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

▲ 진동섭 이사

지인 한 분이 대학을 갓 졸업한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아이가 워낙 착해서 한 번도 가족의 의견에 반한 적이 없었는데, 대학 진학할 때도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전도가 유망할 것으로 생각되는 학과를 추천받아 공대 모 과에 진학해 잘 다녔단다. 학점도 좋아서 당연히 졸업 후 취업도 순조로울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이는 취업이 어려울 것만 같은 곳에 지원해 몇 번 실패하더니, 자신의 꿈은 자신만의 빵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제빵 명인이 하는 빵집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이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주변의 말을 듣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진로 목표를 스스로 잘 알아보고 정했다면 대학 교육을 선택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진로・진학 경로를 선택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모 대학 수학과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분이 안식년을 맞아 보람 있는 일을 했다면서 자랑을 하고 다닌다. 새로 국가자격증을 땄다는 것인데, 그게 제빵사 자격증이다. 자신에게는 이 길이 딱 맞는데 어쩌다가 수학 공부만 해서 이 길을 가고 있지만 다시 살라고 하면 제빵사가 됐을 것이라고 한다. 수학과 교수지만 주말에는 수학 공부를 하지 않는데, 빵 만드는 일은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해도 억울하지 않단다. 수학 공부보다 제빵은 자신의 인생에 향기를 주고 몸을 움직이는 보람을 준다고 한다.

이런 일들은 전공적합성이라는 것과 연관돼있다. 의상디자인을 하려는 학생의 첫 조건은 옷을 좋아하는 것이다. 옷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활동을 하든, 공부를 하든, 블로그를 운영하든 재미를 느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은 어떤 공부를 하는 것이 의상 디자인과 연결되는 것인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의상디자인은 그림만 좀 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도 해야 하고, 의상 소재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디자인한 옷이 상품화됐을 때 상품성과 경제성이 있을지에 대한 정보도 있어야 한다는데, 그렇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대학 진학에서 이런 상황을 두고 ‘전공적합성’이라고 한다. 대체로 학생부종합전형에서 평가 요소로 인성, 학업역량, 전공적합성, 발전가능성을 꼽는데, 이에 대해 대부분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진학 측면에서 긍정하고 있다. 그중 전공적합성은 대학에 가서 배울 것을 미리 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수준까지는 배운다는 것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고교-대학 교육과정 연계라는 표현을 한다. 우리나라도 5차 교육과정까지는 모든 고등학교가 같은 과목을 같은 학년에서 배웠다. 이렇게 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도 국민공통 수준이 된다. 그러나 6차를 지나 7차에 오면 학생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서 배우도록 교육과정에서 규정했다. 이는 자신의 진로를 고려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과목을 선택해서 배우도록 고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을 국가 수준에서 정한 것이다.

고등학교 2, 3학년 때 무엇을 선택해서 배울 것인가를 정하려면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인생의 목표라는 말이 거창하면 진로 목표라고 해도 좋다. 진로 목표를 대강 정하는 과정은 ‘제빵사가 되겠다’고 정하는 방법도 있고 자신이 잘하는 과목을 살펴보고 ‘이런 과목들을 좋아하고 잘하니까 이 분야가 내게 맞는구나’ 하고 정할 수도 있다. 그러려면 당연히 대학 홈페이지를 참고해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학교 진로 교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도 이름만 보고 학과를 정하면 그 과가 무엇을 배우는지를 모르고 진학하게 되므로 흥미를 잃고 새로 시작하게 될 수도 있으니, 학과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학과를 졸업한 뒤의 진로 상황과 재학 때 배우는 과목을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대학의 입시에서 전형요소는 대부분 학생부교과다. 또 대부분 학생은 일반고·자율고 출신 학생이다. 그러므로 고등학교 때는 고등학교의 보통교과 중심으로 된 선택형 교육과정에서 자신이 이수할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한다. 그런데 진로를 정할 때 대학에서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를 찾아봐도, 그것을 대학에서 이수하기 위해 무엇을 고등학교 때 이수하면 연결이 되는지를 알 수 없다면 학생이 과목 선택을 잘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시 한 번 몇몇 전문대학의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전문대학 정원의 절반이 넘는 공학부 중 기계과에서는 공업수학, 공업역학, 기계재료, 열역학, 재료역학, 기계설계, 전기전자개론 등의 과목을 배운다. 이 과목을 잘 이수하려면 어떤 과목에서 어떤 단원은 특히 잘 배워야 하는지를 안내해 줬으면 좋겠다. 대학의 과목별로 할 일은 아니고 대체로 기계과에 진학하려면 어떤 과목에서 어떤 성취기준(학습목표)은 유의해서 공부하는지 미리 알려주면 좋겠다.

이렇게 돼야 고교에서는 학점제도 운영할 수 있고, 진로 지도도 원활히 할 수 있다. 또 대학에서는 관심 있는 학생, 준비된 학생을 받게 되므로 중도 이탈률이 적어질 뿐 아니라 교육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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