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시 틀 만든 국가교육회의 2기 위원 김경범 서울대 교수 보고서
고3 2학기 교실 파행운영 '유일한 해결책'

(사진=한국대학신문DB)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가 13일 열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원연수'에서 ‘미래 대입전형과 학교 교육의 총체적 변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수시와 정시를 하나의 시기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2022 대입 개편 논의 과정에서 파기된 방안이지만, 고3 2학기 교실파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관련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정시모집 박람회에 모인 학생들의 모습. (사진=한국대학신문DB)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고교학점제가 본격 실시된 후 처음 치러지는 2028학년 입시를 기점으로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자는 의견이 현직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부터 나왔다. 지난해 대입개편 논의 과정에서 폐기된 방안이긴 하지만, 고3 2학기 파행운영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향후에도 논의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13일 열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교원연수'에서 ‘미래 대입전형과 학교 교육의 총체적 변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수시와 정시를 하나의 시기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행 대입은 9월경 수시 원서접수, 12월말경 정시 원서접수 순으로 진행된다. 김 교수의 주장은 3달 이상 차이가 나는 수시와 정시 모집 시기를 하나로 묶자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는 2025년 고1이 되는 학생들이 첫 대입을 치르는 2028학년을 겨냥한 주장이다.

김 교수가 내놓은 중장기 통합 정시안 일정에 따르면 수능은 현행보다 앞으로 당겨진다. 현재 11월 둘째 주에 실시되는 수능은 11월 초로 자리를 옮기고, 중순에는 성적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원서접수를 거쳐 11월말부터 1월말까지 대학들이 평가를 실시한 후 2월에 합격자를 발표하고 등록을 받는다. 

수능이 치러진 이후로 모집시기가 통일되면 대학들은 자연스레 수능성적 반영 여부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현재는 수능 이전 수시모집이 실시되고 있어 수능 전까지 대부분의 평가를 마치기에 수능최저학력기준 정도 수준으로만 수능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모집시기가 합쳐지면 다른 전형에서도 세부 수능성적을 반영할 수 있게 된다.

김 교수는 이러한 대학들의 고민을 고려해 대입전형을 종합평가전형과 교과전형, 수능전형의 세 갈래로 정돈하자고 주장했다. 얼핏 보면 현행 대입전형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종합전형은 현행 학생부종합전형과 차이가 크다. 학생부와 면접 등 현재 활용되는 평가요소 외에도 수능성적을 정성평가 형태로 활용한다는 점에서다. 

학업역량을 종합 평가한다는 학종 취지에 비춰볼 때 수능성적을 정성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평가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 경우 학교교육을 통한 학생의 성장과 학업역량을 중점적으로 보는 학종의 취지 상 수능성적을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수능 대비 역량도 학교 교육에서 길러지는 것이며, 수능 성적을 통해 미처 학생부에는 나타내지 못했던 학업역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김 교수의 제안은 파급력이 강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 교수가 국가교육회의 2기에서 고등교육전문위원을 지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에서 연구교수를 지낸 김 교수는 현행 서울대 입시의 틀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통합 논의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수시·정시를 한 시기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교육계에서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시발점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합 논의에 재차 불을 당긴 김 교수가 참여했던 한국교육개발원 주관 ‘KEDI 8년 연구’에서 이미 관련 내용이 발표된 바 있다. 2004년부터 8년간 연구를 수행한 끝에 2011년 12월 발표한  ‘고교-대학 연계를 위한 대입전형 연구(Ⅷ) : 고교-대학 연계형 대입제도 중장기 종합 방안’ 보고서는 궁극적인 대입전형 개선방안으로 ‘수시 정시 통합’을 주장했다. 당시 보고서를 통해 나온 내용은 수시와 정시를 구분하지 않고, 학생이 대학에 지원하면 여러 지표를 다양한 방식으로 고려해 선발한다는 것으로 이번에 김 교수가 주장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후 사그라들었던 통합 논의는 지난해 대입개편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진동섭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이사를 비롯해 신동원 전 휘문고 교장, 주석훈 미림여고 교장 등 공교육계 전문가들은 수시·정시 통합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현행처럼 수시가 앞서 실시되는 체제가 유지되면, 고3 2학기 교실은 파행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대학도 수시·정시 통합에 긍정적이었다. 논·서술형 수능을 도입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비슷한 시기 서울경인지역입학처장협의회도 두 전형의 모집시기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공교육계에서 한 목소리를 낸 데다 대입정책 포럼 등에서도 의견이 제시되면서 수시·정시 통합 문제는 본격적인 논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4월11일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로 넘긴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에 담긴 3개 핵심논의에 포함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가교육회의에서 대입 개편을 담당한 대입개편특위는 5월말 대입 개편 공론화 범위를 심의·의결하면서 수시·정시 통합을 제외했다. 

대입개편특위가 수시·정시 통합을 공론화 범위에서 제외한 것은 ‘반대 의견’이 많다는 이유였다. 김진경 대입개편특위 위원장은 당시 국민제안 열린마당이나 온라인 의견수렴 결과 반대 의견이 대다수라며, 현행 수시·정시 분리 체계를 유지하도록 권고했다. 

결국 수시·정시 통합 논의는 끝내 대입 개편안에서 빠지게 됐지만, 교육계에서는 언제든지 관련 논의가 불붙을 수 있다고 봤다. 고교 현장에서 나온 의견처럼 고3 2학기 교실 파행 문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수시·정시 통합이 유일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에 재차 통합 주장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에 김 교수가 내놓은 수시·정시 통합 주장은 물론 고교 학점제와 연관이 깊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대폭 확대하고 진로·적성 탐색 등을 강조하는 고교 학점제가 내신 절대평가와 맞물려 본격화되더라도 대입제도가 현재 모습을 유지한다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교육계의 주장처럼 엄연히 정규 교육과정인 고3 2학기가 파행으로 치닫는 현실을 막을 수 있고, 대입전형을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수시·정시 통합안이 지닌 장점이다.

한편으로는 통합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수시가 통합돼 대입전형이 간소화되면 입시 (수능·내신·비교과)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는 김 교수의 발언과 달리 두 모집시기가 합쳐지는 경우 수능과 내신(교과), 비교과, 면접 등이 한 데 모이며 부담을 더욱 키우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5년 본격화되는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를 전제로 하고 있긴 하지만, 논술 외 활용가능한 사실상 모든 전형요소를 평가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만만치 않다.

교육부는 이번 주장이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나온 2022학년 대입 개편안을 현장에 안착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해당 보고서에 실린 주장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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