschule)로 불리는 교육과정에서는 앞서 3년 6개월 동안의 직업 교육과정에서 전반적인 기술을 습득했던 것과는 달리, 세부적으로 전문분야를 심화 교육하여 ‘장인’으로 거듭나게 한다. 대략 2년 동안의 장인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마지막에 장인시험으로 피아노를 직접 제작하는 과정을 평가받는다.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면 마침내 ‘피아노 제작 장인(Klaiverbaumeister)’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이때 월 급여는 제작사마다 차이가 있으나 약 3100유로~3500유로로 인상되며 물론 해가 거듭될수록 꾸준히 인상된다고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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