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윤 /인덕대학 중국어과 교수

대만의 과학기술 진흥 정책과 대학과 산업체의 공생공영(共生共榮)적 관계를 이해하려면 과학기술대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만의 과학기술대학은 직업교육의 일관성, 체계화, 고도화를 위해 정부가 특별히 창안한 제도로 엄격한 평가에 의해 명칭을 부여받게 되며, 연중 관리되고 있다.

현재 대만의 과학기술대학은 국립 4개, 사립 55개, 총 59개 대학으로 일반 4년제 대학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 대학이 연구 중심이라면 과학기술대학들은 기술직업교육과 산학협력의 중심대학이다. 학제는 일반 대학과 같이 4년제이며, 석사와 박사 과정까지 두고 있다. 과학기술대학에 대한 관리는 교육부 내 기술 및 직업교육사(技術旣職業敎育司)에서 주관한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출범한 대만의 과학기술대학은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의한 실용적 인재 양성과 산업체 특히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 및 인적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평가 항목도 일반대학과 달리 대부분 이러한 목적 달성에 맞춰 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대만 정부는 과학기술대학의 탄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많았으나 직업교육에 대한 정부 정책의 일관성, 대학 및 산업체들과의 꾸준한 소통으로 안정적 궤도에 접어들었으며, 이제는 교육 프로그램을 해외 수출까지 하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대만 과학기술대학의 저력과 발전을 보려면 ‘국립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을 권한다. 개교 10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대학은 대만 정부의 고등직업교육에 대한 정책과 의지, 그리고 대학의 자생적 발전 노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1912년 일제강점기 대만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인 자제들을 위한 공업강습소에서 출발한 이 대학은 1945년 해방과 함께 5년제 ‘대만성립타이베이공업직업학교’로 개명하였고, 그 후 ‘국립타이베이공업전과학교’(1981년), ‘국립타이베이기술학원’(1994년)을 거쳐 1997년 지금의 ‘국립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으로 승격했다.

먼저 이 대학은 지리적 위치가 일반 대학들과 다르다. 타이베이 시내 3개 환승역이자 번화가에 위치해 있는 대학 주변에는 화산문화창업단지, 광화국제전자시장, 삼창(三創)디지털단지 등이 위치해 있어 산학협력을 통한 학생 실습, 창업, 프로젝트를 연구하는데 유리한 여건을 지니고 있다.

1997년 교육부로부터 기술대학에서 과학기술대학으로 승격한 이 대학은 내이후(內湖)과학단지, 난강(南港)소프트웨어단지, 신주(新竹)과학단지 입주업체들에 대한 기술 애로사항 해결 및 공동 기술 개발 지원의 거점대학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만 ‘3C’ 관련업체 생산량의 38% 이상이 이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완성도 높은 산학협력 때문이다. 과학기술대학 평가에서 기술 개발을 통한 산학협력 실적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정부는 지역 특색의 산업체와 산학협력을 통해 과학기술대학의 학풍과 위상을 정립하고 상호 Win-Win 전략을 추구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 국립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 스마트팩토리. <홈페이지 캡쳐>

대만 과학기술대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직업교육의 일관성,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대학은 기계전자, 전기자원, 공정, 관리, 디자인, 인문사회 등 6개 단과대학에 16개 학과, 25개 석사과정, 17개 박사과정, 37개 연구센터가 있다. 재학생은 총 9800명, 그중 40% 이상은 대학원생이다. 대학의 교육적 역할은 대만 북부지역의 산업체에서 필요한 인재 양성과 기술 개발 지원이다. 2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대학이 추구한 업적을 보면 고등직업대학으로서의 책임과 역할 완수를 넘어 창업과 연구개발 중심의 직업교육 중심대학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기술 개발은 센터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대학이 개설하고 있는 37개 연구센터는 연구의 중요도 및 역량에 따라 대학급(7개), 단과대학급(30개)로 구분하고 있다. 대학급 연구센터는 국가 전략 과제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에너지과학기술, 생의학산업기술, 자동차과학기술 등이 이에 속한다. 단과대학급은 대학, 전공별 특색 있는 연구를 위해 것으로 공정대학(10개)과 기계전자대학(6개), 전기자원대학(6개)에서 대부분 운영하고 있다.

그 외 국립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의 우수성은 단과대학별 융합 교육, 직업 교육의 품질 관리, 교육 프로그램 수출, 창업 지원 등 여러 면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이 대학은 창의(創意)·창신(創新)·창조(創造)의 3창(三創) 교육을 융합 교육 시스템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학과와 학과, 전공과 전공, 센터와 센터 간에는 교육 과정의 편제나 운영에 있어 융합과 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연결해주는 매체가 대학별로 설치돼 있는 연구센터라 할 수 있다. 기계전기대학의 경우 학과(3개)보다 석·박사 과정(5개)이 많은 이유다. 학과급 연구센터는 교육과 기술 개발이 융합된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육 서비스 제공 외에도 동아리 활동, 학생 창업, 산학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 등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인접 학문 간 융합을 매개해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정부의 대학, 학과, 교수 업적평가 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둘째, 대학이 추구하는 교육 목표와 학과 전공 개설 및 교육 운영은 기술직업인 양성의 정합성, 융합성, 실용성을 강조하는 국가 정책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6개 단과대학의 인력 양성 목표는 국가의 전략 산업과 연결돼 있으며, 학과 및 세부 전공은 지역의 산업 구조와 매칭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학과의 교육은 본부 캠퍼스가 아닌 대만 북부 지역의 산업단지나 산업체에서 산학협력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실용적, 창의적 중소기업 지원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직업교육에서는 대만 기술직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학과 전공 간의 융합(數位匯流), 그린 환경 에너지(生態綠能) 개발, 창의 디자인(創意設計)의 사회적 역할은 건강한 과학기술, 지혜로운 과학기술, 그린 과학기술의 실현, 창의적 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으로 융합 실습실 구축, 산학 협력 지원, 기술 개발 지원 등은 결국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다.

