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

▲ 진동섭 이사

전문대는 수시 1차, 수시 2차와 정시 모집을 하고 있다. 지난 2018학년도에 전문대는 수시 1차에서 11만여 명을 선발했다. 수시 전체 모집인원 약 15만명 중 11만여 명을 수시 1차에 모집하니 전문대에 진학하기를 원한다면 수시 1차에 지원하는 것이 합격하기가 쉬울 것이다. 수시 1차에 지원하지 않고 수능을 보고 난 뒤 상황을 봐서 지원하려고 하면 좀 더 높은 경쟁률에 당황하게 될 수도 있다.

전문대 한 군데를 골라 지난 해의 입시 결과를 살펴봤다. 이 대학은 정원이 2300명 정도인데 수시 1차에서 1000명 조금 넘는 인원을 선발했다. 전형은 인문고 전형과 특성화고 전형, 지역 우선 선발 전형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은 인원을 선발하는 전형은 인문고 전형이다. 특성화고 전형은 모집 인원이 매우 적어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예컨대 전기정보제어학과의 일반고 전형은 80명인데 수시 1차 일반고 전형에서는 38명을 선발하고 경쟁률은 5.9:1인 데 비해 수시 1차 특성화고 전형에서는 2명을 선발하고 경쟁률은 19:1 수준이다. 다른 학과도 특성화고 전형의 경쟁률이 일반고 전형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다.

이 전문대에서 경쟁률이 높은 학과를 살펴보니 항공서비스과가 60:1, 호텔관광경영과는 33:1, 뷰티코디네이션과는 31:1, 외식조리과는 21:1이었다. 이에 비하면 좀 낮지만 10:1 수준을 유지하는 과는 항공기계, 기계자동차 등 전공이었고, 전기정보나 네트워크통신보안 등은 6~7:1 수준이었다. 수시 1차에는 모집하지 않고 수시 2차에만 모집한 연기예술전공은 64:1, 보컬 분야는 126:1이었다. 합격은 그야말로 기댓값이 없어 보인다. 합격이 1%의 확률도 안 되니 말이다.

이런 현상은 '2017 진로·직업체험박람회' 때도 예견됐다. 2017년 11월 초, 전문대교협 주최로 일산 킨텍스에서 진로·직업체험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관람 온 학생들 대부분은 항공서비스 관련 학과, 뷰티 산업 관련 학과나 드론 앞에 몰려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학생들의 꿈이 한 군데로 몰리고 진로 방향도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거나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설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다. 그런데 실제 모집에서 경쟁률이 높은 학과가 박람회에서 많은 학생이 몰린 학과와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태룡 동서울대학교 교수는 “전문대가 공학・기술 분야로만 학과를 개설하면 여학생이 지원하지 않는 문제가 생기므로 대부분의 전문대에서 여학생이 선호하는 학과를 개설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면 인기 있는 학과는 모든 대학에 개설됐다”고 전한다. 또, “전문대의 경우에도 공학・기술 분야에는 남학생이 더 많이 지원하고 재학생도 남학생이 많은데, 항공서비스, 경영학부의 세무회계나 마케팅, 관광, 패션, 뷰티 쪽은 여학생이 더 많이 지원할 뿐 아니라 합격자도 여학생이 훨씬 많다”고 한다. 이런 편중 현상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입학하게 된 전공에서 졸업 후에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을 낳을 수 있다.

일부 학과에 몰린 학생들 중 불합격한 학생들은 어느 길로 가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항공서비스과는 31명 뽑는 전형에서 41.2:1이니 1200명 이상이 고배를 마셨을 것이며 이 지원자들이 다른 대학의 같은 전공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로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길인가, 다른 사람이 간 길이므로 가는 길인가에 답하는 일이다. 지금 인기 있는 전공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가니까 좋아 보이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미 우리 시대는 직업 분야에 남녀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으며, 여학생이라고 꼭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녀 구분보다 앞서 생각해볼 일은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로 박람회는 좋은 정보원이 된다. 그러나 항공서비스와 드론 앞에만 몰려 구경하고 돌아온다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진로 박람회 등 진로를 맛볼 기회가 있다면 두루 돌아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봐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일은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보통 답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면 행복한 일이지만, 다르다면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잘하는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화돼 직업으로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를 전공한 학생이 앱을 잘 만들어서 전공으로 택했더니 앱 만드는 일로는 직업을 삼을 수 없더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관련된 분야를 더 폭넓게 공부하면서 발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진로의 길이 개척에 가치를 두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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