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선 영화감독

▲ 이용선 영화감독. (사진= 필앤플랜 제공)

[한국대학신문 장진희 기자] 자식들 학원비에 쪼들리고, 이사가자는 아내의 등쌀에 떠밀리는 가장이 있다. 바로 최근 개봉한 영화 ‘반도에 살어리랏다’에 등장하는 시간강사 오준구다. 오준구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정교수 자리를 노리면서도 가슴 한켠에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때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대학 내 부조리에 눈을 감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고뇌하는 오준구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모습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군분투하는 시간강사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반도에 살어리랏다’의 이용선 감독은 자신이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하며 보고 들은 풍경을 영화에 담았다. 이용선 감독은 “처음에는 취재할 시간이 부족해서 시간강사를 주인공으로 결정했죠”라며 머쓱한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을법한 캐릭터를 통해서 블랙코미디 영화를 그리고 싶었어요”라고 영화를 기획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얼핏 보면 코미디 영화인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대학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를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블랙코미디 영화에 행복한 내용이 등장하면 그건 블랙코미디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서 꾸준히 드러나는 전임교원과 시간강사 간의 위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든지, 성추행 사건이라든지 이런 관행을 비판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들보다 대학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해 더 깊게 문제의식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변의 강사, 교수들로부터 들은 여러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간강사가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영화는 다수 관객의 공감을 받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극 중 오준구가 한 정교수의 비위를 목격하고, 차기 전임교원으로 내정되는 장면에 대해 이 감독은 “제법 있을법한 일이지 않나”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대학에서 그렇게까지 교수를 대놓고 내정하는 일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정유라 특례 입학 사건만 보더라도 분명히 대학에서 합리적인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누군가를 채용하고 입학시키는 일이 있다. 영화이다 보니 부풀려서 표현된 점이 없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가려고 했다”고 전했다.

오준구는 시간강사라는 점 외에도 이용선 감독 본인과 접점이 많은 인물이다. 그들은 현실과 이상을 두고 갈등하는 점이 닮아있다. 이 감독은 “오준구가 배우 오디션을 보러갈지 말지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작업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작품을 만들면서 동시에 생계를 위해 할 일을 찾다보니 시간강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시간강사도 안정적인 직업은 아니다. 강사 일을 하면서 받는 급여로는 결혼이나 출산 등 미래지향적인 계획은 세울 수가 없다. 이런 고민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준구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용선 감독은 사실 벌써 6년째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열정적인 시간강사이기도 하다. 이번에 제작한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그가 시간강사로 몸담고 있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제작됐다. 이 감독은 학교 측의 협조로 공간과 기자재를 자유롭게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사소한 부분까지 하면 학생 10여 명 정도가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학생들에게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졸업작품이기도 했다. 이번 영화 제작은 교육적 효과도 톡톡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제작된 영화가 해외 유수 애니메이션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이 감독은 정작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할 말’이 많다고 한다. 이 감독은 “국내에는 ‘독립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가 없다. 시장 자체가 없기 때문에 관객에게 다가가기가 정말 힘들다. ‘내가 뭐 길래 이런 얘기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오지랖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로 국내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면, 비쥬얼에 치우치기보다 좋은 소재를 찾고 개연성 있는 연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전했다.

이용선 감독은 마지막으로 시간강사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피부로 느낀 것들이 있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은 정교수 못지않게 열심히 일한다. 수업의 질을 보더라도 결코 교수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시간강사들이 없으면 대학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시간강사들이 이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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