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박람회 종료시점까지 변표없이 상담나선 대학들
수능 난도 급변에 분석 시간 늘어난다? 일주일 여유면 ‘충분’
타 대학 점수 확인하려는 ‘이기심’이 문제
동국대 등 ‘수요자’ 우선원칙 대학들 ‘귀감’

올해 정시박람회에서도 변표 없이 '수박 겉핥기'식 상담을 진행한 대학들이 있어 문제다. 실효성 있는 점수상담을 기대한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올해 정시박람회에서도 변표 없이 '수박 겉핥기'식 상담을 진행한 대학들이 있어 문제다. 실효성 있는 점수상담을 기대한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아쉬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올해 ‘2019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이하 정시박람회)’에서도 의미 없는 ‘눈치싸움’으로 인해 ‘눈 가리고 아웅’식 점수상담에 나선 대학들이 일부 있었다. 탐구영역에 적용하는 변환표준점수(이하 변표)조차 발표하지 않은 채 점수상담에 나선 것. 1점으로 당락이 좌우되는 정시모집에서 변표 없는 상담은 의미가 없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정시박람회에서 변표 없는 상담이 진행된 것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상당수 대학이 변표를 발표하지 않고 박람회장에서 점수상담을 실시했다. 다만, 지난해는 갑작스런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되면서 수능성적 발표부터 박람회까지 기간이 짧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와 달리 충분한 여유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늦장 발표에 대한 ‘명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성적 분석에 필요한 시간을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타 대학 점수를 확인한 후 발표하겠다는 ‘이기심’이 현 사태의 주된 원인이라는 게 대학들의 전언이다. 

교육수요자들이 정시박람회를 찾는 주된 이유가 점수상담이라는 점을 볼 때 늦은 변표 발표 행태는 개선이 절실한 문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발표 기한을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는 ‘대학들의 자율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으며, 대학들도 ‘과다한 통제’라며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큰 실익이 없는 ‘눈치싸움’을 대학들 스스로 그만두고 신속히 변표를 발표하도록 분위기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변표 없이 박람회 참가한 대학들 ‘눈총’ = 이번 정시박람회에는 일부 대학들이 변표를 발표하지 않고 참가해 ‘눈총’을 받았다. 변표 없이 이뤄지는 점수상담은 가채점을 기반으로 한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어 효용성이 낮기 때문이다.

‘변표’는 대학들이 정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활용하는 지표다. 수능 성적표에 나오는 백분위나 표준점수(표점) 등을 활용해 만드는 별도의 점수를 의미한다. 

주요대학들은 탐구영역에서 백분위를 활용해 변표를 만드는 방식을 활용한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집계한 ‘대학별 정시 반영지표’ 자료에 따르면 서울 16개교, 수도권 5개교, 지방 11개교 등 전국에서 32개 대학(캠퍼스 별도 집계)이 탐구영역 반영 시 변표를 쓴다. 서울대는 물론이고 고려대와 연세대를 비롯해 경희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 등 수험생 선호도가 높은 대학들은 대부분 변표를 활용하는 대학이다.

이처럼 대학들이 탐구영역 표점·백분위를 쓰지 않고, 변표를 쓰는 것은 탐구영역이 ‘선택형’ 체제라는 데서 기인한다. 현재 수능에서 사탐은 9과목, 과탐은 8과목 가운데 2과목을 선택하는 체제다. 모든 과목의 난도를 일률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과목마다 표점 최고점이나 등급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만점을 받아야만 1등급인 과목이 나오는가 하면, 1등급에 해당하는 인원이 많아 2등급이 사라지는 ‘등급 브레이크’ 현상도 종종 나온다. 이러한 배경을 무시하고 과목별 표점이나 백분위를 그대로 활용하면 수험생들에게 과목 선택의 ‘복불복’을 강요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어느 과목을 선택했느냐 하는 ‘운’에 따라 유·불리가 나타나게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백분위 점수마다 별도의 점수를 부여하는 식으로 탐구영역 성적을 보정한다. ‘물보정’ ‘불보정’ 등의 용어는 이 과정에서 나온다. 백분위 점수마다 부여하는 변표 점수의 격차를 늘리는 경우 ‘불보정’, 격차를 좁히는 경우가 ‘물보정’이다. 점수 격차를 늘리면 탐구영역의 실질 반영비율이 늘어나는 꼴이 되기에 영향력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불보정이라 부르고, 반대는 물보정이라 부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변표를 확정짓지 않고 정시박람회에 참가한다는 점이다. 정시박람회에 참가한 변표 활용대학 가운데 경희대·서울시립대·연세대(원주)·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대 등은 박람회가 모두 끝난 후에야 변표를 발표했다. 한양대는 박람회 이틀째인 14일에 변표를 발표했다.

변표가 없는 상황에서 하는 점수상담은 ‘수박 겉핥기’나 다름없다. 서울 주요대학의 한 입학관계자는 “솔직하게 얘기하면 변표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 주는 상담은 의미가 없다. 박람회에 참석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의 증언처럼 변표가 없는 상황에서 하는 점수상담은 의미를 찾기 어렵다. 대학들의 점수상담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지원자 전체 표본을 전부 들고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전년도 성적과 비교해 제일 정확한 합·불 가능성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은 변표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소수점 차이로도 당락이 갈리는 정시에서 탐구영역 변표 없이 하는 상담은 ‘눈 가리고 아웅’이나 마찬가지다.