셋째, 대만식 고등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중국 광둥성 둥관(東莞)과 상하이(上海), 태국에 ‘EMBA’ 전문 과정을 개설한 지 오래다. 둥관과 상하이에 이러한 과정을 개설한 목적은 따로 있다. 둥관은 중국 내 전자제품 등 제조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일찍부터 수많은 대만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자국 중소기업의 제품 향상과 국제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애로 기술 등을 해결해주기 위한 것이며, 세계적 하이테크 기술 산업이 운집해 있는 상하이에 서 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자국의 기술 개발 수준을 홍보함과 동시에 기술 개발의 국제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나아가 직업교육 프로그램도 수출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대만 특유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이 호평받고 있다. 대만 정부와 과학기술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를 해외 캠퍼스 설치나 직업교육 프로그램 수출 등을 통해 타개하려 노력하고 있다. 중국도 일찍부터 대만 직업교육 프로그램과 창업 지원 정책을 학습하기 위해 많은 전문대학과 정부 관계자들이 대만의 과학기술대학에서 연수를 진행중이다.

넷째, 대학은 교육의 성취나 평가 결과를 상시 대외적으로 공포해 대학인들의 자긍심과 자극을 이끌어주고 있다. 입시율, 취업률이 아니라 교육 역량에 대한 평가 결과를 공시하고 있다. 2018 전국대학 총장 대학관리평가 3위, 과학기술대학 교육 업적률 1위를 비롯해 2017년 QS 학과평가 기계·항공·제조분야 세계 151~200위, 전기전자 201~250위, 컴퓨터·자원정보공정 301~350위, 2017 IF 디자인상 수상 세계 대학 중 3위를 차지했다. 종합평가에서는 2018 QS 아시아지역 대학 가운데 108위를 차지했다. 대학 캠퍼스 환경도 우수하다. 2017 세계 그린 컴퍼스대학 평가에서 세계 23위(아시아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이 걸출한 대학 운영과 교육 업적을 창출할 수 있었던 저변에는 정부와 사회적 관심이 큰 힘이 됐다. 대만 정부는 매년 고등교육 평가를 통해 대학 발전에 자극과 격려를 하고 있다. 평가는 엄격하고, 승격과 도태가 상존한다. 고등기술직업교육평가의 경우 전문대학에서 기술대학, 과학기술대학으로의 승격에는 단계별 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수행 능력, 지역 산업 구조와의 매칭, 교육적 자질 및 학과 운영 계획, 산학협력, 교육 결과의 유용성 등을 망라해 평가한 후 2년의 준비 기간을 두고 있다. 일반 전문대학이 기술대학이나 과학기술대학으로 한단계 승격하려면 이러한 국가의 규정과 절차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 승격 후에도 평가는 엄격하다. 교육부는 매년 교육의 목적성, 정합성, 효용성 등 대학 운영과 교육 결과를 중심으로 평가하고 있다. 교육부는 평가 결과를 토대로 국립 및 사립, 지역별로 등급을 정한다. 평가대상은 교육 운영을 위한 교내 인적ㆍ물적 자원을 총망라한다. 총장으로부터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직무 수행, 교육은 품질 담보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평가 결과는 A, B, C로 통보하며 ‘A’를 받은 대학은 국고지원 증액과 함께 학생 증원의 혜택 등이 부여된다.

이처럼 교육부는 교육 운영과 결과에 대한 목적성, 정합성, 공정성 등을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인지도 평가는 사회적 인식에 맡기고 있다. 대만의 유엔지엔(遠見), 《Cheers》 등 잡지사와 《1111 인력은행》 등에서는 매년 고등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사회적 인지도 등을 평가, 공포하고 있다. 국립과 사립, 일반대학과 기술직업대학으로 구분해 결과를 공포하고 있는데, 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은 총장의 대학 운영 평가에서 국립과 사립을 통틀어 과학기술대학 가운데 최고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용주가 가장 만족해하는 과학기술대학 1위, 기업이 가장 좋아하는 과학기술대학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에 대한 사회적 호평은 대만 고등직업교육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한 구성원들의 소통과 협력, 직분과 직무에 대한 충실, 그리고 동문들의 지원과 협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특히 동문들의 적극적인 물적ㆍ인적 지원은 대만 전체 대학들 가운데 독보적이다. 이 대학 출신 창업 성공자들은 각종 특강이나 기술지도 등을 통해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있으며, 동문 기업인들은 후배들의 현장실습이나 취업, 대학발전기금 등 다양한 형태로 모교를 지원하고 있다. 대만 상장기업 가운데 10% 이상은 이 대학 동문들이라고 한다.

대만 고등기술직업교육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국립타이베이과학기술대학의 교육 이념, 대학 운영, 교육의 품질 관리 등은 대학 구조 개혁과 직업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심하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가 정한 제도 속에서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며 스스로 대만식 고등기술직업교육의 발전 모델을 창조하고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과정과 노력은 국경을 초월해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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