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란 교육부 차관의 ‘전화 파동’ 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그 파동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과 고등교육기관이라는 자존심도 그 생채기가 점점 더 벌어지고만 있다.

박 차관이 전화로 정시확대를 요구했던 지난달 29일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본지에서 주최한 UCN 프레지던트 서밋에 참석한 날이다. 이날 김상곤 부총리는 “대학 자율성 지원을 통해 고등교육의 질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고 시종일관 대학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서밋에 참석한 총장들도 이에 화답해 교육부가 대학 규제 완화 노력을 하고 있음에 동감을 표하면서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기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재정을 무기로 대학을 길들이는 건 지난 10년간 반복된 고등교육계의 병폐다. 교육부는 대학의 등록금 인상을 막아놓고 프라임사업과 코어사업 등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대학을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갔다. 구조개혁평가와 대학기본역량진단은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대학 등급을 나누고 폐교에까지 몰아넣었다.

헌법이 보장한 자율성을 갖춘 대학이 무력하게 휘둘리는 건 ‘재정’ 때문이다. 한 입학처장은 각종 사업 평가 때문에 전형 변경을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돈이 마른 대학은 생존을 위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대학이 재정지원에 매달려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대학은 교육부의 말 한마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교육부에 밉보여서는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다는 것이다.

사실, 대학이 수시를 늘려온 것도 교육부의 영향 때문이었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교육부는 재정지원을 하며 학생부종합전형 중심 수시전형 확대를 유도해왔고 대학은 그 기조에 맞춰 전형을 설계해왔다.

이번 전화 파동은 교육부가 대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10년간 대학을 길들여온 교육부, 그런 교육부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였던 대학이다. 박 차관은 대학이 전화로 지시를 내려도 되는 기관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재정을 두고 갑을관계가 형성된 상태가 이어진다면 제2, 제3의 전화파동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대학이 외부 압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대학의 재정난을 방치한 결과 자율성은 땅으로 떨어졌다. 대학의 자율성이 떨어지면 정권에 따라 대학 교육이 바뀌게 되고 미래 사회를 대비한 장기적 안목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없다. 헌법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고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마침 6일 열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정기총회에서도 153개 사립대학 총장들은 고등교육정상화와 교육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가 재정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보해줄 것을 호소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총장들은 결의문을 통해 “지난 10여년 동안 등록금이 억제·인하되는 가운데서도 사립대학들은 교육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경쟁력 확보는커녕 고등교육의 정상적 운영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대학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ㆍ학ㆍ관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 대학이 이렇게 교육부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처지로 전락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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