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기 청원고 교사

▲ 배상기 교사

H군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즐거운 시간에 빠지던 유년시절을 보냈다. 종이는 그의 놀이터였고 연필은 놀이기구였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하늘이 선물해준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중학교 수업시간까지 교과서의 빈 공간에는 필기보다는 그림이 가득했고, 책장을 넘기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탄생했었다.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그의 책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키득키득대거나 대단하다고 칭찬해줬다.

공부보다는 예능이 더 즐거웠던 그였기에 공부에 큰 흥미를 갖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 그리기와 관련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문계열 고등학교를 진학했고, 그때부터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됐다. 좋은 기회를 찾기 위해 더 넓고 높은 곳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공부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시기였다. 그는 그렇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다.

그런 H군이 난관에 봉착했다. 미대입시 교육비가 만만치 않았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더욱 크게 느껴졌다. H군은 3형제의 맏이였다. 혼자만 부모님께 비싼 학원비와 수능 후의 특강비, 그리고 대학 등록금까지 부담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등록금을 주신다 해도 부모님의 부담이 너무 크고, 4년 동안 대학을 다니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그 돈을 조달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상태에서 H군이 찾은 대안이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빠른 졸업과 4년제보다는 저렴한 등록금, 그리고 빠른 사회 진출이라는 장점을 보기로 했다. H군은 고등학교 내신을 잘 받아둔 것이 도움이 돼 수시전형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 전문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했고, 친구들이 수능을 보는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H군은 전문대에 진학하면서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첫째는 해외경험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는 것이며, 셋째는 교수님들과 좋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학생활이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했다.

외국 경험을 위해서 대학 1학년 때 새벽 6시에 일어나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며 회화공부를 했고, 2학년 때는 국가지원 해외탐방 프로젝트를 준비했으며, 3학년 때는 졸업전시회 위원회에서 팀장을 했다. 그리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늦게까지 과제를 하느라 새벽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2학년 2학기 때 학과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은 것을 비롯해 대학 3년 동안 과 수석 2회에 매 학기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그리고 국가지원 사업으로 전공심화 해외탐방 프로젝트에 선발돼 친구들과 일주일간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H군은 교수님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진로선택이나 취업준비에 관한 질문을 정리해 교수님 연구실을 두드렸다. 그때마다 교수님들은 대부분 성의 있고 친절하게 상담해 주셨다. 방학 동안에는 한 교수님의 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H군은 전문대학 시절이 자신의 강점을 발견한 시기라고 했다. 장학금 수혜와 과수석의 성적, 해외탐방 및 프로젝트 수업, 그리고 졸업전시위원회 팀장 등의 활동은 H군의 강점을 더욱 강하게 하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친 H군은 현재 취업 4년 차에 접어든 30대 초반의 직장인으로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 금융계 회사에서 웹 디자인팀의 실무자로 근무하고 있는데, 웹 디자인 이외에 UI/UX/브랜딩 등 여러 직무에 도전하고 있다. 이는 모두 학교에서 배운 스킬이라고 했다.

H군은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빠른 재능 발견이기도 하겠지만,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문대 진학이 남과 비교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4년제 대학보다 단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부는 대학 졸업으로 끝나지 않고 평생 하는 것입니다. 전문대 졸업장이 리스크라면 더 공부하면 됩니다. 전문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활용한다면, 가치 있는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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