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 연성대학교 기획처장

올해는 유난히 대학가를 뒤흔들 만한 태풍급 어젠다(agenda)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이슈화된 입학금 폐지 문제는 학생, 대학, 정책당국 간의 의견 대립과 논쟁 속에서 결국 실질적인 입학경비 20~30%를 제외하고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해 종국적으로는 폐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결론이 났다고는 하지만, 학생 수 감소와 10년 가까이 이어온 등록금 동결로 가뜩이나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에 대한 어떠한 재정적 구제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치면서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목표 정원감축 규모를 2만 명으로 축소하며, 자율개선대학의 비율을 상향시키는 등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단계 진단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진단의 획일화 문제, 진단 내용과 방법의 문제, 자율개선대학 비율의 문제 등의 비판을 받고 있으며, 1단계 결과가 발표되는 6월 중순과 최종결과가 발표되는 8월 말에 또 한 번 큰 홍역을 치를 것을 예고하고 있다. 대학 입시제도 개편은 어떠한가? 교육부는 지난 4월 초에 대입제도 개편안을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에 이송했다. 어떤 결론도 없이 선택지만 나열한 이송안에 대해서 결정장애, 무책임 등의 비판이 쏟아졌으며 교육부 폐지 법안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이송안을 받은 국가교육위원회는 권역별로 열린 마당을 개최하며 의견수렴에 나섰지만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가운데 갈 지(之)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학 특히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고 규모도 작은 전문대학으로서는 눈 위에 서리를 맞는 형국이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나 대입제도 개편은 대학들 사이에서도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는 사안이다. 대학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 결론이 나든 유불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고차방정식을 단번에 풀 수는 없다. 고차방정식을 구성하는 일차 방정식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이 이치이듯이, 이런 상황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정책에는 정부가 지향하는 국정철학이 담겨야 한다. 물론, 여론을 경청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국정철학에 반하는 것이 보이는데도 일부 힘있는 여론에 편승해 국가정책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포퓰리즘이며, 국정철학은 구호에 그치는 허구로 전락할 것이다. 합의되기 힘든 여론의 갈래가 있는 상황에서 정책적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판단이 ‘당신의 국정철학은 무엇인가?’의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비록 힘없는 소수의 의견일지라도 기꺼이 선택하고 힘있는 다수를 설득하며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자세의 의미는 정책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국정철학이 무엇인가? 즉 어떠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해 정책당국이 스스로 묻고 대답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이나 대입제도 개편을 통해 어떠한 고등(직업)교육과 대학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을 써야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의 학벌주의는 우리 사회에 오래된 적폐다. 학벌주의 사회에 살아가기 위해 연간 20조원 규모의 사교육 시장 등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또한 어마어마하다. 이는 저출산의 주요 원인이 되고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며 교육의 악순환 고리가 되고 있다. 학벌주의 타파와 능력중심사회 실현을 국정철학으로 가지는 정부를 반대할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아직 이것이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학벌이라는 관념에 너무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해진 관념에서 벗어나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학벌이 아닌 능력이 중시되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대학 기본역량 진단과 대입제도 개편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부디 능력중심사회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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