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울산과학대학교 학술정보운영팀장

도서관은 ‘나’를 성장시키는 공간이다. 필자는 30여 년 이상 도서관 종사자로서, 매일 다양한 책을 만난다. 얼마 전부터 4차 산업사회에 관한 책을 읽고 읽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데 응용하기 위해서였다. 20여 분만에 200여 쪽을 모두 읽었다. 속독하지 않았음에도 빨리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책의 밑줄 친 곳만 읽었기 때문이다. 먼저 읽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책을 읽은 후, 쉽게 간단한 정보는 얻었지만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릴 적 합창할 때가 떠오른다. 나는 알토 음역이었다. 노래를 부르다보니 가장 높은 음인 소프라노를 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 알토를 해보지만 또다시 소프라노를 했던 쑥스러운 경험이 있다. 독서 중에 밑줄 친 곳이 그랬다. 독서 중에 나도 모르게 밑줄 친 글에 자주 눈길을 뺏겼다. 그 순간 나의 주도적 글 읽기는 중단되고 밑줄 친 독자가 한 글 읽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 다른 독서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불편했다.

밑줄 친 독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이 나와 같을 순 없다. 먼저 읽은 독자가 표시한 곳을 따라 훑어 읽기는 독해력이 떨어진다. 그런 내용은 해당 페이지를 찾아 다시 읽어야 만족스럽다. 생면부지인 그 독자와 내가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면서 책에 밑줄 치는 것은 다른 독자의 독서를 방해하는 행위가 된다.

책은 하나의 생명체다. 글 아래에 볼펜으로 밑줄 긋기는 사람의 살갗에 상처를 내는 것과 같고, 글에 컬러 펜을 칠하는 것은 화상을 입히는 격이다. 사람에게 생긴 상처는 약을 발라 치유를 할 수 있지만 책 속 글자의 훼손이나 탈색은 복원하기가 어렵다. 특히, 원하는 도서를 복사할 때 낙서로 인해 정확한 내용이 보이지 않으면 매우 난감하다. 이처럼 상처 난 책들은 생명을 잃게 돼 폐기로 이어진다. 독자의 부주의로 도서관은 경제적 손실까지 떠안게 된다.

어느 도서관이든 도서의 훼손은 독자의 양심에 맡기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도서관은 ‘책에 낙서 금지’를 안내하고 있다. 이용자가 다른 독자를 위한 배려이자 자료 보존을 위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 예절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절 안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책 속에 볼펜이나 컬러 펜 자국 등이 자주 발견된다.

도서관 책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이 계속 이어 읽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깨끗이 이용해야 한다. 책은 후손들의 성장을 돕는 훌륭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책으로부터 마음의 양식을 채운 만큼 예절을 갖춘 도서관 이용자의 성숙한 의식을 기대해본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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