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승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총무팀장

“요즘 젊은 직원들은 자기들이 회사업무 다 한다며 억울해하죠?” 처음 맡은 인사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참석했던 HRD 워크숍에서 연사로 나선 대기업 인사팀장이 이렇게 운을 떼자, 이른바 ‘꼰대’ 취급을 받는 참석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해했다. 자신이 막내 때 같으면 당연했던 일을 하면서도 불평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젊은 참가자들은 시대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상사들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일하는 방식과 직업관이 다른 세대가 한 일터에서 함께하며 부딪치는 부조화가 갈등을 넘어 ‘꼰대 신드롬’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모양새다.

지난해 한 취업포털이 회원들을 상대로 ‘직장 내 꼰대’에 관한 설문조사를 했더니 90%가 ‘사내에 꼰대가 있다’고 응답했다. 어떤 공영방송은 기획 프로그램에서 젊은이들의 직장문화 부적응의 원인을 ‘능력’이 아닌 ‘꼰대문화’ 탓으로 돌려 댓글다툼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만큼 혐오의 대상이 돼버린 '꼰대'는 언제부터 낙인이 찍히는 것일까. 한 일간지가 보도한 “대학가의 ‘젊은 꼰대’”라는 기사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신입생에게 술을 강권하는 '꼰대 영재'부터 갓 들어온 후배를 다잡으려다 ‘꼰대 유망주’로 몰린 직장 3년 차 대리의 하소연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스스로 '소통 세대'라 자부하다 졸지에 꼰대로 전락한 자신이 당혹스러워 그동안 선배들에게 향했던 반감을 되돌아봤다는 반성파(?)도 있었다. 결국 '꼰대' 낙인찍기는 자신의 눈높이로 상대를 재단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지, 단순히 나이로 가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를 떠나 평가는 늘 후배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직장문화가 서로 다른 성장 환경을 존중해줄 만큼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에 개인주의적 성향을 곱게 보지 않는 기성세대와 이를 ‘꼰대’로 응수하는 젊은 세대 간의 마찰을 희화화하는 대중매체의 탓도 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세대 갈등이 인종차별, 성차별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고착돼 에이지즘(Ageism)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에이지즘은 미국의 노인의학자 로버트 버틀러가 정의한 것으로, 나이로 편을 가르고 서로에게 편견과 혐오를 드러내는 전형적인 차별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직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철부지라든지, 빈둥거리면서 월급만 받는 ‘월급루팡’이라는 세대 간의 상호 몰이해와 반목이 조직문화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느 대학에서 정년퇴임하는 후배에게 앞서 퇴임한 선배가 전화를 걸어 “요즘 젊은 후배들은 퇴임 연설을 너무 오래하면 싫어하니 짧게 하라”고 당부를 했는데, 선배의 조언(?)이 한 시간을 넘자 짜증이 난 후배가 머리를 감쌌다고 한다. 코미디 같은 얘기지만 현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세대 간의 관계를 가로막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주려 했다면 그 선배는 말을 아껴야 했다. 성장 환경이 다른데도 권위적으로 자기중심적 직장문화만 강요하면 '꼰대'의 벽을 허물 수 없다. 또 선배의 '꼰대질'이 싫다며 즉각 뒷담화로 맞불을 놓는 후배 역시 자신의 후배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되돌아봐야 한다. 언제까지나 막내로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해답은 역지사지뿐이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란 걸 안다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직장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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