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경 경남정보대학교 교수

1등만 기억하고 2등, 3등은 기억조차 하지 않는 무심한 세상. 어느 순간 “꼴찌에게 갈채를”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곤 했지만 세상은 또다시 편협적으로 금메달, 우승, 이기고, 좋고, 멋진 것들에 온통 시선이 가있다. 성공한 자, 힘 있는 자, 부자 등 사회적 시각으로 앞선 자들에게 우리는 오늘도 부러움과 존경의 눈길 속에 시샘을 감추고 영혼 없는 순응의 자세를 취하곤 하지만, 정작 뒤처진 자들을 향한 시선엔 매몰차기가 겨울 찬바람 같다.

요즘 우리 학생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렵고, 공부에 흥미가 없는 친구들은 언제 한 번 대학에 오기까지 뭣 하나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늘 1등과 잘난 친구들에게 짓눌리고, 어린 새싹 때부터 선생님들의 관심 밖에서 받은 상처가 마음의 깊은 골방 여기저기에 더덕더덕 남아 있을 것이다. 너무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자. 꼴찌 없는 1등이 어디 있으며, 군계 없는 일학이 어디 있는가.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최고가 되기를 갈망하는 우리들 사회,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가치관에서 뒤처짐은 곧 패배요 실패니 1등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쉽지는 않은 시대다. 그렇다고 1등이나 우수한 것이 아닌 나머지를 모두 무용지물로 취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특히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인간임에야! 사회가 존재보다는 소유에 방점을 두고, 과정보다 결과에 무게 중심을 둔다고 해서 학생들을 대하는 교육자들까지 이럴 필요는 없으리라. 골칫덩어리요 말썽꾸러기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모르는데 누가 감히 그들의 현재 모습으로 미래를 예단할 수 있을까?

“쓸모가 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천지는 넓고 게다가 크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걸을 때 쓰는 것은 발로 밟는 부분뿐이다. 그렇다고 발 크기에 맞춰 발자국만큼의 땅만 남겨놓고 나머지 부분은 황천에 이르도록 깎아낸다면 그래도 그 땅이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게 되는 이치도 분명하지 않겠나!”

《莊子》 《外物篇》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가 만나고, 가르치는 학생들 중 우수한 학생은 교수자의 사랑을 받고 미래가 밝은 사람으로 기대를 모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학생들은 사랑과 관심 밖에서 그의 지나온 과거와 다를 바 없이 무용지물이라는 패배의식 속에 아웃사이더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무용지물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음이 아니다. 단지 아직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가 지금은 무용지물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쓸모 있는 자리에 있을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것이 쓸모없는 것이 쓸모가 있게 되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쓸모 있고 없음은 돌고 도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이리라. 오늘의 쓸모 있음도 내일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요, 오늘의 무용지물이 내일은 쓸모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사 새옹지마의 법칙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와 같이 한 공간에서 이 시대와 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학생 모두는 귀하고, 보기에 지금은 조금 미숙해 보이는 학생이 있을지라도 세상에 쓰임 있는 존재로 살아 갈 것을 믿으며, 이런 그로 인해 내가 존재하며 그가 있음으로 나 자신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