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얼룩무늬 훈련복을 입은 남자 고등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목제 M1소총을 일사불란하게 휘두른다. 여자 고등학생들은 유사 군복을 입은 채 제식 훈련에 힘을 쏟고 있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 고교 운동장의 익숙한 풍경이다. 이 당시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군대식 총검술과 제식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군대가 아닌 학교에서 군사 교육을 실시했기에 교련(敎鍊)이라고 불렀다.

당시 문교부가 전국의 고교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련을 실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교련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1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사살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터진 이듬해인 1969년 신설됐다.

교련은 청소년들에게 확고한 국가관을 정립하고 투철한 안보의식을 확립한다는 목표로 탄생했고, 남녀학생을 불문하고 누구나 들어야 할 필수과목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고교와 대학에 교련 과목을 도입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교련을 통해 국민을 통제하고 학원 병영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교련에 반대하는 철폐투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1971년 1학기부터 박정희 정권이 대학에서 군사교육 과목인 교련을 강화하자 대학생들이 ‘학원 병영화 반대’를 주장했고, 이로 인해 많은 대학생이 당국에 강제 연행되기도 했다.

대학교련은 1980년대 말까지 군사교육 중심으로 실시했으나 냉전체제가 와해되고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1988년 폐지됐다. 고교교련은 1992년 6차 교육과정부터 응급처치, 인성 교육, 안전 교육 위주로 개편됐다가 1997년에 7차 교육과정에서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됐다. 

이후 교육부는 2007년엔 교련과목의 내용과 명칭을 새롭게 바꾸고 2012년부터 바뀐 교과목으로 수업이 이뤄지도록 했다. 권위주의와 군사문화를 상징했던 교련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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