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조 동양미래대학교

▲ 오상조 교수

전문대학 교수 입장에서 호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광활한 자연,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보다 앞서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가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렇게 호주는 우리에게 국가역량표준 또는 국가직무능력표준, 즉 NCS로 다가오는 나라다. NCS를 전문대학 교육과정에 도입하기 이전에도 직업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우리나라 여러 전문대학에서 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를 벤치마킹했을 만큼 호주의 고등단계 직업교육은 우리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자면 호주에는 우리나라의 전문대학과 같이 “학위(Degree)”를 수여하는 고등직업교육 기관은 없다. 노력 끝에 TAFE등에서 학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됐으나,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과 유사하고, 이 과정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여러 여건이 갖춰지지 못해 아직 그 학생 수는 미미한 편이다.

TAFE 등 RTO(Registered Training Organization)에서는 대신 “자격(Certificate)”을 수여한다. 고등직업교육 자격 과정을 제공할 수 있는 기관을 통칭해서 RTO라고 하는데, TAFE는 주나 준주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공립 RTO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국가표준인 NCS를 각자의 방식으로 교육·훈련하고 과정을 이수한 학습자들에게 자격을 수여한다. 즉 과정이수형 자격제도를 택하고 있다.

각 자격은 대부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고, 일부 선택할 수 있는 NCS 능력단위(Unit of Competency)들로 구성돼 있으며 AQF(Australian Qualification Framework) 수준이 지정돼 있다. 자격을 수여하기 위해 학습자들은 각 자격에서 요구하는 NCS 능력단위의 역량이 있음을 확인받아야 한다. 평가는 TAFE 등 RTO의 평가자(Assessor)에 의해 이뤄지는데 이들 평가자가 갖춰야 할 자격 또한 규정돼 있다.

고등직업교육 품질관리 감독 기구인 호주기술품질기구(ASQA;Australian Skills Quality Authority)에서는 TAFE등의 RTO에서 해당 자격을 수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자격을 수여하는 고등직업교육기관에 대한 심사는 정기적으로 이뤄지며 이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해당 기관은 더 이상 자격을 수여할 수 없게 된다. TAFE등의 RTO가 더 이상 해당 자격을 수여할 수 없게 됐을 때, 해당 과정을 수강하고 있던 학습자들에 대한 보호(예를 들어 수강료의 환불 등) 절차가 마련돼 있다.

지금까지 기술한 호주에서의 고등단계 직업교육은 우리나라 고용노동부에서 진행 중인 여러 사업들과 유사하다. 검정형 자격제도가 병행, 유지되고 있지만 NCS 능력단위들로 구성된 자격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자격 과정을 교육·훈련할 수 있는 기관을 평가·지정한다. 이미 고등직업교육 수행 역량을 평가인증받은 여러 전문대학에서도 평가를 한 번 더 거쳐 자격 과정을 운영하기도 한다. 조금 다르다면 지정된 기관이 자격을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한 차례의 평가를 거치는 과정평가형 자격제도를 유지한다는 점 정도다.

호주의 경우 NCS 역사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NCS에 산업체의 요구가 반영된 정도나 TAFE등 RTO에서 수여하는 NCS로 이뤄진 자격의 사회 수용 정도는 우리와 비교하기 어렵다.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NCS가 산업체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지 그리고 NCS 능력단위로 이뤄진 자격들을 산업체에서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전문대학의 고민이 시작된다.

호주 TAFE 등 RTO의 교육과정은 제공하는 자격에 따라 정해진다. 즉 국가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교육·훈련을 제공하는 방법이나 내용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지만, 자격마다 학습자가 입증해야 하는 역량은 동일하므로 TAFE 등 RTO는 거의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볼 수 있다. 학습자는 역량을 입증하면 자격을 수여하고, 기업에서는 자격을 기준으로 채용한다.

▲ 호주 시드니대(University of Sydney) (사진=시드니대)

우리나라 전문대학에서는 지난 몇 년간 NCS를 수용해 이를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을 개발·운영해왔다. 산업체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개발·운영하는 전문대학 입장에서는 NCS가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직무능력 표준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은 각 전문대학에서 자율적으로 개발·운영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에 NCS를 반영하는 정도나 반영하는 NCS 능력단위는 서로 차이를 보이게 된다. 각 전문대학이 처한 환경의 차이로 인한 당연한 교육과정의 차이지만, 결과적으로 각 전문대학에서 제공하는 동일한 전공의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수행 능력을 입증한 역량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까지, 전문학사 학위는 표준화된 자격 제도와 연결되기 어렵다.

자격 또는 NCS를 기업의 채용, 특히 대부분 전문대학 졸업생들의 진로인 중소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활용하는지, 즉 산업체의 수용도 또한 고민이다. 중소기업에서 자격을 기반으로, 적어도 NCS 능력단위를 기반으로 채용한다면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은 그 자격이나 해당 NCS 능력단위를 포괄하는 것으로 쉽게 변화해 가리라 예측할 수 있다. 공기업 등 일부 기업에서 NCS 기반 채용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 기업들은 전문대학 졸업생 대부분의 진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용의 방향,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고등직업교육 방안 등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교육부 간 협의가 지속적으로 잘 이뤄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의 대부분을 감당하는 전문대학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고등직업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정책과 사업들 각각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각각의 사업들을 모두 모아놓은 전체 모습에서는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의 목표를 찾기 어려워진다. 모든 전문대학에서 도입한 NCS 기반 교육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는 국가자격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국가자격은 일부를 제외하면 중소기업 채용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에서 고등직업교육 기관으로 인정한 전문대학을 고용노동부 입장에서 또 평가하기도 한다.

좀 더 전체적인 국가차원의 직업교육 그림을 그리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개별 사업을 설계해 고등직업교육을 지원하기 원하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호주에서와 같이 고등직업교육, 자격제도, 채용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갈까?

4차 산업혁명을 마케팅 용어로 폄하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등단계 학술교육도 중요하지만, 직업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세계 각국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고등직업교육 그리고 평생직업교육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수준의 직업교육 마스터플랜 수립 과정에서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곧 국가차원의 직업교육 그림이 완성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문대학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고등직업교육을 이끌어오고 있으며, 입학생 수 기준으로 고등단계 학습자의 1/3을 넘게 책임지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고등직업교육에 있어 전문대학의 책임과 역할은 중요하다. 전문대학의 경험과 향후 역할이 제대로 반영되고 각 부처 간 역할과 업무가 잘 조정된 섬세한 직업교육 마스터플랜의 수립을 기대한다.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들은 속담 하나. 눈이 와야 솔이 푸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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