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게는 연구 주제를, 얼음 위에는 예술을, 모두에게는 감동을

스톤도 거칠고 빙판도 거칠어야 속도 ↑
느릴수록 더 휘어지고, 빠를수록 직진
독특한 휘어짐 방향…원인은 연구 대상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대한민국이 컬링의 매력에 빠졌다. 여자 컬링 국가대표팀 ‘팀 킴(Team Kim)’이 4강에 진출한 가운데 컬링 종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컬링하면 떠오르는 것은 스위핑(Sweeping, 솔질)이다. 이를 맡은 선수를 스위퍼라 부른다. 김은정 스킵(주장)이 경기 때마다 김영미 선수(리드)를 향해 외치는 “영미!”는 이미 유행어다. 스톤이 얼음 위로 미끄러지면, 스위퍼가 스킵과의 호흡을 맞춰 빙판을 솔질한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멈춘다. 그러다 보면 신기하게도 스톤이 원하는 자리에 가 있다.

컬링(Curling)이라는 이름은 휘어진다는 의미의 영어(스코트어) 컬(Curl)에서 유래했다. 휘어지는 스톤을 사용하므로 빙상종목이 아닌 구기종목이다. 얼음 위의 당구라 불리기도 한다. 물리학과 학생들은 당구를 잘 친다는 농담이 있는데, 휘어지는 컬링 스톤의 미끄러짐 속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오는 23일 일본과의 4강전이 열린다. 우리가 ‘영미’를 외쳐야 할 타이밍은 언제일까.

컬링 스톤의 바닥은 음료 캔 바닥과 같다. 평평하지 않고 오목하다. 얼음에 닿는 면은 두께 6mm, 지름 12cm의 고리 ‘러닝 밴드’(Running Band)다. 스톤은 매끈하게 빛나지만 러닝 밴드는 까끌까끌하다. 컬링 시트도 마찬가지다. 페블(Pebble)이라 불리는 작은 얼음 알갱이가 흩뿌려져 있다. 높이는 0.2mm, 직경은 5mm 정도다.

▲ 컬링 시트의 얼음이 거친 이유는 스톤과 닿는 표면적을 줄이고, 이를 통해 마찰력을 줄여 스톤을 미끄러지게 하기 위함이다. (사진=유튜브 'SmarterEveryDay' 영상 캡처)

거친 스톤과 거친 얼음을 만든 이유는 더 미끄러지게 하기 위해서다. 서로 마주치는 면적이 적어지고, 마찰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보우덴 (F.P. Bowden)과 타보(D. Tabor)가 1950년 밝혀낸 ‘표면 달라붙기 현상’에 따르면, 마찰력의 원인은 표면과 표면이 달라붙는 순간마다 일어난다. 만일 스케이트장에서 스톤을 던지면 어떻게 될까. 학자들은 표면적이 늘어나 오히려 더 빨리 멈춘다고 설명한다.

선수들이 열정적으로 얼음을 닦으면 스톤이 더 멀리 나간다. 얼음이 매끄러워지는데도 속도가 나는 이유는 얼음이 순간적으로 녹기 때문이다. 스톤 바로 앞에서 스위핑을 하면 페블이 열에 의해 녹으면서 원자 단위의 물 층이 생긴다. 페블은 스톤과 좀 더 적게 접촉하고, 물 위에 떠서 마찰력이 줄어든다. 학계는 이를 ‘얇은 수막층 모델’이라 부른다.

스톤을 던질 때를 유심히 보면, 선수들은 스톤에 회전을 준다. 그런데 컬링 스톤이 휘어지는 현상은 익히 알려진 물리 법칙과 달리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움직인다.

예컨대 밑이 오목한 유리병을 유리판 위에서 시계방향(오른쪽)으로 돌리면서 던지면 왼쪽으로 휘어진다. 병의 앞면 오른쪽 부분에 무게가 실리면서, 이 부분이 바닥과 접촉하는 부분이 많아진다. 즉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에 마찰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왼쪽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컬링 스톤은 돌리면서 던지는 방향으로 휘어진다.

▲ 스웨덴의 니버그(Nyberg)는 2013년 컬링 스톤이 돌리는 방향으로 휘어지는 이유가 바닥에 난 흠집 때문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흠집(점)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힘을 받고, 그 방향으로 스톤이 휜다는 것. (사진=유튜브 'SmarterEveryDay' 영상 캡처)

2013년 스웨덴 웁살라대의 재료공학자 하랄드 니버그(Harald Nyberg)는 러닝 밴드의 긁힌 자국에 비밀이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스톤 바닥은 거칠기에 긁힘이 있는데, 이 긁힌 자국이 움직이는 스톤 뒤에 위치할 때 회전하는 방향으로 힘을 받는다는 것이다.(영상) 반면 ‘얇은 수막층 모델’을 지지하는 과학자들도 여전히 많다. 21일 미국 <뉴요커>의 보도에 따르면 학계의 의견은 여전히 분분한 모양새다.

물론 컬링이 과학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미’를 부르는 목소리 리듬에 맞춰 스위핑의 속도가 달라지는 ‘팀 킴’의 팀워크, 오랜 노력으로 몸에 익힌 경험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원병묵 성균관대 교수(신소재공학)는 “스톤의 움직임은 그것을 어떻게 보내고 스위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스톤의 운명을 결정하는 스위핑 기술은 선수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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