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디지털대학교를 만나고 내 인생이 달라졌어요”

[Interview] 구도은 한방미용예술학과 17학번(한국토탈뷰티연구소 대표)

구도은 한방미용예술학과 17학번(한국토탈뷰티연구소 대표)
구도은 한방미용예술학과 17학번(한국토탈뷰티연구소 대표)

세계에 한국 미용 전파할 후배 양성 위해 뛴다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구도은 한국토탈뷰티연구소 대표는 피부미용 전문가로 전 세계를 누빈다.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등 세계 곳곳에 한국의 뷰티문화를 알리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한국의 우수한 화장품, 기기들을 해외 각국에 맞게 개발하고 연구한다.

또 중국 내 여러 지역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현지의 학교나 교육기관에서 요청이 있을 때 한국에서 쓰는 화장품이나 기기 등을 교육해 주고 있다. 피부의 구조 및 종류, 한국의 피부미용기기학 등 이론 강의부터 실습까지 두루 진행한다.

해외를 오가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원광디지털대 한방미용예술학과 학생회장까지 겸할 만큼 그녀의 학교 사랑은 남다르다. “제게 원광디지털대학교는 집, 가족 같은 곳이에요라는 구도은 대표는 평범한 간호조무사였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찾다가 피부미용을 선택하게 됐고 원광디지털대 입학을 선택했다.

그는 간호조무사로서의 자부심도 있었고 열정도 컸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늘 존재했다. 내가 40세가 넘고 50세가 넘어도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낸 게 피부미용 분야였다고 했다.

마케팅을 전공하면서 피부관리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전문적인 관리를 배우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거래처 대표님이 김효철 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항상 학생들을 이끌어 주시는 교수님 모습에서 여기라면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는 교수님을 뵙자마자 무조건 입학하리라 마음먹었죠. 처음에 학교를 입학하기 전에는 제가 병원경력도 있고, 피부관리 분야에서 특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 와서 보니 제가 수박 겉핥기로만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미용예술학과에서는 스웨디쉬뿐만 아니라 추나요법, 타이마사지 등 모든 지식을 각 분야의 교수님과 강사님께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특강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게 굉장하다고 생각했어요. 피부미용 분야를 공부할수록 한국의 뷰티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한발 더 앞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구도은 대표는 2018년 사업자를 내고 한국토탈뷰티연구소를 인천에서 오픈했다. 그는 학교에서 수강했던 스피치특강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았고, 교수님의 피드백 또한 저에겐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부분들이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방법만 가르치던 강사에서 원리를 가르치는 강사가 됐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엔 테크닉적인 부분만 교육하기 급급했다면, 지금은 어떤 원리로 어떻게 관리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더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중국에서도 더 많은 연락을 받고 꾸준히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신문기자협회에서 주최한 ‘2018 한국을 빛낸 100인 대상에서 뷰티부문 대상을 수상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구 대표는 많은 분들이 사이버대학이라 힘들지 않을까? 배울 게 있을까?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런데 저도 해냈고, 많은 동문들이 해냈다. 우리 학과 후배님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분들도 많다. 나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충분히 잘 해나갈 수 있는 곳이 원광디지털대라고 본다고 말했다.

[Interview] 권오학 동양학과 17학번

40여 년의 바다생활, 해외봉사 거쳐 원디대에서 인생 3모작 중

권오학 동양학과 17학번
권오학씨

“70대에 새로운 인생도전! 건강하고 젊게 사는 게 꿈입니다.” 바다 생활만 40여 년에 해외봉사활동까지 섭렵한 권오학씨의 나이는 올해 만 76세다. 원광디지털대에서 인생 3모작을 꿈꾼다는 권오학 학우(동양학과 17학번)공부만이 젊게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13년간 해군으로 생활했고, 이후 30여 년간은 배를 탔다. 퇴직한 이후에는 봉사활동을 위한 다양한 일들을 해오고 있다.

권 학우는 바다에서 생활했으니 퇴직 후엔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게 농사였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원예학과로 대학 진학을 했다. 인생 이모작으로 수경재배를 하면 좋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공부해보니 초기 투자비용도 많고 일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직접 농사짓는 것은 단념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선정되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2013, 당시 만 71. KOICA 최고령 해외봉사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하게 된다. 해외에 나가는 것이 두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해외에 간다는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따르게 되지요. 그러나 저는 월남전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았고, 해적과 두 번이나 조우(遭遇)했을 때도 무사했습니다. 적군의 비행기를 피해 간신히 탈출한 적도 있고, 칼을 휘두르는 해적에게 포박당한 채 위협을 받은 적도 있죠. 상선과 해군 군함을 합하면 약 40년 동안 배를 탔는데, 그간 해상에서 험한 파도와 싸워 승리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해외봉사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지요. 배를 타며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다녔는데, 특히 도미니카공화국을 찾았을 때 농촌 지역 아이들이 어렵게 생활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기회가 온 것이죠.”

