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문가와 학생들, ‘재수가 유리’ 의견에 온도차

▲명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재수생들 사이에서는 ‘재수는 선택, 삼수는 필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삼수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 넓게 퍼져있었다.

[한국대학신문 김홍근 기자] 지난해 11월 24일 한 언론사는 당일 수능 가채점 결과를 취합한 결과 10명의 만점자 중 9명이 재수생이었다는 보도를 냈다. 이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 채점 결과 일부 언론의 가채점 보도와는 다르게 드러났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많은 학생에게 재수에 대한 고민을 불어넣는 데 영향을 미친 후였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재수‧삼수를 선택하는 사회적 현상은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수생들 사이에서는 ‘재수는 선택, 삼수는 필수’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름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삼수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이 넓게 퍼져있었다.

최근 재수를 선택한 김씨(19)는 독서실에서 막 나와 푸념부터 늘어놨다. 그가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재수를 결심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수를 시작한 이유를 묻자 “‘이름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고 확고하게 답했다.

“얼마 전 할아버지께서 친구를 만나고 오신 후로부터 기분이 언짢아 보이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그분이 할아버지께 이번에 손자 어느 대학 갔는지를 계속 물어보셨다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손자가 재수를 시작한 것을 차마 말씀하지는 못하시고 혼자서 분만 삭이고 계셨나 봐요. 정말 그 순간만큼은 죄인이 된 것 같았어요.”

기자가 질문을 바꿔 물었다. 아직 추가모집도 남아있고 취업이 잘되는 학과나 전문대학에 성적을 맞춰 가는 방법을 생각해봤는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가 명문대를 가고자하는 이유는 확실했다. 사회와 가정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다.

“올해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연한 자신감은 없지만, 재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취업 잘되는 학교나 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왔지만, 솔직히 체감되지는 않아요. 친구들이나 사회 분위기도 여전히 좋은 대학을 가야 취업도 잘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주변만 하더라도 저 처럼 이미 재수를 시작한 친구들이 상당히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독서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던 김씨는 다음 달 시작하는 재수학원 정규반에 등록할 계획을 밝혔다.

■평가원 수능 만점자 수 예외적 발표…“재수생 유리하지 않다”= 정부나 입시전문가들은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생각과는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재수가 대학 진학에 유리하지도 않을뿐더러 최근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줄어 드는 추세라는 것이다.

앞선 언론사의 가채점에 대한 보도 이후 성기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과 시기자 수능분석실장은 수능 성적 발표 관련 일문일답을 통해 “수능 성적에 대한 재학생의 유‧불리는 판단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영역별 만점자 비율에 대한 질문에 시 실장은 “한 줄 세우기 조장 우려 등의 이유로 수능 만점자 발표는 공식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 원장은 “만점자 수 발표에 대해 고민했지만 최근 언론에서 졸업생에게 유리한 시험처럼 보도를 해 예외적으로 발표한다”며 “영어와 한국사 1등급을 전제로 했을 때 수능 전 영역 최고점자는 재학생 7명, 졸업생 7명, 검정고시 1명 등 총 15명이다. 재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불리를 판단하기 어렵다. 재학생과 졸업생에게 골고루 비슷한 시험 수준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답했다. 재수 부추기기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는 답변이었다.

한 입시학원 연구소장은 “재수생 비율은 이미 떨어지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최근 수시 모집 정원의 확대, 영어 절대평가 도입에 따른 변별력 저하 등이 학생들에게 재수에 대한 고민을 덜어줬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지난해 재수생 수가 줄었고 올해도 역시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되고 수시 비율이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학생들도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가기가 예전보다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정확한 통계는 상위권 대학의 합격자 발표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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