■대학들 왜 변표 발표 안 하나…분석 소요시간? 실제로는 ‘눈치싸움’ = 변표를 확정하지 않고 정시박람회에 참여하는 것은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상당수 주요대학이 변표를 확정하지 않은 채 정시박람회에 참석했다. 

다만, 지난해에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 지진 발생으로 수능이 갑작스레 연기됐기 때문. 수능성적을 12월 6일 발표하고, 일주일 후인 13일부터 16일까지 박람회를 진행하려던 계획이 꼬이게 됐다. 장소 대관 문제로 박람회 일정 연기가 불가능하다 보니 12일 성적이 발표되고 바로 다음날인 13일부터 박람회가 실시됐다. 변표를 만들기 위해서는 성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볼 때 변표 없는 상담이 이뤄진 것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수능이 정상적으로 치러졌고, 앞서 5일에 수능성적이 발표됐다. 13일 시작되는 정시박람회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 여유가 있었다. 2015학년이나 2016학년처럼 처음부터 성적발표와 박람회 일정이 맞붙어 있었던 해도 있지만, 최근 들어 박람회를 주관하는 대교협은 일주일의 여유를 꾸준히 두고 있다.

대학들은 ‘분석에 드는 시간’을 명목으로 내세운다. 올해 수능 난도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성적 분석에 드는 시간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 “변표를 만들기 위해서는 올해 성적을 분석하고, 이를 작년 지원자 층에 대입해 불보정과 물보정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방향인지 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올해 수능 난도가 지난해와 크게 달라졌기에 분석에 드는 시간이 길었다”고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대학의 해명은 ‘변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실제 성적 분석에 드는 시간이 일주일을 넘기는 것은 드문 사례라는 점에서다. 한 대학 관계자는 “변표 발표 전 성적을 분석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일주일씩이나 걸릴 일은 아니다. 대학마다 여건이 다르겠지만, 입시기관들의 분석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수능 난도가 급변했지만, 일주일은 변표를 내놓기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결국 정시박람회 시작 전까지 변표를 발표하지 않는 대학들의 행동은 ‘눈치싸움’에서 비롯된 것에 불과하다. 다른 대학이 내놓은 변표를 참고하고 그에 발맞춰 움직임으로써 보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이기심’과도 맞물린 문제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박람회 전까지 변표를 만드는 데 있어 시간 문제는 없다. 다른 대학들이 어떻게 변표를 내는지 지켜본 후 발표하려다 보니 늦어지는 것”이라며 “정시는 철저한 성적싸움이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관행’처럼 사실상 굳어져 있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실제 대학들의 변표 미발표 양상이 ‘눈치싸움’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정시박람회 참석 전 변표를 발표하는 대학들이 있다는 점만 봐도 명확하다. 특히, 동국대는 매년 박람회 일정과 관계없이 수능성적 발표 다음날 일찌감치 변표를 발표, 수요자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며 타 대학의 ‘귀감’이 되고 있기까지 하다. 이경식 동국대 입학관리실장은 “올해도 수요자들이 제대로 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변표를 발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뾰족한 해결책 없어…대학들의 ‘자성’ 필요 =  눈치싸움으로 인해 변표 발표가 늦어지고, 박람회에서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규제를 통해 바꿀 수는 없을까. 만약 대학들이 대입전형 시행계획이나 모집요강을 만드는 데 있어 지침으로 삼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에 일률적인 변표 발표일정이 담긴다면 지적된 문제들은 모두 자연스레 해결된다. 

다만, 변표 일정을 강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교협과 대학 모두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대입전형 기본사항은 ‘최소한’의 가이드라고 봐야 한다. 문구 하나를 추가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대학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침해하지 않으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했다. 

대학들은 일정 통제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한 주요대학 입학팀장은 “원래 대입전형을 만들고 실시하는 주체는 대학이다. 정부정책과 재정지원사업 등을 빌미로 통제가 가해지고 있는 것을 탐탁하게 여길 대학은 없다. 변표 발표 일정을 강제한다고 하면 대학들이 집단으로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람회 일정을 늦추는 것은 불가능할까. 대학들이 변표를 발표할 충분한 여유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다만, 이렇게 되면 박람회 효용성 문제가 불거지게 된다. 대교협 관계자는 “현재 수능성적 발표 후 일주일 뒤에 하는 체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더 뒤로 일정을 미루게 되면 수요자들이 박람회 시작 전 상담을 대부분 받게 되고 박람회장을 찾을 이유가 사라진다”고 했다.

결국 이 문제는 대학들의 ‘자성’을 기반으로 풀어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대학 점수에 쏟는 눈치는 과감히 버리고, 수요자들을 생각해 최대한 빨리 변표를 발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수험생들은 정시 원서 접수 전까지 생각해야 할 거리가 많다. 대학별 가중치와 수시이월인원도 봐야 한다. 변환표준점수를 눈치싸움으로 인해 늦게 공개한다는 것은 대학들이 책무성을 내버리는 행동”이라며 “현 수험생들의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대학들이 제대로 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앉아서 우리 대학이 좋다고 홍보하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수험생들이 실제 지원 전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착한 통계’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변표 발표를 ‘눈치싸움’ 때문에 미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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