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흠 동아대 법무감사실 팀장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의 요람은 바로 대학일 것이다. 최초로 대학이 교육기관으로 출범할 때 법학과 의학 그리고 신학 불과 3개 과목의 전공만 개설했다. 이후 수많은 전공과목을 개설하면서 현대사회에서는 대학이 아카데미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사적으로 대학은 근대화시대를 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산업화에 기여하고 정보화를 싹 틔우는 데 기여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뛰어난 민족성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대학에 거는 기대는 종교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간혹 대학캠퍼스를 거닐며 문득 대학이 없던 때보다 창의적인 인재가 왜 없을까 의문이 든다.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된 전공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대학에서 그 이름에 걸맞은 대학자(大學子)들의 탄생이 요원한 것은 비단 대한민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가 없을까. 왜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물리학자는 현시대에 없을까. 물론 그는 대학을 다녔지만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화가, 첫 비행을 한 라이트형제의 등장은 없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전통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세종대왕과 같은 현군은 아직 볼 수 없으며 율곡 이이와 같은 천재는 찾아볼 수 없다. 이순신과 같은 장군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정약용과 같이 한 시대를 앞서가는 인물을 보기 어렵다. 필자의 견해로는 주입식 교육의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인물상을 기대하는 것은 콩 심은 데 팥을 거두려는 마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한국 교육현실을 볼 때면 그리스신화의 두 인물을 연상하게 된다. 매년 바뀌는 입시제도는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가 재현되는 느낌이다. 영원히 산위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운명에 처한 불행한 자의 역할을 수험생들이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현장은 어떤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놓인 것 같다. 프로크루테스는 아테네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침대에 누이고서는 키가 침대보다 길면 다리를 자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늘려서 모두 죽였다. 바로 주입식 교육의 현실이다. 주어진 현실에 모두 적응하는 사람들만으로는 급변하는 미래사회를 풀어나갈 방법을 찾기 어렵다. 강의하는 내용을 주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OX 문제와 단답식 평가로 이뤄지는 교육은 근대사회의 부품을 제조하는 산업현장에 적합한 인물에게 맞을 것이다.

얼마 전 작고한 앨빈 토플러는 한국 교육을 참관하고는 한국은 19세기의 교과서를 가지고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평가절하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시점에 도달한 한국은 현재 미래사회 준비에 약간은 허둥지둥하고 있는 상황이다. IT 전문가 손정의는 곧 인류에 팡게아 시대와 같은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순노동은 기계가 대체할 것이며 고도의 지능을 사용할 분야도 인공지능에 의해 교체될 시대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인재상은 창의적인 인물이다. 인간만이 가진 창의성은 그 어떤 기계도 대체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대는 교육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피교육자가 받아쓰기하는 교육은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할 때다. 학생 스스로 사고하고 탐구하는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자. 우리 교육현장에 놓여있는 시지프스의 돌을 제거하고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베어버리자. 교과서 중심의 교육이 아닌 호기심 중심의 교육을 권장하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잠언을 떠올리게 되는 시점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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