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청원고 교사

▲ 배상기 교사

육군 중사 M군, 직업군인으로 30세다. 이제 결혼을 앞두고 있는 훌륭한 청년이다. M군은 초등학교부터 필자가 잘 알던 아이다.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축구와 달리기, 투기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몸도 빠르고 재능도 있었다. 그러니 성격도 급해져서 친구들과 다투기를 자주 했다. 필자의 기억에는 좀 난폭한 아이였다.

M군 부모는 맞벌이를 했다. 선배는 일본을 오가는 사업을 했으나 벌이는 넉넉하지 않았다. 선배의 부인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형편이 됐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자연히 부모의 손길에서 멀어져갔다.

미술과 공부를 잘하는 M군의 누나가 동생인 M군을 잘 보살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M군은 점점 공부와 담을 쌓았다. 선배는 M군을 엄하게 키운다고 했는데, M군은 아빠에게 맞은 기억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운동까지 좋아해서 공부는 자신이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늘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뭔지를 몰랐고, 맘에 차지 않았었다.

M군이 중학교에 진학을 하면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특성화 고등학교 전기과로 진학하게 됐다. 누나처럼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빨리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 하던 M군이었다.

선배는 아들 M군이 걱정이 많이 됐다. 자기처럼 불안정한 사회인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아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들 M군이 고3이 됐을 때도 공부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자신의 장래에 대한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들에 대한 선배의 걱정은 매우 컸다.

지성이면 감천이랬다고,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던 선배는 친구로부터 군사학부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됐다. 전문대에서 국방관련 학과를 전공하면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고, 그 복무 기간이 끝이 나면 직업군인이 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선배는 아들 M군에게 물었더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D대학 유도탄약학과였다. 상담을 해 비전이 있다고 판단되면 진학할 예정이었다.

과연 M군이 그 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학과에 적성이 맞는지, 그 학과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등에 관한 상담을 했다. 담당 학과장님은 아주 친절하게 상담을 해줬다. 그리고 잘 준비해 도전하라고 격려를 잊지 않았다. 선배와 M군은 유도탄약학과를 지원했다. 2008년 당시에는 그 학과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M군은 수시전형으로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M군은 합격을 한 뒤에 많은 변화를 보였다. 비전을 본 것이다. M군은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과목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 자격증을 모두 취득했고, 학교생활에서도 성실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모든 노력으로 M군은 육군에서 장기복무를 하기 위한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그 덕분에 M군은 장학금 2,000만원이라는 장학금을 받았고 육군하사로 장기복무를 하게 됐다.

M군은 7년간 하사관 근무를 아주 충실하게 했고 많은 표창을 받았다. 그는 직업군인이 자신의 적성과 맞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무거운 탄약을 들고 운반하거나 훈련을 할 때에도 그것이 좋았다. 그 일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그 분야에서 전문가로 국가에 이바지하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기에 더욱 노력해 직업군인이 되고자 했다.

결국 M군은 직업군인이 됐다. 경쟁률은 높았지만, 자신이 탄약을 사랑하고 군인이란 직업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제는 결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벌써 12년 전에 전문대로 진로를 결정한 결과가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자 훌륭한 대학의 직업군인, 탄약 전문가로 탄생한 것이다.

지금 적성을 모르거나 진로가 불명확하다면 전문대를 생각해보자. 남자라면 군사학부도 있다.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전국에서 다양한 전공의 국방 관련 부사관학과가 있다. ‘사관, 국방’의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약 53개 대학이 검색된다. 모집인원은 총 2700여 명이다.

M군은 전문대에 진학해서 많이 바뀌고 발전했다. 여러 교수님들로터 칭찬과 신뢰 속에 훌륭한 성인으로 성숙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성숙이 아니라, 인생에서 변화를 도모하는 사람의 성장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적성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 적성을 일찌감치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기회를 찾는다면 얼마든지 있고, 그 기회를 선택한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된다. M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고, 필자가 M군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이다. M군의 어머니는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아요. 우리 M군이 그것을 가졌어요. 그래서 오늘 잘된 거예요. 우리 아이는 늘 맘속에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러나 맘에 차지 않았던 거지요. 공부는 안했어도 뭔가를 하고 싶어 했어요. 그것을 전문대에서 찾은 겁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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