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경제의 힘》 저자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드세지고 있다. 뭔가 지금으로서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의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이 점은 고등직업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벤치마킹’이 아니라 ‘퓨처마킹’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과거의 성공방식은 이제 더 이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암기 위주의 교육 시스템은 미래 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적 인재 양성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에 본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우리 교육환경에 미치는 여러 가지 양상을 살펴보고 고등직업교육 차원에서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⓵ 4차 산업혁명, 교육 패러다임을 바꾼다

⓶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인재상
⓷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혁신
⓸ 대학, 변해야 산다
⓹ 전문 역량 교육, 대학과 기업의 상생
⓺ 성인 친화형 대학, 은발 세대들의 캠퍼스
⓻ 디지털 시민, 글로벌 시민 대학
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글로벌 선진 직업교육현장
⓽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고등직업교육
⓾ 전문가 좌담회

▲ 4차 산업혁명 창의인재강국 실현 교육부 업무계획 삽화. (사진=교육부)

미래교육, ICT기반 '집단지성, 협업, 공유학습'중심으로 변화

▲ 최연구 연구위원

여성해방론의 선구자였던 실존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 길들여진다는 뜻이다. 여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으로 길들여진다. 생물학적인 인간은 이른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길들여지지 않으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사회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교육학 강의》에서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던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사람의 됨됨이나 잠재적 가능성은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교육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을 하다 보니 사회 환경의 변화는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환경에 직면해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발족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정의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로 촉발되는 초연결 기반의 지능화 혁명’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인터넷 등 범용기술에 의한 세 차례의 산업혁명을 이미 경험해왔고, 이제 지능정보기술이 이끌어가는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둘째 디지털, 물리, 바이오 세계가 연결되면서 모든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셋째 연결과 지능을 기반으로 사람, 사물, 공간이 스마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가장 먼저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은 산업구조와 직업세계일 것이다. 신기술은 산업구조를 재편할 것이고, 이에 따라 기존 직업 중 상당수는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직업이 나타날 것임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에 있어서 예견되는 변화의 폭과 깊이는 아마 우리의 상상 이상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교육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과 예측을 내놓고 있다. 가령 국제적인 컨설팅 및 연구 전문기관인 딜로이트(Deloitte Development LLC)는 교육 환경 변화를 분석하면서 2020년 교육의 미래 모습을 전망하고 있다. 고등교육, 차세대 교사, 학교 시스템, 미래교실, 학습의 진화, 미래교육과정 등으로 나눠 분석했는데, 2020년에는 시각적 학습, 디지털화, 증강 현실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교실에 대한 기존의 정의는 진부한 것이 되고, 대신 경계가 없고 개별적이며 역동적인 교육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등교육에 관해서는 대학진학결정에 있어서 대학랭킹 리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목표를 우선 염두에 두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링크트인(LinkedIn) 같은 온라인 서비스 덕분에 경력경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해져 진로 목표를 정해둔 후 진로를 역설계하는 방식이 유용할 것이고, 대학에서도 연간 학점이나 시수보다는 개인별 역량 계발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서던 뉴햄프셔대학이 운영하는 ‘칼리지 포 아메리카(College for America)’는 단돈 2500달러의 학비로 100일간 수업을 하고 학위를 따거나 1만 달러의 학비로 2년 만에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굳이 비싼 학비를 들여 4년 과정 학위를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정규 과정 학위보다는 오히려 암호화폐, 블록체인, 스마트 모빌리티, 머신러닝 등 전문적인 신기술 분야에 대한 12주 과정의 나노학위(Nano Degree)를 여러 개 따는 것이 취업에 훨씬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전통적인 대학 학위과정은 머지않아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초·중등교육은 물론이고 대학교육, 직업교육에도 큰 변화가 올 것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대학을 비롯한 모든 학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극단적인 예측을 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사회가 실현되면 대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들이 오게 될지 상상해보자.

첫째, 장소·공간으로서의 학교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미래에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접속해 학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도 세계 어느 지역에 있건 하버드나 MIT의 명강의를 무크(MOOC)로 들을 수 있고,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한 신흥명문 미네르바 스쿨은 아예 100% 온라인 토론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미네르바 스쿨은 캠퍼스가 없고 모든 학생들이 기숙사생활을 하며 샌프란시스코, 런던, 타이베이, 서울 등 전 세계 7개 도시를 돌며 문화와 산업을 체험하는 등의 현장 활동을 중요시한다. 미래에는 캠퍼스, 강의실의 의미는 퇴색하고 온라인 강의, 재택 학습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둘째, 교수자인 교수, 강사의 역할과 교수학습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미래교육은 지식이나 기술 전달보다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다. 따라서 교수자의 역할은 교육과정, 교수학습 자료에 나와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방향을 지도하고 문제해결역량을 키워주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코칭하는 것이다. 교수의 역할은 가르치는 것(teaching)이 아니라 멘토링(mentoring)이나 코칭(coaching)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교수학습 방법에도 첨단테크놀로지가 활용돼 교육혁신이 이뤄질 것이다. 특히 빅데이터, 5G,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이끄는 지능정보기술들이 교수학습에 전면적으로 도입될 것이다. ICT 발전에 힘입어 에듀테크 산업도 빠르게 발전할 것이고, 강의실 환경은 디지털 기반으로 완전히 재설계될 것이다. 종이책은 디지털 교재로 대체되고, 오프라인 강의보다는 개인 맞춤형 온라인 수업, 주입식 집체 강의보다는 팀 프로젝트 기반의 집단학습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고등교육은 집단지성·협업·공유학습 중심으로 패러다임 변화가 있을 것이다.

2016년에 발족한 미래학회의 초대 학회장인 이광형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최근 언론기고에서 미래대학의 목적과 전략에 대해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시했다. 대학은 교육, 연구, 기술사업화, 국제화, 미래전략 등 각각의 분야에서 대변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교육에 있어서는 창의와 도전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미래인재를 길러내야 하고, 연구 분야에서는 남들이 하는 연구를 따라 하지 말고 인류가 필요로 하는 난제를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상아탑이라는 과거 개념에서 벗어나 대학은 연구를 통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해 일자리와 부를 창출하는 역할까지도 해야 한다. 한국 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고 세계를 바라보며 글로벌화를 해야 하고, 앞으로는 대학 스스로가 어떤 인재를 기르고 어떤 연구를 할지 미래전략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 토플러는 21세기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이 쏟아지는 시대이므로 “21세기의 문맹자는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걸 일부러 잊고, 다시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이다(The illiterate of the 21st century will not be those who cannot read and write, but those who cannot learn, unlearn and relearn)”라고 말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나오면 이를 수용하기 위한 끊임없는 학습과 재훈련이 필요하므로 평생학습을 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계는 강화학습(deep learning)을 하지만 사람은 평생학습(lifetime learning)을 해야 한다. 현재의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일 뿐이지만 미래에는 일생동안 새로운 지식을 학습할 수 있는 개방형 평생교육기관으로 변화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미래에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직장에서 단 1년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은 대학교육의 목적, 방법, 미래인재상 등 모든 것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1세기는 새로운 적자생존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적자생존의 핵심은 ‘살아남는 개체는 강한 자가 아니라 변화에 빠르게 잘 적응하는 자’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게 될 사람은 지식과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는 전문가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빨리빨리 받아들이고 업그레이드하면서 스스로 변화할 줄 아는 유연한 인재일 것이다. 그러자면 인재의 산실인 대학부터 먼저 바뀌어야 한다. 바야흐로 대학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스스로 변화해서 경쟁력을 키우며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인가. 선택은 자유지만 그 책임은 반드시 스스로 져야 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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