그는 온실을 활용해 토마토 작물을 수경재배하는 노하우를 2년간 타슈켄트의 국립농업대학교에 전수했다. 새벽 530분에 일어나 730분까지 온실로 매일 출근했다. 하루 종일 농업대학교 교수들과 토마토 재배 기술을 연구하고 한국이 갖고 있는 수경재배 노하우를 공유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농업기술 외에도 각종 기계수리, 농산물 수확이나 저장법 교육 등 요청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1년만 더 있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고.

해외봉사활동 기간이 소중한 경험이었다는 그는 유년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것을 늦은 나이에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기르는 시간이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그걸 제 나이에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랬기 때문에 봉사활동이 끝나고 귀국하면서 새로운 나만의 계획들을 세울 수 있었다. 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은 셈”이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이어졌다. 취미 삼아 문화센터에서 명리학을 공부하던 중, 원광디지털대에 동양학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동양학과에서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여러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광디지털대가 구로구청과 함께 하는 힘내라 직장인캠페인에서 타로카드 상담을 했다. 긴 줄이 늘어설 만큼 그의 타로 상담은 인기가 있었다. 지난해 종로구 50+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게 반응이 좋아 또 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원디대란 인생 삼모작이다라는 그는 인생 일모작은 군 생활 13년간이고, 이모작은 30여 년간의 해외선박생활, 삼모작은 지금 도전하고 있는 학문이다. 원광디지털대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좋은 곳에 활용해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Interview] 여동구 요가명상학과 09학번(타우요가 대표)

요가의 좋은 느낌을 나눌 수 있는 유니버설 요가 마스터

여동구 요가명상학과 09학번(타우요가 대표)
여동구 요가명상학과 09학번(타우요가 대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에 출연해 고난이도 요가 동작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 있다. 바로 요가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여동구 대표(요가명상학과 동문)! 국내 독보적인 유니버설 요가 마스터인 그는 사람들이 요가에 대해 좋은 첫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부터 합기도 체육관을 운영했지만 항상 고민이 많았다. 미래의 모습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요가를 경험하며 점점 빠져들었다.

여 대표는 이렇게 많은 동작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고, 자세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특히 외국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요가를 하고 있고 요가인구도 많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요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산업이 발달하면 할수록 그와 반대로 정신적인 결핍을 느끼는 사람 역시 많아지고 있다. 이런 정신적인 부분을 담당할 수 있는 게 바로 요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요가의 비전을 발견했고 안일하게 보냈던 삶을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2009년 원광디지털대를 만나게 됐다.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오프라인 요가수업, 워크숍, 강의를 통해 다양한 실습수업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요가학원을 운영하거나 직업이 있는 분들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원광디지털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니 콘텐츠 수준이 높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편견이었습니다. 오히려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공부하다가 모르면 다시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요가명상학과에서 이론 공부를 제대로 하게 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더 생겼습니다. 회원들을 가르칠 때도 확신을 갖고 지도할 수 있게 됐죠.”

여 대표는 요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요가에 대한 첫 느낌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도하고 싶다면서 요가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면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요가 마스터로서 회원들을 지도하며 살아가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Interview] 이정순 차문화경영학과 06학번(티룸 하원재 대표)

()로 찾은 인생 터닝 포인트!

이정순 차문화경영학과 06학번(티룸 하원재 대표)
이정순 차문화경영학과 06학번(티룸 하원재 대표)

광주에서 티룸 하원재를 운영하는 이정순 대표. ‘차 한 잔에 여유와 즐거움을 담다라는 슬로건이 하원재가 추구하는 지향점이다. 엄선한 티를 개인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티 마스터가 안내하고, 시향을 통해 고객이 선택한 차를 갓 구운 스콘과 함께 정성껏 낸다. 2017년 오픈한 하원재는 이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

하원재는 누구나 편하게 차를 즐길 수 있는 차문화 공간입니다. 그래서 차 맛에 가장 신경을 쓰죠. 중국, 인도, 스리랑카 등에서 생산된 시즌별 다원 홍차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각 나라에서 대표하는 브랜드 티를 직접 품평해 선별합니다. ‘차의 맛은 마음에서 나온다는 문구를 좋아합니다. 저는 하원재가 차향에 젖어 편안하게 머물다 가는 차 문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이 대표는 20대부터 티백 녹차를 즐겨 마셨다. 그러다 어느 날 선물 받은 우전차의 향과 맛이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차에 대한 궁금증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거워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다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 노후까지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학과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그래서 차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0년간의 계획을 세웠다. 그 시작이 원광디지털대였다. 이 대표는 하원재를 운영하는 데 있어 차문화경영학과에서의 실습이나 이론공부가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사이버대학의 강의에서 부족한 실습부분은 오프라인 특강으로 채울 수 있었고 교수님들의 많은 조언과 채찍질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했다.

저에게 원광디지털대는 터닝포인트.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해 준 이유이기 때문이라는 이대표에게 차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차가 이렇게 향기로운 줄 몰랐다, 차를 공부하고 싶은 관심이 생겼다는 고객들의 이야기는 힘이 된다.

 

[더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는 원광디지털대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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