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서울 청원고 교사

▲ 배상기 교사

이제 고3이 되는 학생들 중 진로 선택에 고민이 없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은가에 대한 결론도 없이 고3이 됐다. 그 부담감은 크기 때문에 고3 시절을 방황하면서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3학년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어느 정도 큰 틀은 정하는 것이 좋다.

S양도 같은 선상에서 고민을 하는 학생이다. 이 학생은 필자 후배의 딸로 대학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이다. 아직도 무엇을 잘하는지 몰라 방황 중이다. 이를 본 아빠가 필자를 만나게 한 것이다. S양은 보건계열로 진학을 하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것은 없다. 최근 인기 있는 간호학과를 지망하지만 성적이 저조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 학과를 지망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간호학과가 어려우면 다른 보건계열로 진학하겠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던 터였다.

필자는 우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보건계열로 가고 싶은 이유, 잘하는 것, 쉬운 과목, 재미있는 과목 등을 물었다. S양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발표력이 좋았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아 보였다. S양이 잘하는 것은 예능, 특히 그림을 잘 그리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일본어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조예가 깊었다. 쉬운 과목도 일본어이고, 재미있는 과목도 일본어와 미술이었다. 전체 성적은 중간 정도였고, 수학을 매우 어려워하는 보통의 여학생이었다.

두 시간여의 상담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고, 후배와 S양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다. 필자가 조언한 것은 진로 즉 대학과 학과를 큰 틀에서 정하는 것이고, 그에 따른 학습법과 '멘탈' 관리였다.

필자는 S양에게 보건계열로 진학하는 것보다, 현재 그녀가 잘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와 재미있어 하는 일본어 능력을 살릴 것을 조언했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었고, 필자가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능력을 나타냈다. 그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잘 알고 있었고, 일본어를 잘하고 좋아했으며 애니메이션 그림을 잘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보건계열보다 일본어 계열로의 진학을 권유했다. 물론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야 그녀가 현재 좋아하는 일본어와 애니메이션, 그림을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발전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고, 사회에서 기회를 어렵지 않게 잡을 확률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4년제 대학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했다. 그래야 2년간 공부를 하고 더 공부하고 싶으면 편입이나 유학을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S양은 일본어 계열 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알아보기 위해 현재 수준에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몇 곳을 추려서 커리큘럼과 등록금, 기타 필요한 사항을 비교 분석하기로 했다. 자신의 현재 생활 여건과 거리도 고려하기로 했다. 시간적인 비용과 기회비용까지 포함해 구체적으로 대학을 결정하기로 했다.

S양에게는 아직 고3이라는 기간이 남아 있다. 아직 수시전형 접수까지 한 학기가 남았고, 정시전형까지는 10개월여의 기간이 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해 많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고자 하는 진로에 따른 학과 선택은 대학 선택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한 청소년이다. 그의 아버지도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일반대학이든 전문대학이든 자녀가 떳떳이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만족한다는 것이다.

성적으로만 보면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개인의 강점과 잘하는 점을 뜯어서 연결해보면, 대학에 진학할 여지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수시전형 체제하에서, 학생들의 강점을 충분히 수용하고 선발할 대학들은 많아졌다. 특히 재학기간이 아니라 능력 중심으로 진로를 고려한다면, 학생들의 대학진학의 폭은 더 넓어진 것이다.

과거의 사회적 시선과 통념이 앞으로는 많이 바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웠고 어떤 것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또한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환경에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기에 전문대의 중요성은 점점 증대하고 있다. 명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대학으로 다시 입학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증거다. 고등학생들이 졸업 후의 진로를 폭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재학기간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개발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기준을 잡으면서 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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