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일 (서울대 기계항공과 교수)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드세지고 있다. 뭔가 지금으로서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그럼에도 교육현장에서의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이 점은 고등직업교육현장도 마찬가지다. ‘벤치마킹’이 아니라 ‘퓨처마킹’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 과거의 성공방식은 이제 더 이상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암기 위주의 교육 시스템은 미래 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적 인재 양성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에 본지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메가트렌드가 우리 교육환경에 미치는 여러 가지 양상을 살펴보고 고등직업교육 차원에서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⓵ 4차 산업혁명, 교육 패러다임을 바꾼다
⓶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인재상
⓷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혁신
⓸ 대학, 변해야 산다
⓹ 전문 역량 교육, 대학과 기업의 상생
⓺ 성인 친화형 대학, 은발 세대들의 캠퍼스
⓻ 디지털 시민, 글로벌 시민 대학
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글로벌 선진 직업교육현장
⓽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고등직업교육
⓾ 전문가 좌담회

▲ 이우일 교수

4차 산업혁명의 실체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연결되는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예측에는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의 시기에 대학은 어떤 문제를 직면하게 될까? 그런 환경적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가야 할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변화를 선도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구절벽 현상과 맞물려 대학의 구조조정이 현실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시급하고도 절박하기까지 하다.

대학은 본질적으로 지식정보의 생산과 전수를 통해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배출하는 기관이다. 그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교수와 학생이 등장하고 그들이 활동하는 무대공간으로서 연구실, 강의실, 캠퍼스가 필요하다. 이것이 대학에 대한 우리의 전형적인 이해일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이런 이해는 대폭 수정되거나 심하면 완전히 폐기돼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식정보의 생산과 전수라는 체계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각각이 작동하는 메커니즘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이 4차 산업혁명 사회를 대변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초연결이다. 사람의 몸이 여러 종류의 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통신하면서 생명작용을 하듯이 미래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서로 연결돼 인터넷을 통해 통신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되면 내가 필요로 하는 지식정보는 원하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 그 장소(Now and Here)에서 습득이 가능해진다. 우리는 이미 웬만한 지식정보는 휴대폰으로 내 손가락 끝에서 즉각 얻을 수 있는 포노사피엔스(phonosapiens)의 세상을 살고 있다. 따라서 지식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에 있어 고등학교, 대학교와 같은 특정한 시기나 강의실, 도서관 등과 같은 특별한 공간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 지식정보의 유비쿼터스적 습득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어떤 미래학자는 지구상 대부분의 대학이 사라질 것이라는 다소 과격한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지식정보의 생산과 전수 관점에서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모든 사람이 지식정보의 생산자이자 소비자(prosumer)이며 모두가 서로에게 가르침을 주는(mutual teacher) 시대다. 따라서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은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진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형 교육으로 변화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런 교육의 과정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 습득한 데이터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 구성원들 간의 의견 차이를 토론을 통해 극복해가며 문제해결을 위한 답을 도출하는 능력 등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선진국에서 하고 있다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이나 무크(MOOC)와 같은 온라인 교육의 활성화 역시 자연스런 미래 교육의 모습이다. 단순히 암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지식정보는 각자가 처한 편한 공간에서 쉽게 습득할 수 있다. 학교에 와서는 그 지식정보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고 실험해 봄으로써 각자의 개성에 맞게 다양한 지식정보로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미래 세상에서도 강의실, 연구실, 캠퍼스와 같은 전형적 개념의 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고 현재의 대학이 지향해야 하는 변화의 방향이기도 하다.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대학들은 창의·협동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사진=강원대)

그렇다면 대학은 미래사회를 담당할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할까? 인공지능, 빅데이터, 센서, 소프트웨어, 코딩… 4차 산업혁명과 함께 가장 빈번하게 듣는 용어들이다. 정부, 산업계, 대학 모두 이들 개별 기술 분야의 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협력하는 괴짜’로 집약되는 인재, 즉 창조성과 협력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큰 공감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학의 교육시스템 역시 학생들이 이런 능력과 자질을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혁신돼야 하며, 평생교육과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 수요자의 생애주기별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관련해 에듀테크 산업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기술, 사회, 문화적 발전과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인재상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미래인재는 컴퓨터·IT 및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의 능력과 지식은 물론 문화ㆍ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갖출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2020년에 요구되는 교육목표 1위로 ‘복잡한 문제를 푸는 능력’을, 이어서 ‘비판적 사고’ ‘창의력’ ‘사람관리’ ‘협업(協業)능력’을 차례대로 들었다. 이런 요구조건을 모두 충족한 인재는 결국 전인적 인재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문명사적 변화의 시대에도 결국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인재,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공계적 자질과 문과적 자질을 두루 갖춘 전인적 인재가 시대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미래의 대학교육 방향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듣고 있다보면 30년 넘게 대학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해온 필자 입장에서도 혼란과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대학교육도 대학의 발생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다양한 의견 차이를 토론을 통해 좁혀가면서 다중의 공감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따라서 창의성이나 협력성 등과 같은 자질 함양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이기 때문에 갑자기 그리고 특별히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시대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완전한 인간형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의 본질이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시대와 환경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은 교육이 이뤄지는 형태와 교육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의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몇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우선 문ㆍ이과로 구분된 고등학교 교육을 통합형 교육으로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 완전하진 않지만 정부가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대학입시도 통합사고형 인재를 선발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최근에 교육부가 정시전형 선발 비율을 늘리도록 일선 대학에 종용했다는 매스컴 보도가 있었지만, 대학입시는 국가의 동량을 육성하기 위한 첫 단계라는 점에서 단순히 정시·수시 비율을 조정하는 차원의 문제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변화하는 시대환경에 맞는 인재상 및 교육철학, 그리고 각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양성의 핵심가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대학에서도 입시에서의 선발기준 변화 등을 시도할 때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 통합사고형 인재는 단순히 문과 및 이과 과목에서 두루 높은 평균점수를 얻은 인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능력이 중시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질을 평가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이 일단 입학하면 대학은 학생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질을 더욱 성숙시켜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공동체 속에서 그 다양성을 조화롭게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데이터 기반의 대학행정이다. 학생과 교수가 하는 모든 교육활동이 개인별로 데이터베이스화되고 그 빅데이터의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지원이 가능한 대학행정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은 복수의 전공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고 교수는 몇 개의 전공분야에 소속돼 융합적인 교육을 기존의 전공별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는다면 그것은 ‘다양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을 키우는 것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한정된 지식이라도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체화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생산할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대학이 학생이 온라인에서 습득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해서 실험하고 체화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인구절벽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이 다양성을 고려한 대학교육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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